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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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놀다 (2022.12)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7. 11:44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구백 걸음 걸어 멈추는 곳

은행나무 줄지어 푸른 잎 틔어내고

한여름 폭포처럼 매미 울음 쏟아내고

가을 깊어가자 냄새나는 눈물방울들과

쓸어도 쓸어도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편지를 가슴에서 뜯어내더니

한 차례 눈 내리고 고요해진 뼈를 드러낸

은행나무 길 구백 걸음

오가는 사람 띄엄띄엄 밤길을 걸어

오늘은 찹쌀떡 두 개 주머니에 넣고

저 혼자 껌벅거리는 신호등 앞에 선다

배워도 모자라는 공부 때문에

지은 죄가 많아

때로는 무량하게 기대고 싶어

구백 걸음 걸어 가닿는 곳

떡 하나는 내가 먹고

너 배고프지 하며 먹다 만 떡 내밀 때

그예 목이 메어 냉수 한 사발 들이켜고 마는

 

나에게는 학교이며

고해소이며 절간인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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