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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바람따라(여행기)

만리포 가는 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8. 5. 5. 03:03

 

 

만리포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천안쯤 되면 괜시리 짜증이 난다. 미쳤어,정말 미쳤어,

  엄청난 속도감. 속도계는 120 의 눈금을 왔다 갔다 하는데 옆차 뒷 차들은 상향등을 켜고 난리들이다. 빠지고 싶다. 철안든 애인과 야반도주하듯이 옆길로 그만 내려서고 싶다.

  달마가 동으로 간 까닭은 그곳에 깨닫지 못한 중생들의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고 또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들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를 통해 중국 땅으로 들어갔다. 인도는 힌두의 나라이었지 붓다의 나라는 아니었다. 서역은 해가 지는 곳이다. 사람들은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지가 있는 곳을 향하여 사막을 지나고 설산을 넘어갔다.몇 년 전 나는 왕오천축국전 연작을 쓰기로 작정하고 2 편을 썼다. 무엇이든 설익으면 떫거나 시기 마련이다. 욕심만 앞섰지 글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우리 모두는 성지로 가고 싶어한다. 성지엔 성자가 있다. 우리 모두는 성자를 만나고 싶어한다.


          왕오천축국전. 1


       무거운 짐을 지고

       나귀는 앞질러 걸어갔다

       뒤쳐져 다르는

       일기장이나 편지 같은 것

       녹슨 추억의 꾸러미는

       쓸데없이 무겁다

       지친 울으으로 나귀가 나를 부른다

       너는어디에 있느냐


  이미 성자가 사라졌다면 그 발냄새라도 맡아보고 싶어한다.'성자가 된 청소부'에는 젊은 시절 향락과 방탕을 일삼았던 과오를 문득 깨닫고 스스로 때묻은 세상에 청소부가 되기를 기원했던 성프란체스코의 낮은 자세가 가득하다.성자들은 안되는 줄 알면서도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한 믿음 하나로 바보가 되었던 사람들이다.소크라테스가 그랬고,공자가 그랬다.붓다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그 기득권의 무상함을 볼 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것이,보이지 않지만 아름답고 살겨운 가치들이 많다.그들이 성인이 된 이유는 자신을 버리는 것이 진정 자신을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자신을 버릴 수 있을 만큼은 되지 못하였다.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어림없었다. 떠난다는 것은 돌아온다는 사실을 버릴 때 진정성을 갖는다. 이 삶으로부터 떠나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의 황량한 사막과 설산을 우선 헤쳐나가야 했다.

  천안에서 온양까지 더 나아가서 온양에서 예산까지는 참아야 한다. 수없는 정지의 붉은 신호등, 무인속도 카메라, 불쑥 튀어나오는 교통단속 경찰, 찌든 도시냄새 이런 것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온양에서 예산가는 길이 확장되어 느리게 가면 바보가 되는 바람의 길이 되어 버렸다. 예산쯤에서는 잠시간의 체증도 감수해야 한다. 예산에서부터 조금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온양 같은 번잡과 세련됨을 떨치고 덕산의 온천들은 시골맛을 풍긴다.

  고갯길을 앞에 두고 고종의 아버지 남연군의 장례를 치루고 남겨둔 상여를 전시한 전각이 보이고 수덕사 표지판이 손짓한다. 비껴가볼까 ?

수덕사로 해서 해미 가는 길은 서해안 고속도로 공사가 한참이다. 수덕사는 옛 정취를 잃어가고 있다. 절 입구의 큼지막한 상가들, 음식점들, 최근에는 절집에 엄청나게 큰 콘크리트 집이 들어서서 조망을  버려 놓았다. 그것은 어딜가나 마찬가지나 경허같은 큰 스님들이 보시면 뭐라고 그럴까?

  두 스님이 가는데 길도 멀고 다리도 아팠다나. 한 스님이 갑자기 들 일 하는 아낙네 젖통을 쓰다듬으니 남정네가 벼락같이 달려들고 두 스님은 죽어라하고 산문으로 뛰어들었다나,'스님 갑자기 왜 그러셨소?'하니 ' 이놈아 그렇게 안하면 어떻게 먼 길을 갈 수 있겠나?' 밤마다 큰 스님이 밤이슬 맞으며 야행을 즐기시는지라 절간 사람들 심사가 영 말이 아니었겠다. '스님, 흉흉한 소문이 돕니다. 어디를 그렇게 다니십니까?" '이눔아, 수행이 별거냐 저 아랫마을 문둥이들이라고 육정이 없겠느냐,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뚱이 보시 좀 하고 왔다. 어쩔래' 그게 누군지 알 필요도 없다.

  덕산을 넘어서니 해미가 저쯤이다. 읍성, 바닷가 노략질 일삼는 왜적을 방비하려고 쌓았다는 해미읍성, 남연군 묘를 파헤치려던 오페르트가 지나간 길, 성벽에는 돌마름질하던 석공들의 희미한 이름, 망루에 오르면 들판이 삼삼해져 오고 황량한 읍성 안에는 늙은 화회나무 한 그루 서 있다. 김대건 신부 아버지도 저 나무에 목 매달려 죽었다는 천주박해의 현장. 그 늙은 나무 주변에 네 그루의 종자나무들, 바람소리만  발옮길 때 마다 산등성이 대숲으로 푸른 공명을 낸다.

  해미부터 만리포로 가는 길 그 길은 '백제길'이다. 당진이라는 이름도 그 옛날 당나라 무역선이 닿았다는데서 연유했듯이 서산과 태안은 그 옛날 공주나 부여, 백제의 서울로 가는 관문이었을 것이다. 태안과 서산 부근의 마애불은 그래서 뜻이 깊다. 먼 바닷길, 언제 바다귀신이 될 지 모르는 두려움을 마애불에 빌고 또 빌었거니 오늘의 발복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름인가.

  만리포 가는 길은 서역가는 길이다. 해가 지는 길이다. 해를 마주보며 저렇게 기울어 가는 삶을 잠간 생각해 보는 동안 만리포에 닿는다. 해수욕장 동쪽 끝으로 포구가 있고, 등대가 있다. 허름한 회집 2층에서 저무는 바닷가를 내려다 본다.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지? 일리포 끝에서 끝까지 걷는다. 괴로웁거나 대화가 필요하면 바다와 이야기하라. 바다가 물어보면 대답하고, 바다에게 물어보라. 껍데기만 남은 조개들,포말을 남기는 삶의 눈물 같은 흐느낌들, 만리포에 가면 막막해진 마음은 더욱 막막해지고,외로움은 더욱 큰 외로움이 된다. 별이 뜬다. 등대 불빛이다. 바다에 배가 있던 없던 등대불은 깜박거린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건 없건 나는 쿨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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