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으로 쌓은 북한산성 정문, 의상·원효대사가 지킨다
입력 2023.05.27 00:01
오늘 부처님오신날, 북한산에 깃든 불교
북한산 원효봉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들. 원효봉과 맞은편 의상봉은 북한산성 정문 대서문(동그라미)을 지킨다는 해석이 있다. 등산객이 있는 바위와 대서문 사이 계곡의 사찰은 서암사로, 조선시대 북한산성 승영사찰 13곳 중 하나였디. 사진 하단 왼쪽의 사찰은 석굴암이 있는 아미타사다. 김홍준 기자
승려가 지휘해, 승려들이 만들었다. 둘레 12.7㎞, 내부 면적 6.2㎢의 거대한 구조물. 한 해 탐방객 수백만 명을 끌어당기는 구심력. 북한산성이다. 그 산성을 이고 있는 북한산을 찾았다. 부처님오신날을 나흘 앞둔 지난 23일의 북한산은 크고 작은 사찰 100여 곳이 내건 연등으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왕도 지나갔고, 대통령도 드나든 문. 대서문은 북한산성의 정문이다. 숙종은 어린 영조를 데리고(1712년), 영조는 다시 왕세손이었던 정조와 함께 북한산성을 찾았다(1772년).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선임연구원은 “3대에 걸친 왕들이 북한산성을 찾았는데, 숙종만 정문인 대서문을 이용했다”며 “영조가 1760년에 북한산성을 찾았을 때는 대성문을, 1772년에는 대남문을 입구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산성입구에서 대서문을 지나는 탐방로를 ‘숙종의 길’로 부른다.
석가탄신일을 앞둔 북한산 도선사에서 연등을 달아놓았다. 연등은 연꽃의 련(蓮)이 아니라 불을 붙이거나 태운다는 ‘연’(燃)자를 쓴다. 따라서‘연등(燃燈)’은 ‘등에 불을 밝힌다’는 뜻이다. 이는 석가모니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깨달음을 전파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로 등을 켜놓았던 풍습에서 비롯됐다. 김홍준 기자
북한산 한 해 탐방객 600~700만명
숙종은 승려 성능(聖能)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승군 최고직)에 임명해 북한산성을 짓게 했다. 삼국시대부터 뼈대를 갖췄던 산성은 9개월 만에 만들어졌다. 남한산성은 승려 각성(覺性)의 진두지휘로 3년 만에 지어졌으니(1624년), 한강 남북의 두 산성은 승군의 불심(佛心)과 노역이 갈고 다듬어진 공양(供養)이었다. 박 연구원은 “정확히 말하면 성을 쌓는 대가로 공명첩을 받아 군역을 면제받았는데, 그래도 막중한 노역이었음은 분명했다”며 “승려 외에 군인·도성민이 축성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북한산 의상봉(앞)과 원효봉(오른쪽 뒤). 한국의 두 고승, 의상대사와 원효대사의 법명에서 가져온 봉우리 이름이다. 김홍준 기자
성능은 『북한지(北漢誌)』를 남긴다. 요새 나오는 책 제목으로 설명한다면 ‘북한산성에 관한 모든 것’이나 ‘알기 쉬운 북한산성’쯤 되겠다. 성능은 『북한지』 속 지도 ‘북한도’에 북한산성 정문 양쪽의 봉우리를 대선배(불교 용어로 ‘존자·尊者’ 또는 ‘대덕·大德’) ‘원효(元曉, 617~686)’와 ‘의상(義湘, 625~702, 『북한지』에는 義相으로 씀)’으로 표기했다. 김순배 한국지명학회 총무이사(충주여고 지리 교사)는 “북한산성 초입의 두 봉우리를 원효봉과 의상봉으로 부르게 된 건, 두 대사가 한국 불교의 개조(開祖·종파의 원조가 되는 사람)로 통하고 있는 것과 관계가 깊다고 볼 수 있다”며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 시대나 그 이전부터 그렇게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불기 2567년 5월의 한낮은 따가웠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면 탐방객 670만명 중 한 명, 2021년 기준으로는 736만명 중 한 명이 돼 북한산 대서문을 지났다. 대서문 편액은 이승만 대통령이 썼다. 그의 호 ‘우남(雩南)’이 새겨져 있다. 북한산성 승영사찰 13곳 중 하나였던 상운사에서 기거한 인연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1958년 대서문을 찾으면서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 너무나 평탄해 숙종의 걱정을 자아낸 길 위로 한 아이가 몇 발 앞으로 뛰어가더니 오른손을 들어 뒤따라오던 엄마와 가위바위보를 한다.
