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퇴계 이황도 감탄한 소백산 철쭉 보러 가다
<1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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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철쭉이 근래 몇 년 사이 가장 상태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가만 있을 수 없었다. 마침 5월말~6월초는 소백산을 낀 두 도시, 단양·영주가 소백산 철쭉제를 여는 시기다. 소백산 철쭉제는 거의 유일하게 진짜 철쭉으로 하는 철쭉제다. 다른 곳 철쭉제는 산철쭉이 필 때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아예 철쭉은 물론 산철쭉도 없이 영산홍만 심어놓고 철쭉제를 하는 곳도 있다.
27일 산행 출발점으로 잡은 어의곡탐방센터에 도착하니 찔레꽃 향기가 물씬 풍겼다. 등산로 입구 여기저기에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마침 주변 밭에 감자꽃도 한창이었는데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 동영상까지 담았다.
탐방로에 들어서자 고광나무 꽃이 지천이다. 고광나무는 꽃잎이 4장인 것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꽃공부할 때 ‘(꽃잎 수가) 고광은 4장, 야광(나무)은 5장’으로 외운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해 요즘 어느 산에 가든 하얀 고광나무 꽃을 감상할 수 있는데 소백산엔 유난히 많았다.
조금 더 오르니 함박꽃나무 꽃도 한창이다. 목련 비슷하게 생겨 흔히 산목련이라고 부르는 꽃이다. 맑은 함박꽃나무 꽃향기까지 맡으니 메인 메뉴인 철쭉을 보기도 전에, 새벽에 일어나 3시간 넘게 달려온 보상을 이미 받은 것 같았다. 험한 오르막길이었지만 은방울꽃, 감자난초, 금강애기나리 등 기대하지 않은 꽃들이 차례로 반겨주었고 그 때마다 힘든 것이 사그라들며 다시 힘이 났다.
잣나무 숲을 지나 시야가 트인 능선에 이르자 본격적으로 철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연 근래 가장 좋다는 말이 나올 만 했다. 비로봉 주변 능선은 연분홍 구름이 뭉게뭉게 몰려 있는 것 같았다. 퇴계 이황은 풍기군수 시절 소백산에 올라 ‘(철쭉)꽃이 한창 무르익어 화사하게 흐드러져 마치 비단 장막 사이를 거니는 듯하다”(‘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는 소감을 남겼다. 얼마나 근사했으면 ‘비단 장막’이라고 표현했을까.
소백산 철쭉은 유독 분홍색이 진한 것이 많았다. 원래 철쭉은 흰색에 가까울 정도로 연한 분홍색 꽃이 많고 진한 분홍색 꽃이 피는 것은 산철쭉이다. 철쭉은 꽃이 연한 분홍색이라 ‘연달래’라고도 부르고 산철쭉은 보통 계곡 등 물가에 많이 피어 ‘수달래’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그런데 소백산 철쭉은 진짜 철쭉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색이 진한 것이 유난히 많았다. 마침 곳곳에 붉은병꽂나무 꽃도 피어 있어서 진한 분홍색 잔치를 하는 듯했다.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길은 아예 철쭉 터널을 이루고 있다. 철쭉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날씨까지 맑았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잔뜩 낀 날씨에도 철쭉은 정말 근사했고 사람들은 “야, 진짜 예쁘다”를 연발했다.
철쭉의 한자어는 ‘척촉(躑躅)’이다. 꽃이 너무 예뻐 자꾸 걸음을 멈추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철쭉만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망봉 주변엔 마침 큰앵초도 제철이라 여러 번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앵초는 4월에 피고 길쭉한 잎에 주름이 져 있지만 큰앵초는 지금부터 피고 잎이 크고 단풍잎 모양인 점이 다르다. 꽃색도 앵초는 연한 분홍색, 큰앵초는 진한 분홍색이다. 화단에 있는 프리물라(Primula)가 대표적인 앵초 원예품종이다.
이 길에서 나도옥잠화를 보는 행운도 따랐다.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꽃이다. 꽃 모양은 다르지만 잎 모양이 옥잠화 비슷하다.
을전 쪽으로 하산 길에선 비슷하게 생긴 물참대와 말발도리가 차례로 나타났다.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꽃의 아래쪽 색을 보는 것이다. 물참대는 연두색, 말발도리는 황색을 띠고 있다. 물참대는 비교적 깊은 산 개울가를 따라 흔하게 보이고 말발도리는 물가가 아닌 그늘진 곳에서 볼 수 있다. 좋아하는 환경이 좀 다른 것이다. 수술 길이를 봐도 알 수 있는데, 물참대 수술이 말발도리 수술보다 길다. 그래서 물참대 꽃을 보면 왕관 모양이 떠오른다. 확실한 것은 물참대는 잎 뒷면에 털이 없지만 말발도리는 털이 있다는 점이다.
당일 소백산에 다녀오느라 새벽에 일어나야했고 주차장이 부족해 3~4㎞ 전 길가에 주차하고 접근해야했다. 15㎞가 넘은 험한 산길이라 하산길엔 다리가 아팠다. 게다가 안개와 비 때문에 철쭉이 핀 능선 길에서 원경을 담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철쭉에 은방울꽃, 큰앵초, 나도옥잠화 등을 원없이 보고 사진까지 담아 내려오니 큰 부자가 된 듯 뿌듯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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