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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옆 영산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5. 1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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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0명만 허락하는 ‘섬 중의 섬’ … 느린 트레킹·해상유람 ‘쉼 속의 쉼’

[박경일기자의 여행]

  • 문화일보
  • 입력 2024-05-16 09:16
  • 업데이트 2024-05-16 09:44

영산도 선착장 옆 당산을 끼고 올라가면 목제 덱으로 만든 전망대가 있다. 영산도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자리다. 전망대 너머로 마을과 둥글게 휜 해안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동남아 휴양지를 연상케 하는 옥색 물빛이 인상적이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20가구만 사는 ‘명품 섬’… 흑산도 옆 영산도

‘명품마을’ 거듭난 계기
24년전 태풍탓 우럭양식 피해
섬 활성화 위해 국립공원 편입
관광객 총량 정하고 상품 개발

트레킹·해상투어 명소
선착장옆 당산 끼고 올라가면
마을 한눈에 펼쳐지는 전망대

‘코끼리 바위’ 석주대문 압도적
구멍 사이로 24t 배 드나들어
해산물 채취 프로그램도 인기


관광·힐링 2박3일 코스
흑산도 → 홍도 → 영산도 추천
시루 엎은 형상 장도도 가볼만
정상엔 국내3번째 람사르습지

‘홍어의 고장’ 흑산도 구경
상라산 고개 ‘12굽이 길’ 올라
봉화대에 서면 ‘비경 파노라마’
‘흑산도 아가씨’의 深里마을도

섬의 자랑인 ‘홍어 썰기 학교’
수강생 절반이 프로 칼잡이들

영산도·장도·흑산도(신안)=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작은 섬마을에 숭어떼가 몰려들다

섬에 도착해서 놀란 건 숭어떼 때문이었다. 배에서 내려 선착장을 지나는데 숭어 새끼들이 수면 위로 펄쩍펄쩍 뛰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수면 위로 파다닥 튀는 숭어의 은빛 비늘이 햇살에 반짝였다. 백사장 해안가로 내려서 본 광경은 더 놀라웠다. 팔뚝만 한 놈부터 볼펜 크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숭어들이 새카맣게 선착장 옆 모래 해변에 몰려들어 있었다. 숭어떼는 마치 육지에 상륙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해안가에 바짝 붙어 유영했다. 숭어떼로 물속이 새카맣게 보일 정도니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다. 그물을 꺼낼 것도 없이 뜰채질 한 번이면 숭어 대여섯 마리쯤은 족히 잡을 수 있을 듯했다.

선착장에서 마을 배를 묶고 있던 최성광(57) 영산도 이장에게 부리나케 달려갔다. “저기 물속에….” 해안가를 손가락질하며 흥분한 채 지금 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막 시작하려는데, 최 이장이 말을 자르더니 웃으며 말했다. “숭어요? 그거 봄이면 늘 그래요.” 봄 영산도에서는 늘 있는 일이어서 관심이 없다 쳐도 이렇게 ‘나 잡아 달라’는 듯 해안으로 밀려온 숭어떼를, 주민들은 왜 안 잡을까. 최 이장이 숭어떼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무심하게 말했다. “맛없어요. 고양이에게 던져줘도 쳐다보지도 않아요.” 그렇다는 데도 웬일인지 자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고기가 저렇게 많은데….


여기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 딸린 작은 섬 영산도(永山島). 영산도는 ‘국립공원 명품 섬’이다. 내로라하는 관광지인 흑산도나 홍도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데, 20가구에 인구 30명이 조금 넘는 자그마한 섬에 ‘명품 섬’이란 근사한 훈장이 달려 있다. 그게 뭐 숭어 때문은 아닐 테고….

