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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미디어와 친구로 잘 지내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2. 16. 16:41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9] 미디어와 친구로 잘 지내기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3.01.27. 03:00
 
 
 
 
김진희, Finger Play-057, 2019.

 

친구를 사귀는 일은 중요하다.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곧 내 삶에 대한 무수한 평가 지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현실세계에서 어른이 친구 사귀기는 만만치 않은 과제다. 제일 우선시해서 최선을 다하기도 어렵고 애를 쓴다 해도 잘 되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퇴근길에 친구를 만날까, 혼자 OTT 영화나 볼까, 잠시 저울질하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이 맺어주는 관계는 종종 친구나 가족보다 심리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쯤 되면 스마트폰을 반려 로봇으로 발전시켜서 그냥 친구 삼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그리하여 미디어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들과도 좋은 친구로 잘 지내야 하는 시대이다.

김진희 작가는 ‘손짓 훈련(Finger Play)’ 연작에서 함께 살아가는 미디어 속 인물들과 맺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냈다. 이 사랑스러운 작품은 작가의 사적인 고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에겐 피곤하면 손발 피부가 짓무르는 면역질환이 있다. 특히 손은 눈에 잘 띄는 데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니, 연인에게 내미는 손길은 말할 것도 없고 반가워서 나누는 악수며 친구와 부딪히는 하이파이브도 조심스러웠을 게다.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편치 않았을 그녀는 이 문제를 예술가답게 풀어냈다.

작가는 먼저 미디어에서 매끈하게 잘 관리된 손을 찾았다. 자신의 현실과는 달리 매력적으로 보이는 화보 속에만 있는 손. 물기를 머금은 듯 반짝이는 손톱과 그 끝에 매달린 딸기들은 시각적인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팀이 최선을 다해 연출한 한순간이다. 어떤 아름다운 모델도 매 순간을 저렇게 살 순 없다. 미디어에 노출된 그 순간은 판타지를 자극하고 때론 보는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작가의 평범한 손이 화보 속 손을 우러러 맞잡는다. 붉은 실로 꿰매고 말아 감아 연결된 두 손은 마치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평정한 마음 상태를 보여주듯이 탄탄한 긴장감을 품고 살며시 맞닿아 있다. 이 또한 현실에선 오래 유지되기 힘든 일이다. 어쩌겠나.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나는 오늘 또 친구를 찾아야 한다. 예술은 그렇게 불가능한 순간을 실현시켜서 우리를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