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7] 눈 내린 새벽의 종묘
눈 내린 새벽엔 뭘 하면 좋을까. 따뜻한 담요를 뒤집어쓰고 창밖으로 눈 구경을 해도 좋겠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 한잔을 마셔도 좋겠고, 아이처럼 집 앞에서 눈사람을 만들어도 좋겠다. 여기까진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이다. 어떤 사람은 종묘로 가서 사진을 찍는다.
물론 그러려면 많은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 새벽도 눈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특히 도심의 눈은 빨리 녹기 때문에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눈이 오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눈밭의 표면이 흐트러지기 전에 촬영을 마쳐야 한다.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 새벽에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사전에 허가도 받고 임박해서 소통도 해야 한다.
여기저기 헤매고 다닐 시간이 없다. 오래도록 상상하면서 마음에 저축해 둔 촬영 뷰포인트(view-point)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찍은 결과물이 여러 사람들이 겪는 과정의 번거로움을 넘어설 만큼 특별할 것이라는 사진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
서헌강은 모든 조건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작가이다. 글과 사진을 잘 버무려 한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기록과 미학적 가치를 추구한 잡지 ‘샘이 깊은 물’에서 경력을 시작해서 근 삼십 년간 ‘한국적인 것’, 한 우물을 팠다. 유무형 문화재, 사찰, 왕실 어보, 선비, 가옥, 민속 등등의 키워드로 한국의 전통에 대한 사진을 찾다 보면 서헌강을 거르고 지나칠 수 없다. 이 사진을 포함해서 십 년 넘게 꾸준히 촬영한 왕릉 사진은 조선왕릉이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도 기여하였다.
그는 우아하면서도 대비가 강한 색, 기품 있고 안정된 형태, 그리고 살아있는 자연 경관과의 조화를 무엇보다도 중시한 조선의 문화적 자원에 대한 이해를 사진에 적용하였다. 그의 사진에서 방금 온 눈은 눈답고, 구름 낀 새벽 하늘은 본 듯하고, 겨울 가지 앙상한 나무는 그런대로 편안한데, 이들에 둘러싸인 종묘는 낯설다. 종묘는 조선의 왕이 영면 후에 신이 되어 기거하는 곳이다. 오래되고 익숙한 것들을 큰 눈으로 바라보니 그 어우러짐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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