영산도는 왜 명품 섬인 걸까.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영산도는 ‘먹고살기 어려워’ 명품 섬이 됐다. 이야기의 시작은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8월 31일. 구정용(55) 마을 사무장은 날짜와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그날 최대풍속 47㎞의 초대형 태풍 프라피룬이 영산도를 덮쳤다. 섬 주민들은 어렵게 사업허가를 받아 우럭 양식을 하고 있었다. 고기잡이가 쇠퇴한 섬에서 우럭 양식은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 그런데 태풍이 양식장을 쓸어가면서 섬사람들의 꿈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

태풍보다 무서웠던 건 ‘뭘 해도 소용없다’는 절망감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빚더미를 안고 하나둘 섬을 떠났다. 영산도 젊은이들은 섬의 미래를 고민했다. 그 무렵 영산도에는 도시로 나갔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이가 많았다. 최 이장의 설명. “얘기를 나누며 손가락을 꼽아보니 섬에 많이 남아야 8가구쯤 남게 될 것 같았어요.” 인구가 줄면 학교도 사라지고, 보건소도, 발전소도, 교회도 곧 문을 닫게 될 건 뻔한 일이었다. 학교도, 보건소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섬에 들어오고자 하는 이도 없을 것이니, 점점 더 사정이 안 좋아질 것도 분명했다. 그야말로 막다른 길이었다.

흑산도 상라산의 12굽이 길. 구불구불한 길 정상 상라산에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다.



# 명품 섬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

영산도 주민들은 그동안 국립공원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19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지정되면서 홍도, 흑산도와 함께 영산도도 국립공원 구역 안에 포함됐지만, 영산도 주민들은 그걸 10년이 넘어서야 알았다. 자기가 사는 섬이 국립공원에 속한다는 걸 뒤늦게 안 것이었다. 그만큼 섬 주민들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었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국립공원의 규제와 단속을 못 느꼈을 만큼, 섬 안에서의 개발행위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난 2010년부터 공원 지구 내에서 잘 보전된 생태계와 경관, 문화자원을 활용해 마을을 명품으로 리모델링하는 ‘명품 마을 사업’을 운영해오고 있다. 예산 지원을 통해 생태계 보전을 전제로 체험이나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민 소득과 국립공원의 가치를 동시에 높이는 걸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이런 취지에 공감하는 주민들이 신청하면 자연·인문자원과 주민 사업 의지 등을 평가해 명품 마을로 지정해준다.

정리해 보자면, 국립공원 명품 마을이란 현재의 가치나 성과를 재서 정하는 게 아니라 ‘명품이 되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의지로 만들어가고 있는 마을이다. ‘명품’이란 주어진 게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는 가치를 뜻하는 것이다. 이미 명소가 된 홍도나 흑산도가 아니라, 영산도가 국립공원 명품 섬인 이유다.

지금까지 모두 17개 국립공원 명품 마을이 지정됐는데, 영산도는 2012년에 높은 지지로 명품 섬이 됐다. 영산도가 명품 섬으로 지정될 무렵, 국립공원은 공원 구역 내 20명 이상이 거주하는 마을을 공원지구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다. ‘자유로운 재산권 행사’를 요구해 온 국립공원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 때문에 내려진 조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산도 주민들은 ‘영산도 마을을 국립공원 지구에서 빼지 말아달라’는 정반대의 민원을 제기했다. 섬의 생태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서 진짜 ‘명품 섬’으로 거듭나기 위해 주민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영산도가 명품 섬이 되면서 국립공원 규제를 도리어 섬 활성화의 계기로 이용해 보자는 마을 주민들의 역발상의 실험이 시작됐다. 주민들은 우선 섬에 머무는 관광객 총량을 정했다. 숙소와 식당 등 섬 안의 시설 규모를 감안한 결정이었다. 처음 제한 인원은 하루 40명. 이후 숙소를 확충하면서 10명이 늘어서 지금은 하루 체류 제한 인원이 50명이다. 주민들은 섬 뒤편의 능선을 따라 섬을 도는 트레킹 코스를 만들었고, 마을에서 잡거나 채취한 해산물로 차려 내는 섬마을 밥상을 개발했다. 해상투어 등 섬 관광을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주민들이 직접 진행하고 있고, 섬에서 생산한 특산물도 팔고 있다. 영산도를 아는 이들이 적어 아직은 소수의 관광객만 영산도를 찾지만, 방문한 이들의 만족도는 높다. 비수기 방문객이 적어 체험 프로그램이 정례화되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아직 대중적 ‘명품 관광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단골로 찾는 소수의 여행자에게만큼은 영산도는 ‘명품 중의 명품 여행지’다.

