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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기자의 예술순례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 (2)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의 미술 세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5. 16. 14:57

물속에서도 또렷… 수행하듯 그려 넣은 色色의 암각화

문화일보입력 2022-05-24 09:08
장재선

 

 성파 스님이 서운암에 만든 나전옷칠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 수조. 인근에서 관람객이 촬영하거나 아이들이 뛰는 모습이 물속에 비치고 있다. 장재선 선임기자



■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 (2)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의 미술 세계

한국 불교 최초의 예술가 종정
내달 현대미술관 채색화전 출품
7000년 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옻칠로 채색·재현해 수중 전시
“우리 전통문화의 뿌리는 불교
수행과 예술, 하나 되게 할 것”


 반구대 암각화를 재현한 그림.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포경 유적이다.

서운암으로 오르는 길. 왼쪽에 무리 지어 있는 불두화와 이팝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운 오월의 꽃으로 웃음을 건넸다. 맞은 편 야생화 군락에선 작약꽃들이 막 붉어진 빛으로 울음을 토해내고 있다. 웃음과 울음의 사잇길에서 배어난 땀이 옷을 살짝 적실 때쯤 사찰의 가람이 나타났다. 암자라고 했는데, 웬만한 절보다 큰 규모로 보였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는 19개 말사 암자가 있다. 그중 서운암(瑞雲庵)은 위쪽에 자리한다. 상서로운 구름이 머문다는 뜻의 이름만큼 빼어난 풍광을 지녔다. 야생화 군락에 둘러싸여 있으며 영축산의 첩첩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조계종 종정 성파(性坡) 스님의 불교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통도사에 왔다가 서운암에 들르지 않으면 서운하다”는 말장난에 고개를 끄덕여줄 만한 곳이다.

절의 안내판을 따라 장경각(藏經閣) 앞의 마당을 먼저 찾았다. 성파 스님이 나전옻칠로 재현한 울주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가 거기 있다고 들어서였다. 과연 마당의 끝부분에 두 개의 수조(水槽)가 있었다. 다가가 보니 반구대 암각화가 물속에서 선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반구대 암각화는 7000여 년 전 선사시대인이 손도끼 등으로 바위에 새긴 그림이다. 울산 대곡천 변에 너비 8m, 높이 3m 크기로 남아 있다. 현장에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오랜 세월의 풍화 작용으로 그림 내용을 정확히 알아보기 힘들다. 성파 스님이 실제 크기로 재현한 그림은 고래와 호랑이, 사슴, 멧돼지, 사람 등의 모습이 또렷하다. 학자들이 탁본으로 알아낸 내용을 그림판에 옮기며, 다채로운 색으로 형상을 분명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천전리 암각화를 재현한 문자와 그림.

그 옆 수조에 있는 천전리 암각화는 채색하지 않아 단색의 담백함을 풍긴다. 선사시대부터 신라 때까지의 동물 그림과 문자 등이 새겨져 있다.

두 암각화는 국보로 지정돼 있다. 반구대 그림은 작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 대상으로 선정됐다. 성파 스님이 두 각석(刻石) 문화재를 3년에 걸쳐 재현한 까닭은 무엇일까.

“암각화는 인류 미술의 원조잖아요. 그걸 현대인들이 돌이켜보길 바란 거지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뒷받침하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 민족문화의 유구한 역사를 찬란하게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서운암 인근의 ‘토굴’이라고 불리는 작업실에서 만난 성파 스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수조를 파서 그림판을 넣고 수중 전시를 하는 이유도 우리 전통의 나전칠기 기법에 대한 자부에서라고 했다.

“어떤 명화도 물에 들어가면 절단이 나지요. 그런데 여긴 옻칠을 해놨으니 괜찮을 거예요. 낙랑시대부터 옻칠은 오래간다는 기록이 있어요. 백 년이 갈지, 천 년이 갈지 모르겠으나 지금 보면 끄떡없잖아요, 하하.”

올해 83세인 스님의 미소는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조계종 최고 어른인 종정임을 깜빡 잊게 하는 웃음이었다. 그 덕분에 아까 나전옻칠 반구대 암각화 옆에서 신나게 뛰놀던 어린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전하니 반색을 했다.

“아, 그랬구나.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뛰어놀아도 좋아요. 물속에서 개구리가 알을 낳고, 밤이면 별과 달이 스밉니다. 인간과 자연의 합작품이지요.”

