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사연 많은 남산 와룡매, 이번엔 강풍에 부러져
<1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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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서울 남산 둘레길을 걷고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앞 명물 와룡매 중 홍매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아래는 현장 사진입니다. 와룡매 중 홍매가 잘려나가고, ‘지난 5월 6일 강풍으로 부러져 접목 후 생육 상태를 관찰 중’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찾아보니 지난달 어린이날 연휴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부는 날씨였습니다. 특히 6일 오전엔 서울 남산 주변에 초속 10m/s 안팎의 비교적 강한 바람이 불었더군요.
남산 안중근기념관 앞에는 원래 홍·백 한쌍의 매실나무 두 그루가 있었습니다. 용이 엎드린 형상이라고 ‘와룡매(臥龍梅)’라고 불리는 품종인데 이 나무는 400년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원래 창덕궁 선정전 앞에 있었던 나무들인데, 1593년 임진왜란 때 다테 마사무네라는 일본 장수가 전리품으로 뽑아갔습니다. 다테 마사무네는 이 와룡매를 가문의 절인 미야기현 즈이간지(瑞巖寺·서암사)에 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400여년 후 이 와룡매 후손이 귀국했습니다. 1999년 즈이간지의 주지 스님이 와룡매 가지를 접목해 얻은 후계목을 기증해 안중근기념관 앞에 홍·백 한쌍을 나란히 심은 것입니다. 이 주지 스님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참회의 뜻”으로 기증한 것이라고 했답니다.
이 매화는 겹매라 그런지 다른 매화에 비해 개화가 늦은 편(3월말~4월초)이었지만 궁궐 나무의 후손답게 정말 예뻤습니다. 특히 홍매는 연한 분홍색 겹꽃으로 피는 것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지난해 제가 ‘서울에도 매화 개화, 베스트 감상 명소는?’이란 글을 쓸 때 안중근기념관 앞을 넣은 이유였습니다. 홍매만 수난을 당하고 다행히 안중근기념관에 가까운 쪽에 있는 백매는 무사했습니다.
초속 10m/s 안팎의 바람은 센 바람은 아닙니다. 이 정도 바람은 ‘잎이 무성한 작은 나무 전체가 흔들리는 정도’여서 ‘흔들바람’이라고 합니다. 강풍주의보를 발령하는 기준이 초속 14m/s 이상의 바람이 예상될 때입니다. 그런데도 와룡매가 쓰러진 것은 근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줄기가 썩어 2~3년 전에도 나무 외과수술을 했고 지지대까지 받쳐 주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홍매가 있던 자리가 남산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여서 더욱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이 나무를 관리하는 중부공원여가센터 담당자는 “작년에는 꽃 피는 것도 시원찮았는데 올해는 꽃이 잘 피어 그나마 좀 안심했다”며 바람에 부러진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현장을 보니 홍매가 잘린 줄기에 원래 나무에서 자른 작은 가지를 꽂아 접목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중부공원여가센터는 “발근촉진체 처리해 접목을 시도하고 있지만 접목에 적합한 시기도 아니고 뙤약볕을 피할 수 없는 환경이라 살아날지 모르겠다”며 “이와 별도로 양묘장에서 작은 가지들을 삽목하는 방식도 시도하고 있는데 역시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센터는 “여의치 않을 경우 수원농고·홍릉숲에 있는 다른 와룡매 후계목에서 가지를 구해 시도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나무를 살리는 기술이 좋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남산 와룡매가 다시 살아날 것으로 믿습니다. 부디 거뜬히 부활해 이전의 아름다운 겹홍매의 매력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접목 또는 삽목이 성공하더라도 수세(樹勢)를 어느 정도 갖추려면 최소 5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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