북한산 선봉사의 싯다르타상.. 싯다르타는 후일 깨달음을 얻어 샤카모니(석가모니)가 됐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칠 때를 표현하고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보를 걸었다. 그리고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외쳤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인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연규 스님(전남 여수 항일암 주지)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세상에 나밖에 없다, 내가 제일이다’로 잘못 쓸 수 있다”며 “하늘 안에, 땅 위에 모든 것이 존귀하고, 모든 것들은 깨달은 바대로 만들어진 것이며, 결국 차별도 없고, 좋고 나쁨도 없는 세상을 깨달았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숙종의 길’ 중간 선봉사에는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는 싯다르타 상(像)이 석가탄신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이 뒤바뀐 상도 간혹 있다. 불기(佛紀)는 불멸기원(佛滅紀元)의 준말.불멸(佛滅)은 석가모니가 열반(涅槃)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불기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해(기원전 624년)부터 세는 게 아니라 열반한 해, 기원전 544년부터 세기 때문에 올해가 2567년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석가모니는 인도 영취산(靈鷲山, 혹은 영축산·靈鷲山)에서 설법했다. 북한산에도 영취봉(靈鷲峰)이 있다. 아니, 있었다. 현재 영취봉은 염초봉으로 부른다. 성능도 『북한지』 속 ‘북한도’에는 ‘염초봉’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본문에는 ‘영취봉’이라고 썼다. 김순배 이사는 “현재도 그렇지만, 북한산에는 불교 지명이 많다”며 “하지만 사찰인 (경북 영주) 숙수사 위에 유교를 대표하는 소수서원이 세워졌듯, 조선 시대에는 불교 지명이 유교 지명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영취봉과 염초봉의 관계도 그럴 것 같지만, 좀 더 정확한 자료가 있어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숙종의 길 중간 선봉사엔 싯다르타상
염초봉(廉峭峰)은 ‘날카롭다’ 염(廉)과 ‘가파르다’ 초(峭)를 쓴다. 염은 청렴, 염치로 두루 쓰이지만 ‘날카롭다’라는 뜻으로는 생소하다. 공자가 말했다. “옛날엔 사람에게 세 가지 병폐가 있더니 지금은 그것마저 없다… 옛날 긍지가 센 사람은 청렴하여 위엄이 있었는데 지금의 긍지가 센 사람은 화를 잘 내고 거세다…(古者民有三疾…今古之矜也廉, 今之矜也忿戾…논어 양화16)” 주희는 여기에서 ‘염(廉)’을 이렇게 해석했다. “염은 모서리가 뾰족(峭)한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바르고 위엄이 있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도 같은 해석을 했다. 권상호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염초(廉峭)는 ‘물리적’ 가파름과 날카로움도 뜻하지만 ‘정신적’ 강직함과 올곧음도 의미한다”고 밝혔다.
북한산 염초봉. 염초봉 사면에도 다양한 암벽루트가 있다. 김홍준 기자
이 영취봉(염초봉) 서쪽 맞은 편에 나한봉이 있다. 나한(羅漢)은 부처의 말씀을 실천해 큰 깨달음을 얻은 고승(高僧)과 대덕을 일컫는다. 마주 보는 봉우리 사이에는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김 이사는 “나한은 불제자이기에 부처로 상징되는 영취봉을 마주하는 것처럼 『북한지』에 지명이 배치돼 있다”고 밝혔다. 염초봉 밑에는 도교의 ‘칠성(七星)’이 새겨진 바위도 있다. 칠성각·삼신각 등 사찰 속 전각처럼, 불교가 도교·민속신앙 등과 어울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북한산 원효봉 아래의 한 바위에 그려진 칠성(七星). 사찰에도 칠성을 모시는 칠성각이 있는데, 우리나라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김홍준 기자
북한산성을 찾은 숙종은 길이 너무 평탄해 성문 하나를 더 짓도록 지시했다. 중성문은 그렇게 태어났다. 성능은 중성문 위, 북한산 13개 승영사찰의 중심인 중흥사에서 30년을 지냈다. 근처 봉성암에 그의 사리(舍利)를 안치한 부도(浮屠)가 있다. 중흥사는 태고사와 함께 북한산성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데, 태고(太古)는 원증국사 보우(普愚, 1301~1382)의 법호다. 조계종의 중시조다. 김 이사는 “북한산성 축조와 사찰 배치는 승군을 요소요소에 배치하는 전략적 의미와 함께 역사 공간이자 문화 공간인 산성 위에 불교적 의미를 담으려던 노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남문은 북한산성의 출구다. 대남문 동쪽으로는 보현봉이, 서쪽으로는 문수봉(이 있는데, 좌우에서 석가모니를 협시(夾侍)하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에서 이름을 가져왔따. 북한산성의 출구인 대남문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사진=경기문화재단
대서문이 정문이라면 후문은 어디일까. 대남문이다. 이 성문을 나오면 보토현과 북악산을 거쳐 경복궁으로 이어진다. 문수봉과 보현봉은 대남문을 협시(夾侍·받들어 모심)하고 있다. 석가모니를 좌우에서 모시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는 사자를 타고, 보시를 상징하는 보현은 코끼리를 타고 있다. 이렇게 보현보살-석가모니-문수보살(좌측부터)을 모시는 불전은 대웅전으로 부른다. 보살이 아니라,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약사여래 (藥師如來) 같은 부처가 협시를 하면 격을 높여 대웅보전으로 부른다. 태고사에는 대웅보전이 있다.
숙종은 후문 대남문이 아니라 대동문을 통해 북한산성을 빠져나가 환궁했다. 지난 23일 기자는 대동문을 지나 용암문을 통해 하산했다. 예불이 끝나는 시간, 도선사의 한 승려가 불전사물(佛殿四物)인 법고·범종·목어·운판을 순서대로 두드렸다. 땅 위의, 땅속의, 물속의. 하늘의 중생과 짐승·미물이 차례대로 깨어난다. 어둑해진 길, 연등이 켜진다. 불 켠다는 뜻의 연등(燃燈)이 맞긴 하지만, 연꽃 모양이라 연등(蓮燈)으로 부르건 무슨 문제더냐. 내 마음의 불이 켜지면 되는데.
북한산 도선사에서 한 승려가 법고를 두들기고 있다. 법고는 범종, 목어, 운판과 함께 불전사물(佛殿四物)로 부른다. 김홍준 기자
북한산 도선사 범종각에는 법고·범종·목어·운판(시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순) 등 불전사물(佛殿四物)이 있다. 법고는 번뇌를 물리치고 모든 중생을 깨우치자는 의미다. 범종은 우주 중생을 깨우쳐 제도하는 대자대비의 소리를 뜻한다. 목어는 바다 수중에 사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의식구다. 운판은 날짐승들을 제도하는 의미다. 예불의 시작과 끝을 알릴 때 법고-범종-목어-운판의 순서대로 친다. 김홍준 기자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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