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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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열의 <<집과 무덤>> - 장성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6. 12. 31. 23:23

저녁에 닿기 위하여 새벽에 길을 떠난다

 

 살아갈수록 긴 말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시가 오히려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때가 많다. 이 한 줄 속에 새의 허망함이 다 담겨 있다. 새벽이나 저녁은 삶과 죽음의 환유로 읽힌다. 저무는 시골마을 풍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지막한 집이 보이고 고단한 발을 씻는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날이 갈수록 시간의 바퀴소리를 크게 들으며 사는 요즘, 하루하루 온갖 시름에 앍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뒤에서 내리치는 죽비처럼 서늘한 통찰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서둘러 나갔다가 홍대 입구에서 띄엄띄엄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저녁, 한 무더기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버스가 오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가 가야할 집이 있고 닿아야 할 미래가 있다.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가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버스에 오른다.

 

 내가 다시 이사와서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신혼 살림을 시작했던 곳이다. 밤이면 난지도에서 쓰레기 태우는 매캐한 연기가 자욱이 내려 덮히곤 해 하루라도 빨리 떠나기를 꿈꾸었던 성산시영아파트 앞을 지나다닌다.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으로 돌아와 산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디론지 데려갈 수 있는 세월의 무서운 힘이 느껴진다.

 

 시간은 멀쩡한 물건을 쓰레기로 만들기도 하지만, 냄새나는 쓰레기산을 꽃이 피는 공원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시간이 왜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돌아보면, 하루가 일 년이 20년의 세월이 그렇게 순식간에 가버렸다.  다음 달에는 남쪽 땅 끝 마을로 떠나자는 약속을 했지만 허망하다.

 

 하루라도 늦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으로 떠나보자는 얘기를 들으면 내리막길의 가속도가 느껴진다. 저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더위가 가기 무섭게 살에 닿는 저녁바람의 강도가 날마다 다르다. 가을을 싣고 저기 집으로 가는 반가운 버스가 오고 있다. 천천히 모퉁이를 돌아오고 있다.

 

 

                    리토피아 문학회 2006년도 <<둥근 것들의 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