# 영산도를 여행하는 좋은 방법

영산도가 아무리 명품 섬이라고 해도, 내로라하는 관광명소인 흑산도나 홍도를 제쳐놓고 영산도만 보고 올 수는 없는 일이다. 영산도 주민들도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영산도를 어떻게 여행해야 할까. 최 이장에게 ‘영산도 여행하는 방법’을 물었다.

다음은 최 이장이 제안하는 ‘영산도와 홍도·흑산도 2박 3일 추천 여행코스’다. 먼저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 흑산도를 거쳐 홍도까지 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 홍도 유람선 관광을 한다. 홍도 유람을 마치고 흑산도로 돌아오면 오후 4시쯤 되는데, 곧바로 영산도로 건너간다. 영산도에서는 그날 잡아낸 생선과 해산물로 회를 뜨고 저녁 식사를 차려낸다. 뭐가 잡히든 같은 비용으로 다 내준다.

이튿날 영산도에서 즐겨야 할 것은 섬 트레킹. 오전에는 섬을 반 바퀴 도는 트레킹을 즐기고 오후에는 배를 타고 영산도 주변 해안 풍경을 감상하는 해상투어를 한다. 오후 늦게 흑산도로 건너가서 숙박한 뒤, 이튿날 섬 일주도로 관광을 끝내고 목포로 돌아간다.

최 이장의 제안은 홍도와 흑산도에서 관광을 충분히 즐기되 영산도에서는 호젓한 섬에서의 느긋한 휴식을 마음껏 즐기자는 것이다. 홍도와 흑산도가 관광하기 좋은 섬이라면, 영산도는 숙박과 휴식을 즐기기에 좋다. 홍도의 숙소는 너무 낡았고, 흑산도는 부산스럽다. 섬에 머물면서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기에는 영산도만 한 곳이 없다.

영산도에서 해야 하는 일의 첫 번째는 트레킹이다. 영산도 트레킹은 선착장 옆 당산을 끼고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산 중턱에는 당집이 있다. 당집은 상당, 중당, 하당으로 나뉘는데, 상당에는 한복 입은 여인을 그려서 모셨고, 하당에는 김첨지 영감을 모셨다. 김첨지 영감은 배, 어장, 해초를 보호 관장하는 신으로, 소머리를 통째로 올리는 ‘둑제’의 주신(主神)이기도 하다.

당산 위쪽에는 앞바다와 섬마을을 한눈에 다 내려다볼 수 있는 영산전망대가 있다. 거기서 트레킹 코스는 마을 뒤편으로 부채꼴 형상 능선으로 이어진다. 일부 구간이 경사가 좀 있긴 하지만, 전체 코스를 보면 오르내림의 폭이 크지 않아 걷기에 좋다. 다만 아쉬운 건 고사한 소나무들이다. 영산도에는 영산팔경(永山八景)이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당산창송(堂山蒼松)’이다. 그만큼 당산 숲과 뒷산에 굵은 소나무가 울창했는데, 소나무가루깍지벌레가 번지면서 근래 섬 안의 소나무가 절멸하다시피 했다.

영산도의 석주대문(石柱大門). 코끼리바위라고도 부른다.



# 압도적 크기의 영산도 코끼리바위

영산도에서 해야 할 두 번째는 배를 타고 즐기는 해상유람 관광이다. 영산도의 해안 경관은 크고 우람해서 홍도에 버금갈 정도다. 해상유람 명소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 영산팔경 중의 제7경인 ‘석주대문(石柱大門)’이다. 자연적으로 생긴 바위 구멍인데, 코끼리 코 모양이라 ‘코끼리바위’라고도 한다. 이런 형상의 해안 경관이 전국 곳곳에 있지만, 크기로 보면 영산도의 석주대문이 압도적이다. 구멍 사이로 흑산도와 영산도를 오가는 24t급 여객선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다.

