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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목간(木簡)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7. 6. 16:35

[뉴스 속의 한국사]

'九〃八十一' 구구단 외우고, 논어 적으며 한문 익히기도

입력 : 2023.07.06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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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목간(木簡)

 백제 지역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목간. /국립부여박물관

충남 국립부여박물관에서 30일까지 '백제 목간, 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 특별전이 열려요. '목간(木簡)'은 붓으로 글씨를 쓰려고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뭇조각이에요. 종이가 귀하던 시절 비싼 종이 대신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나뭇조각에 글씨를 쓴 거예요. 목간은 옛날 사람들이 직접 붓으로 쓴 생생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커요. 백제에서 어떤 재미난 목간들이 발견됐는지 알아볼까요?

백제인의 손 글씨에서 찾은 한국식 한자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목간은 약 660점 정도인데 그중 백제 목간이 약 250점이에요. 백제 목간은 주로 수도인 부여 지역 관청이나 절터에서 발견되지만, 전남 나주 복암리 등 다른 지방에서 발견되기도 해요. 백제 목간은 하급 관료들이 작성한 문서나 꼬리표 같은 것이 대부분이에요. 문서의 경우 사람이나 기관에 어떤 의사를 전달하려고 작성한 기초적인 장부나 메모 같은 것이 많아요. 꼬리표는 세금을 내거나 물건을 보낼 때 화물 전표처럼 매단 것이 대부분이에요. 낙서나 쓰기 연습을 위한 습서(習書), 전염병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이 있는 목간도 발견됐어요.

부여 쌍북리 작은 건물터에서는 '외경부(外椋部)'라고 적힌 목간이 발견됐어요. '경(椋)'은 건물 바닥이 지면에 닿지 않도록 기둥 위에 세워진 창고를 가리키는 글자라고 생각하면 좋아요. '외경부'는 백제 사비 시기 중앙행정 관청의 하나인데, '외경(外椋)'이라는 이름에서 왕궁 바깥쪽 창고를 관리하는 행정 기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백제에는 내경부(內椋部)도 있었어요. 왕궁을 경계로 안쪽과 바깥쪽에 각각 왕실 재정이나 출납과 관계된 창고가 있었고, 이를 관리하는 중앙행정 기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답니다. 고구려나 신라에서도 하경(下椋·아래쪽에 위치하는 창고)이나 경사(椋司·창고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 등 비슷한 사례가 확인돼요. 그런데 '椋'은 중국에선 '푸조나무 량'으로 쓰여요. 나무의 종류를 가리키는 글자로만 사용되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나무 이름 대신 '창고'를 가리키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됐어요. 이 경우 '량'이 아니라 '경'으로 읽었어요.

'椋'처럼 한자를 중국과 달리 한국식으로 사용한 사례로 논을 가리키는 '답(畓)'자가 있어요. 우리가 '밭'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전(田)'이 중국에서는 '논'을 의미하기도 했어요. 논밭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나주 복암리에서 발견된 목간에는 벼를 재배하는 논은 답(畓), 잡곡을 재배하는 밭은 백전(白田), 보리밭은 맥전(麥田)처럼 농지의 종류와 재배 작물을 구분해서 표기하고 있는 것이 확인돼요. 백제에서는 중국 한자를 수용하면서도 점차 우리 실정에 맞게 바꿔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구구단과 논어를 암기한 백제 관료들

부여 쌍북리 328-2번지 유적에서는 구구단이 적힌 목간이 발견됐어요. 이 목간은 한쪽 면에만 묵서(먹물로 쓴 글씨)가 확인되고 전체 103자 정도가 판독됐어요. 구구단 목간은 9단부터 2단까지 기록돼 있고, 각 단 사이에는 가로선을 한 줄씩 그어 구분했어요. 2단부터 외우는 오늘날의 구구단과 달리 9단이 가장 위에 있어요. 우리가 '2×1=2'부터 암기하면서도 '구구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옛날 사람들이 '9×9=81'부터 쓰고 암기했기 때문이에요.

