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관에 폭탄 투척 전 결연함 담긴 나석주 의사 편지 7점 일반에 첫 공개
백범 김구·이승춘 등에 편지 보내
"계획대로 확실하게 실행할 예정… 본국서 몸값하고 죽겠다" 각오
“소지품(폭탄)은 준비되었는데, 비용 몇백 원만 아직 완전히 수중에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릴 뿐이지 안 될 리는 전혀 없습니다.”
1925년 7월 28일 의열단원 나석주(1892~1926)는 백범 김구(1876~1949)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국한문이 혼용된 4장짜리 편지에서 그는 “모든 일이 계획대로” “확실하게 실행할 계획”이라며 비밀을 유지해달라고 부탁한다. 나석주는 1921년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의 측근으로 활동하다 의열단에 가입했다. 1년 5개월 뒤, 그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광복절을 앞두고 나석주 의사의 편지 7점을 일반에 처음 공개한다. 상설전시관 대한제국실에서 10월 9일까지 열리는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꽃, 나석주’ 특별전에서다. 나석주가 김구에게 쓴 편지 2점, 의열단 동지 이승춘(본명 이화익·1900~1978)에게 쓴 편지 4점, 황해관(본명 황익수·1887~?)에게 쓴 편지 1점이 전시됐다. 7점 모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나석주가 중국 각지를 떠돌며 의거를 준비하는 과정과 ‘서른네 살을 일평생으로 마치길 작정’한 결연한 각오를 보여준다.
1925년 8월 4일 이승춘에게 보낸 편지에선 폭탄 투척 대상을 정해서 알린다. “대표적인 민족 수탈 기관인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 조선은행을 폭파 대상으로 정하되, 그중 서로 가까이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을 함께 폭파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썼다. 이승춘에게 보낸 또다른 편지에선 의열 투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다. “중국에 와 동분서주하다가 무심하게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느니, 차라리 본국에 가서 몸값이나 하고 죽을까 합니다.”(1925년 8월 25일)
마침내 거사 실행을 하루 앞두고, 나석주는 1926년 12월 27일 조선일보사에 편지를 보냈다. “본인은 2천만 민족의 생존권을 위해 왜적의 관·사설 기관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극비리에 계획된 의거를 미리 알린 것이다. 이튿날 그가 동양척식회사와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져 일본 경찰 7명을 죽이고 자결하자, 조선일보는 네 차례 호외를 내며 이 사건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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