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 "일에서 재미 찾아보자, 깜짝 놀랄 거다"
입력 2024.01.19 00:17
업데이트 2024.01.19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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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종교전문기자
지난 12일 경남 양산의 통도사 설법전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宗正) 신년 하례회가 있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해 종회의원 등 종단의 중책을 맡은 이들 300명이 최고지도자인 종정 성파(性坡) 스님을 찾아와 새해 인사를 드리는 자리였다. 새해 당부를 곁들여 성파 스님은 짧게 법문을 던졌다.
“가볍게 뛰어다니는 짐승은/화살에 상처 입을 화가 없지 아니하고/자주 나는 새는/반드시 그물에 걸리는 재앙이 있다.”
〈輕步之獸(경보지수)는 非無傷箭之禍(비무상전지화)요, 數飛之鳥(삭비지조)는 必有羅網之殃中(필유나망지앙중)이라)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종단의 여러 사건에 대해서 울리는 경종이기도 했다.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은 통도사 서운암 앞뜰에 연못으로 거대한 캔버스를 조성했다. 낮에는 영축산이, 밤에는 별이 캔버스에 내려 앉는다. 백성호 기자
그날 오후 통도사 산내 암자인 서운암에서 성파 스님을 만났다. 종단 최고지도자이자 통도사 방장(총림의 최고 어른)이지만 성파 스님은 늘 부지런하다. 직접 몸을 움직여 일을 하고, 지치는 기색도 없고, 일하는 자체가 재미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85세의 연세에도 건강하기 짝이 없다.
그 말끝에 성파 스님은 ‘마음먹기’에 대해서 말했다. “사람은 다 똑같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재미가 있고, 하기 싫으면 재미가 없다. 그게 마음의 이치(心理)다. 우리가 일로 삼고 일을 하면 속박 관념이 생긴다. 똑같이 1시간을 일해도 더 무겁게 느껴진다. 재미난 구석을 찾아서 놀기 삼아 일하면 달라진다. 똑같이 1시간 일해도 마음이 훨씬 가볍다. 결국 회사에도 더 보탬이 되고, 내 마음에도 더 보탬이 된다. 이런 게 ‘마음먹기’다.”
성파 스님은 “다들 마음먹기 달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말만 한다.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마음먹는 걸 실제 해보면 뜻밖의 결과에 깜짝 놀랄 거다”라고 말했다.
통도사 서운암 앞뜰에 조성한 연못은 한국의 전통 조경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집안에 작은 자연을 꾸미는 식이 아니라 바깥의 거대한 자연을 집안으로 들이는 식이다. 백성호 기자
서운암 앞뜰에는 직사각형(25m×50m) 모양의 큰 연못이 조성돼 있었다. 전에는 없던 연못이다. 산에 원래 있던 개울물을 끌어와 연못에 머물게 하고, 다시 흘러가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물이 썩을 일도 없다. 성파 스님은 “저건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직사각형의 거대한 캔버스 수면 위에 영축산의 산 그림자가 들어서고, 옆에 늘어선 장독대가 얼굴을 들이민다. 새가 날고, 구름이 흐르고, 바람도 들어섰다. 밤에는 캔버스 위에 별이 뜨고, 달도 내려앉는다. 상식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성파 스님은 “한순간도 같은 그림일 때가 없다. 계속 변한다. 이게 한국식 전통 조경이다. 마당에 아기자기하게 자연을 꾸미지 않고, 바깥에 있는 거대한 자연을 그대로 들여오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조경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파격적인, 그러면서도 본질을 관통하는 조경이다. 이치를 관통한 ‘수도자 성파’의 안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물이었다.
성파 스님이 수첩에 메모를 하고 있다. 뒤쪽으로 직접 그린 불화와 도자기 작품 등이 보인다. 성파 스님은 깨달음의 이치를 예술 작품으로도 펼쳐낸다. 백성호 기자
이처럼 성파 스님에게 깨달음과 일상은 둘이 아니다. 서운암 주위에서 몸소 차(茶) 농사도 짓는다. 들꽃을 심어 들꽃 축제를 열고, 650t에 달하는 도자기를 구워 팔만대장경도 제작해 장경각에 모셨다.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장독대를 구해 전통 된장도 담근다. 100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옻칠로 고려와 조선의 불화를 모두 생생한 색감으로 되살렸다. 오는 9월 25일부터 한 달 반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인전도 열 예정이다.
성파 스님은 이런 활동을 통해 ‘이사무애(理事無碍)’를 보여준다. 깨달음의 이치에도 걸림이 없고, 그걸 우리의 일상에 풀어내는 일에도 걸림이 없다는 뜻이다.
인터뷰하던 방 안에 옻칠한 도자기가 있었다. 위에는 청룡이 그려져 있었다. 성파 스님의 작품이다. 마침 올해는 청룡의 해다. 성파 스님에게 중앙일보 독자를 향한 새해 덕담을 부탁드렸다.
“청룡은 실제로 있는 짐승이 아니다. 상상 속의 동물이다. 옛날 사람들도 그걸 알았다. 만물의 영장은 인간이다. 그런데 하늘은 날지 못했다. 그래서 종종 용을 사용했다. 날고자 하는 희망이다. 황제의 자리를 용상이라 부른다. 용을 타고 앉는 거다. 황제의 옷은 곤룡포다. 인간이 최고까지 가는 걸 뜻한다. 그런데 백성은 황제가 못 된다. 그래서 꿈을 꾼다. 용꿈을 꾸는 거다.”
성파 스님이 만든 도자기 작품. 옻칠을 한 도자기 위에 전통 민화 양식의 청룡이 그려져 있다. 마침 올해는 청룡의 해다. 백성호 기자
이말 끝에 성파 스님은 ‘어변성룡(魚變成龍)’이라는 말을 꺼냈다. 물고기가 변해 용이 된다는 뜻이다. “옛날 사람들은 나는 게 꿈이었다. 지금이야 비행기만 타도 하늘을 날 수 있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해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용이 필요하다. 올해는 청룡의 해라고 하지 않나. 무슨 뜻이겠나. 희망을 갖자는 말이다. 힘껏 날아보자는 말이다. 우리가 모두 청룡이 되자는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서운암 뜰 연못에 하늘이 들어와 있었다. 땅이 하늘이고, 하늘이 땅이다. 그러니 우리가 청룡이고, 우리의 일상이야말로 진짜 하늘이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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