백제의 구구단은 각 단이 시작하는 첫 행에 동일한 숫자가 중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반복 부호(〃)를 사용했어요. 예를 들어, 9×9=81의 경우 '九〃八十一', 8×8=64의 경우 '八〃六十四'처럼 기록한 거예요. 20은 卄(입), 30은 卅(삽), 40은 卌(십)으로 써서 열 십(十) 자에 하나의 획을 더해가면서 표기한 흔적도 확인돼요.

쌍북리에서 발견된 구구단 목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구구단이라 더 의미가 있어요.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쯤 만들어진 구구단 목간이 발견됐고, 일본에서도 7세기 후반 제작된 구구단 목간이 출토됐어요. 7세기 부여 관청터에서 구구단 목간이 발견돼 백제 하급 관료가 구구단 정도는 암기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구구단을 비롯한 고대 수학 지식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진 것도 짐작할 수 있답니다.

구구단 목간이 발견된 장소에서 600m 떨어진 쌍북리 56번지 유적에서는 논어(論語)를 적은 목간도 발견됐어요. 유교의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경전이 발견된 거예요. 길이 28㎝ 크기의 이 목간은 폭 2㎝ 되는 4면에 글자가 쓰여 있어요. 1면에는 논어 첫머리인 학이편(學而篇)의 유명한 구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悅乎)'로 시작되는 문장이 쓰여 있어요. 백제에서 중국 유교 경전이 한자와 한문 학습에 활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3면에선 '人不知∨而不慍}(인부지∨이불온·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처럼 띄어쓰기를 한 흔적도 확인됐어요. 백제인들이 한문을 배우면서 우리식 어법에 맞게 띄어 읽었음을 짐작할 수 있죠.

중국 역사책에는 백제인들이 '고서(古書)와 사서(史書)를 즐겨 읽고, 뛰어난 사람은 제법 문장을 지을 줄 알았으며, 행정 실무에도 능숙했다'고 기록돼 있어요. 사비 시기 백제 관료와 지배층은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읽을 뿐 아니라 천문과 의약, 관상술과 점치는 것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지적 수준이 높았다고 해요. 부여에서 발견된 구구단과 논어 목간은 백제인의 높은 지식 수준을 보여준답니다.

[나무에 쓴 글씨를 읽는 방법]

목간은 나무여서 시간이 흐르면 썩어 없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목간은 사막처럼 건조한 기후 환경이나 연못·저수지처럼 산소 유입이 차단된 특수한 조건에서만 썩지 않고 보존돼요. 오랜 기간 땅속에 묻혀 있었던 목간을 발굴해 곧바로 글씨를 읽기는 쉽지 않아요. 먼저 부드러운 붓을 이용해 이물질을 닦아내고, 특수 용액으로 불순물을 제거해요. 그 뒤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목간의 글씨를 촬영하죠. 적외선 촬영법은 일반 카메라에 적외선 필터를 붙여 촬영하는 방법으로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먹글씨가 선명하게 보이게 해줘요. 이후 사진 보정 작업을 거치고 전문가들이 글씨 하나하나를 판독한답니다.

도움글=백제학회 한성백제연구모임, '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2020(사회평론).

                                          ▲ 부여 궁남지 유적에서 목간이 출토된 모습.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 ‘외경부’라는 관청 이름이 적혀 있는 목간. 외경부의 철(鐵)을 면(綿) 10량으로 바꾼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국립 부여박물관
                               ▲ 구구단이 쓰여 있는 목간. ‘四〃十六’ 등 4단이 적혀 있어요. /국립부여박물관
                                   ▲ 논어 학이(學而)편 시작 부분이 4면에 걸쳐 쓰여 있어요. /국립부여박물관
                                                  ▲ 부여 관북리 유적 연못에서 출토된 목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