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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주술사, 고래 50마리… 바위에 새긴 선사시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7. 13. 15:37

[뉴스 속의 한국사]

춤추는 주술사, 고래 50마리… 바위에 새긴 선사시대

입력 : 2023.07.13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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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巖刻畵)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 하천 건너 보이는 평평한 암면이 반구대 암각화예요. /남강호 기자

 

울산광역시가 울산 울주군에 있는 국보 '천전리 각석(刻石)'의 명칭을 '천전리 암각화(巖刻畵)'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해요. '각석'이란 '글자나 무늬를 새긴 돌'을 말합니다. 1973년 이 유적이 국보로 지정될 무렵에는 바위 위에 글자와 무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각석'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근처에 있는 또 다른 국보인 '반구대 암각화(대곡리 암각화)'와 마찬가지로 '암각화'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암각화'란 '바위 위에 새기기, 쪼기, 칠하기 등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유물이 국보까지 될 정도로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현존 우리나라 암각화를 대표하는 울산의 두 암각화는 어떤 유적일까요?

천전리와 반구대 암각화의 발견

1970년 12월 젊은 미술사학자 문명대(현 동국대 명예교수)는 울산에서 원효대사의 자취가 서린 신라 절터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민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절벽에 이상한 그림들이 보이는데 이끼가 끼고 흙탕물이 흘러내려 뭔지 모르겠다고 한다." 마애불(자연 암벽에 새긴 불상)일 거라고 짐작한 문 교수가 그곳에 다가가 보니, 뜻밖에도 수많은 그림과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원효대사보다 훨씬 오래전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 분명했습니다. 천전리 암각화가 발견된 순간이었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1971년 두 차례 천전리 암각화를 조사할 때마다 인근 대곡리 마을 사람들이 "우리 마을 냇가 절벽엔 호랑이 그림이 있는데…"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해 12월 문명대 교수는 김정배·이융조 같은 다른 학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그 그림을 조사하러 갔습니다. 출발한 지 10분 만에 아래쪽에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암벽이 보였다고 합니다. 배를 대고 그곳으로 가까이 가 보니 '아, 이럴 수가…' 하는 탄성이 나왔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지만, 아랫도리를 벗고 춤추는 사람, 바다거북 여러 마리, 새끼를 등에 태운 고래의 형상이 보인 겁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글자 없던 선사시대의 생생한 기록

학자들은 반구대 암각화를 두고 '선사시대 한국인들의 거대한 기록화'라고 입을 모읍니다. 물이 빠진 뒤 드러난 반구대 암각화의 실체는 장엄했습니다. 너비 9.5m, 높이 2.7m의 평평한 암면에 새겨진 것은, 수면을 뚫고 솟구치는 듯한 50여 마리의 고래와 거북·물개 같은 바다 동물이었습니다. 한편으론 마을 사람들이 봤다는 호랑이를 비롯해 멧돼지, 소, 토끼 같은 육지 동물들도 빼곡했습니다.

그냥 동물들을 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동물들은 사냥의 대상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가득 탄 배가 고래를 쫓고, 작살과 그물, 창을 든 사냥꾼과 춤추는 주술사가 한곳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2013년 조사 수치로는 모두 307점의 그림이 있었죠.

이에 대해 문명대 교수는 기원전 8000~ 6500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신석기시대 작품이라고 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선 기원전 5000년이라고 언급합니다. 문자가 없었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림으로 생생하게 남긴 대규모 기록이라는 것이죠. 청동기시대 초기라는 설도 있는데, 그때도 문자는 거의 쓰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들과 바다에서 수렵과 어로로 짐승들을 사냥하며 춤추는 주술사를 중심으로 축제를 벌이던, 까마득한 옛날의 생활과 문화를 알려주는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고래잡이의 역사가 그토록 오래된 것임을 입증하는 보기 드문 자료이기도 합니다.

근처 천전리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말부터 청동기시대 이후까지 조성된 유적으로 생각됩니다. 굵고 깊이 새겨진 동심원과 겹마름모 같은 기하학적 무늬가 인상적입니다. 동심원은 하늘, 겹마름모는 땅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여요. 그 밖에도 고래·상어·사슴·노루 같은 동물, 활로 뭔가를 겨눈 사람 같은 형상도 보입니다. 인물상과 기마행렬도, 신라 때 새긴 한자도 있죠. 김씨 왕권을 수립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은 뒤 기념으로 새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라 때 이곳을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명소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역사의 흔적이 중첩된 유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암각화에 대해 한마디로 "바위에 새긴 역사"라고 말합니다.

암각화 훼손의 비극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는 울산의 암각화는 훼손이 진행되거나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반구대 암각화 앞을 흐르는 대곡천은 1965년 건립된 사연댐 때문에 물 높이가 상승했습니다. 이 때문에 1년에 두세 달은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일이 이어져 매년 훼손이 거듭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막이나 댐 수문을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됐지만, 아직 확실히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반구대 암각화보다 훨씬 가까이 가서 들여다볼 수 있는 천전리 암각화는 2011년 사람 이름을 크게 한글로 쓴 낙서가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계의 암각화]

선사시대 암각화는 세계 각지에서 발견돼 역사 기록 이전의 삶과 문화·예술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스페인 북부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들소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고,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엔 들소·황소·말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도와 아프리카 중부 지역에도 암각화가 분포돼 있죠. 아르헨티나에는 손 모양이 많이 그려진 리오 핀투라스 암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그림은 바위 위에 색칠했다는 의미에서 암채화(巖彩畵)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울산 말고도 경남 남해 양아리, 경북 고령 장기리와 포항 인비리 등 여러 곳에서 암각화가 발견됐지만 암채화는 없습니다. 전호태 교수는 "암채화는 오래 인적이 끊긴 오지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곳이 거의 없어 보존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 대곡리 암각화에 새겨진 바다 동물(위), 사람(왼쪽 아래), 육지 동물 그림. /울산시

 

                                                      ▲ 울산 울주군 천전리 암각화의 모습. /문화재청
                               ▲ 천전리 암각화에 새겨진 청동기시대 기하학적 그림(위)과 신라 때 문자. /울산시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