제6경 ‘비성석굴(鼻聲石窟)’도 영산도의 숨겨진 비경이다. 사람 코처럼 생긴 바위의 코로 바닷물이 들어가면 코 고는 소리가 난단다. 사람 옆얼굴을 쏙 빼닮은 얼굴 바위도 눈길을 붙잡는다. 해상유람 중에 해산물 채취 체험도 진행한다. 손님들을 갯바위에 내려놓고, 해안에서 고둥과 굴 등 갯것을 잡는 시간을 주는 것. 잡아낸 갯것들을 조리해 나눠 먹기도 한다.
영산도 마을 안에도 곳곳에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있다. 한때 학생 수가 100명이 넘었다는 학교는 3년 전에 폐교됐지만, 아직도 단정한 모습이다. 섬에는 ‘전교 1등 도서관’이 있다. 폐교된 학교에서는 한 학년에 한두 명 학생이 전부라 거의 모두가 전교 1등이라 도서관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초등학교 6년을 섬에서 다닌 최바다 양이 올해 스물두 살이란다. 침술을 배워서 섬 안에서 의원으로 통했던 고(故) 구달흔 할아버지가 1905년 태어나서 1999년 아흔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주했던 초가집을 ‘백년 가옥’이란 이름으로 말끔하게 복원해 놓았다.

영산도는 흑산군도에 속한다. 흑산군도에는 흑산도와 홍도를 비롯해 영산도, 장도, 다물도, 대둔도 등 크고 작은 섬이 68개에 달한다. 이 중 흑산도와 함께 다녀와 볼 만한 섬이 장도(長島)다. 섬은 이름처럼 길다. 장도는 시루를 엎어놓은 것 같은 형상인데, 엎은 시루 형상의 위쪽, 그러니까 섬 정상쯤에 우리나라에서 3번째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산지 습지가 있다.

선착장에서 산정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나무 덱을 딛고 1㎞쯤 오르면 울창한 신우대 숲이 나온다. 대숲 뒤로 드넓은 습지가 펼쳐진다는데, 대숲 너머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실 장도 습지는, 출입을 통제하는 데다 가까이 갈 수 있다 해도 눈으로는 습지가 구별되지 않는다. 자연생태적 보전가치가 뛰어나다지만 문외한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다. 낭만적인 습지 풍경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십상. 나무 덱을 딛고 고도를 올려가며 바다 경관을 즐기는 정도로 만족하는 게 좋겠다.

흑산도를 오가는 여객선 영산호 갑판에 매달아 말리고 있는 가오리.



#‘흑산도 아가씨’ 노래의 오해

이번에는 영산도나 장도의 본섬 격인 흑산도 얘기다. 홍도 여행이 바다 경관을 보는 것이었다면, 흑산도 여행은 ‘섬 안을 보는 여행’이다.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 게 흑산도 관광의 전부라 할 수 있다. 흑산도의 모든 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으니 해안선을 따라 섬 일주도로를 돌면 흑산도를 빠짐없이 보게 된다는 얘기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해안도로를 운행하는 1000원짜리 공영 버스를 타도 좋고, 시간이 없다면 흑산도에 7대 있는 관광택시를 타고 둘러봐도 좋다. 관광택시는 섬 일주 관광요금을 대당 7만~8만 원쯤 받는다. 한 사람이 2만 원쯤을 내고 합승도 된다. 택시 기사는 명소를 안내해주고 중간중간 관광 포인트에 승객을 내려주며 사진 촬영 시간도 준다. 섬 일주 관광은 보통 1시간 30분쯤, 길어봐야 2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흑산도를 대표하는 경관은, 상라산 고개를 넘어가는 ‘흑산도 12굽이 길’이다. 굽이 길을 오르면 고개 정상에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서 있는데, 거기가 상라산 전망대다. 전망대에서 10분만 걸어 오르면 상라산 정상인 봉화대가 있다. 상라산 봉화대에 오르면 흑산도 내해와 12굽이 길, 그리고 바로 앞의 장도까지 다 한눈에 들어온다.

