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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에 대한 오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7. 1. 4. 16:24

신춘문예에 대한 오해 
 
                       시인  강인한  
    
 
 
   올해 신춘문예의 당선작이 거의 다 발표되었다. 많은 응모작 가운데 단 한 편의 당선작을 뽑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은 반드시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웬만한 시의 안목을 갖춘 시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좋은 작품은 드러나게 되고, 대체로 어느 작품이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데에 의견일치를 보게 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요즘 신춘문예의 응모와 심사에 한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작품을 모집하는 신문사의 입장에 미묘한 갈등을 부추기는 한 가지. 응모자의 본명을 밝히는 것까지는 수긍할 수 있으나 주민등록번호까지 밝히는 것을 강요하는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해서 신문사 쪽에서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에서 밝혀지는 것은 응모자의 성별과 연령일 것이다. 물론 여성이므로 더 유리하다든지 불리하다든지 하는 것은 전혀 없다. 문제는 응모자의 연령이다. 마지막 저울질하는 두 편 중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될 때 기왕이면 연소자를 고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럴 바에는 애당초 응모자의 자격을 30세 미만이라거나 40세 미만이라고 제한하는 규정을 왜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는가. 요즘 시단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나이 많은 시인들에 대하여 부끄러운 일이다. 문학에 어디 정년이 있으며, 문학적 정열에 어디 구조조정을 위한 명퇴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심사자의 문제점도 말하지 않을 수 있다. 한 해에 동일한 심사자가 두 군데 이상 겹쳐서 심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울러 특정한 심사자가 동일한 신문의 심사를 해마다 계속적으로 맡게 되는 일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지망생들이 심사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눈치를 보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신춘문예 당선자로서의 첫째 조건은 기성에 물들지 않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진 참신하고 능력 있는 신인이다. 영향력 있는 문단의 권위자 아래 추종하고자 하는 졸개를 뽑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한 해에 두 군데 이상의 심사를 맡은 이가 있을 때 지망생들이 그의 작품 경향과 선호하는 성향에 대해 눈치를 살피기에 바쁠 것이며, 똑같은 심사자가 해마다 그 신문의 심사를 맡는다면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 많은 대학들이 문예창작과 혹은 평생교육원의 문예창작과를 개설하고 있다. 그리하여 해당 교수가 심사자일 경우 간혹 비슷한 수준이라면 자기 제자를 당선자로 뽑는 일도 없지 않다고 한다. 심사자가 인정에 끌려 팔이 안으로 굽는 일을 저질러서 오랜 기간 피나는 수련을 겪은 다른 지망생의 좌절로 이어지게 하는 것 또한 경계할 일이다. 할 수만 있다면 심사의 내규로서 정해, 심사자와 사제간 같은 친분 관계가 있는 당선자를 뽑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올해 어떤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작이 하나 마음에 걸린다. 분명히 동일 작품을 여기저기 다른 신문사에 응모하는 일을 막고 있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행을 바라고 중복 투고한 것이 드러난 게 있다. 각기 다른 신문의 심사평을 통해 본심에 거론된 동일작품이 있어서 필자도 알게 된 것이었다. 모름지기 시인이 되기에 앞서 참다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 시인을 뽑는 일과 장인을 뽑는 일을 혼동하지 말 것이다. 그는 준열한 자기 반성이 요구되는 신인이다. 심사자에 따라 내 작품의 당락이 바뀔 수도 있으리라는 걱정에서 그리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여러 장의 복권을 사서 그 중에 하나가 당첨되기를 바라는 비슷한 심경에서 나온 약간 비열한 행위로 비쳐진다. 이런 사림이 훗날 아무리 훌륭한 시를 쓴다 할지라도 그것은 손끝에서 피워낸 향기를 잃은 조화에 지나지 않으리라고 나는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