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5] 시간의 반짝임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곳곳에 설경이 아름답다. 이런저런 불편함도 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니 그래도 뭐 나쁘지 않지 싶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엔 유난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인기다. 해가 기우는 추운 겨울엔 우리에게 유난히 더 온기와 사랑과 기적이 필요한 것일 게다. 놀라운 일들은 현실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잉태되어서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지 않는 인간의 고뇌와 열망을 먹고 성장하여, 결국 어느 날의 세상을 반짝이게 만든다.
안준 작가의 ‘원 라이프(One Life)’ 연작 중 ‘그래비티(Gravity, 2013-2018)’에는 ‘중력에 저항하는 사과’가 등장한다. 우선 작가는 오브제로서 사과에 담긴 스토리와 매력에 주목하였다. 선악과, 트로이의 황금사과, 윌리엄 텔의 활을 맞는 사과, 뉴턴의 사과, 백설공주의 사과, 애플사의 사과 등, 오래고도 친숙한 상징으로서 사과는 작품의 중층적 의미를 유도하는 장치이자 시각적 매력을 발산하는 주인공이다.
또렷한 형태와 색, 빛을 받아 반짝이는 표면, 지면에 드리운 선명한 그림자. 공중에 떠 있는 사과들을 꼼꼼히 살펴보아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긴 어렵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니 현실이라 믿고 싶지만, 들여다볼수록 비현실감은 증폭되고 설렘 같은 긴장감은 오래도록 이어진다.
가장 행복한 일을 떠올리면 날개를 갖게 된다고 말하는 피터팬처럼, 작가는 자신의 가족이 된 남자와 함께 사과를 공중으로 던져 올리기를 반복하며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어서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작품 속에서 사과는 날개라도 단 듯 우아한 비상을 하고 있다. 파란 하늘과 하얀 눈을 배경으로 붉은 사과를 멈춘 시간은 사진 속에서 영원히 잃지 않는 반짝임을 얻었다.
안준의 작품 속에서 지구가 돌고 해가 뜨고 지는 질서는 잠시 멈춘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규칙을 뛰어넘어,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을 뒤집고 잡아둘 수 없는 것을 가두었으니, 기적이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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