흑산도 여행을 지배하는 두 가지는,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와 찰진 맛의 흑산도 홍어다. 노래 ‘흑산도 아가씨’ 노랫말의 유래가 된 마을이 흑산도에 있다. ‘깊을 심(深)’자를 쓰는 작은 마을 심리(深里)다. 이 마을에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의 유래를 적은 벽화가 있다. 벽화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심리국민학교 학생들을 해군함정에 태워 서울 구경을 시켜줬는데, 그 사실을 보도한 기사를 보고 작사가와 작곡가가 의기투합해 ‘흑산도 아가씨’ 노래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적혀 있다.

의아했던 건 ‘육지를 그리워하다 가슴이 검게 탄’ 노래 속의 섬 아가씨와 ‘서울 구경이 하고 싶은 낙도 어린이’의 정서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었다. 사실관계를 짚어보니 연대가 안 맞는다. 수학여행 보도를 보고 노래를 만든 것이 1965년이라는데, 흑산도 학생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건 1966년 9월 12일이다. 다른 사실이 더 있다. 당시 육 여사의 지원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게 아니라, 독일 에센 광산에 파견 간 우리 광부들이 보내준 700마르크(당시 돈 4만6900원)로 다녀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심리국민학교 학생들과 독일 파견 광부들은 어떻게 인연을 맺었던 것일까. 확인해보니 심리국민학교 교사의 사촌 형이 에센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였다. 이런 인연으로 자매결연을 했고, 수학여행비까지 선뜻 내줬다는 것이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학생들은 서독의 광부들에게 김 250다발과 미역 300장을 부쳤단다.

흑산도의 ‘홍어썰기학교’ 교육 모습.



# 홍어 썰기 달인이 썰어낸 홍어맛

이번에는 흑산도에 갔다면 빼놓을 수 없는 홍어 얘기. 흑산도에는 ‘홍어썰기학교’가 있다. 글자 그대로 ‘홍어 썰기’를 가르치는 학교다. 4기째 졸업생을 배출했고, 지금 5기생을 교육하고 있다. ‘홍어 써는 게 뭐 대단하다고 학교까지 만들 일이냐’고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 수업을 지켜보니 가르고 껍질 벗기고 토막 치고 썰어내는 일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관광객 체험 프로그램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강생 절반쯤이 식당 주방장 등 이른바 프로 ‘칼잡이’들인데도 교육과정만 꼬박 6개월이다.

홍어 썰기를 가르치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홍어를 자르는 순서와 칼을 넣는 방법, 써는 방향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원칙과 방식이 있다. 결을 따라 각을 잡고 썰어내려면, 순서도 지키고 요령도 따라야 한다. 신안의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흑산홍어썰기 기술자’ 민간자격증제도를 도입한 이유다. 잘 썰어낸 홍어는 보기에도 좋지만, 맛도 훨씬 더 좋다. 흑산도에서 잡히는 홍어의 절반쯤은 일반 소비자에게 택배로 나간다. 대부분 썰어서 포장해 보낸다. 홍어 썰기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니 어부들은 그 시간에 홍어를 잡는 게 더 이득이다. 대신 전문적으로 써는 이들에게 마리당 2만~3만 원을 주고 홍어 손질을 맡긴다. 흑산도에는 연봉 8000만 원이 넘는 홍어 썰기의 달인이 있다. 이른바 ‘써는 일’의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음식은 단연 홍어인 셈이다. 달인들이 썰어낸 흑산도 홍어가 입에 착착 감기는 이유는, 흑산도에서 갓 잡은 홍어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국내 최대 국립공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가장 면적이 넓다. 서쪽 끝인 신안 홍도에서 동쪽 끝인 여수 돌산 사이의 빼어난 바다와 섬은 모두 다도해국립공원에 들어간다. 다도해의 1700여 개 유·무인도 중에서 국립공원에 속하는 게 570여 개다. 전체 면적은 2322㎢(7억241만여 평). 22개 국립공원을 모두 더한 전체 면적(6726㎢)의 3분의 1이 넘는다. 각각 지리산국립공원의 4.6배, 한라산국립공원의 15.1배, 태백산국립공원의 30.1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