스님은 한국 불교 최초의 예술가 종정이다. 시조를 지으며 시조대회를 열었고, 직접 만든 전통 한지에 선(禪)의 세계를 담은 서화를 선보였다. 불경을 사경한 고려 감지(紺紙)를 연구하다가 천연 쪽 염색에 통달하게 돼 관련 전시를 열기도 했다. 지난 30여 년간 옻칠 불화, 민화 전시만 20차례가 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6월 1일부터 여는 채색화전 ‘생의 찬미’에도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 초대를 받았다.

참선 수행자만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승가(僧家)에서 질시는 없었을까. 스님은 방언 억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의사가 내 귀는 특별하다더라. 내게 그런 소리들은 들리지 않는다.”

그가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안거(安居) 등의 수행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자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91년부터 10년 동안 팔만대장경의 양쪽을 도자기로 구워서 만든 ‘십육만 도자대장경’을 조성한 스님이다. 그 법력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스님은 자신의 예술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작품을 보는 이가 느끼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목소리가 커진다.

“서양 문화에서 기독교를 빼고 말할 수 없잖아요. 우리 전통문화의 중심은 불교입니다. 종교를 넘어서 민족문화 차원에서 불교 예술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생의 찬미’에 나오는 성파 스님 작 ‘수기맹호도(睡起猛虎圖)’. 잠에서 깨어난 호랑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기상을 표현했다.

스님은 현재 진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채색화의 흐름’ 전을 관람한 소감을 자세히 전했다. 한국 전통 회화에서 수묵화(水墨畵)만을 높이 평가해왔으나 진채화(眞彩畵)의 역사가 재인식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 불화의 전통을 바탕으로 조선 말기에 채색화가 흥성했던 흐름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진정한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 대중문화와 함께 전통 한류를 개발해야 한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찾아왔을 때도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했고, 대통령도 공감했다.

스님은 전통문화예술연구원을 통도사에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자신이 방장을 맡고 있는 통도사가 한국 불교의 전통문화를 미래지향적으로 가꾸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통도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이곳 선원의 조실이었던 경봉(鏡峰·1892∼1982) 선사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해우소(解憂所)’라는 말을 지어낼 정도로 창의적이었던 경봉은 참선의 한 방편으로 칡뿌리를 개울물에 찍어 바위에 글씨를 쓰곤 했다. 수행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것, 이는 성파 스님의 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 대중이 불교 세계를 가깝게 여겨줬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저 멀리 원효(元曉·617∼686)의 삶에 맥락이 닿아 있다. 불교의 가르침을 노래로 지어 부르며 저잣거리의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간 신라의 고승. 무엇보다 성파 스님이 수행과 예술을 통해 화엄(華嚴)의 세상을 꿈꾸는 것은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을 떠올리게 한다. 바다가 모든 강물에서 떠내려오는 것을 포용하는 것처럼 전체를 인정하되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는 ‘긍정의 부정’이 화엄이다.

성파 스님은 화엄의 세상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예술 장르를 넘나든다. 어떤 장르를 작업할 때 가장 신날까. 그렇게 물었는데, 아차!, 우문이었다.

“다 신나요. 특별히 예술 작업이라고 여기지 않고 생활 속에서 늘 함께하니까요.”

■ 성파 스님의 마음 다스리는 법
“화날때 ‘참을 忍’ 쓰면 나중에 폭발…‘寬容’새겨라”

성파(사진) 스님을 만났을 때 그는 내복 위에 패딩 조끼를 입고 있었다. 바지엔 물감 흔적이 묻어 있었다. 평소의 작업복이라고 했다. 종정이라는 지위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식 행사가 있을 때는 그에 어울리게 언행을 하는 것이 옳다고 그는 생각한다. 법회에서 의례용 가사(袈裟)를 제대로 차려입는 것은 그 때문이다.

스님은 은사인 월하(月下·1915∼2003) 스님에 이어 종정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월하 스님은 당시 조계종 행정 최고책임자인 총무원장 월주(月珠·1935∼2021) 스님과 동행했는데, 잠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월주 스님의 수제자인 원행(圓行·69) 스님이 총무원장을 할 때 성파 스님이 종정으로 추대된 것은 묘한 인연이다.

“올해 총무원장, 중앙종회 의원 선거 등 종단에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준비해왔던 개인 전시는 한참 뒤로 미루려고 합니다. 하지만 선거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사에 무애의 모습을 지향하지만, 종정으로서는 언행에 절제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할 말을 다 몬하는 기라.”

스님에게 일상에서 화가 치솟을 때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관용을 마음속에 써 붙여뒀다가 화가 나면 거기에 대라”고 했다. “너그러울 관(寬), 얼굴 용(容). 화두처럼 새겨야 합니다. 참을 인(忍) 자가 아니에요. 참으려면 힘들어요. 나중에 폭발하게 되지요, 하하!”

■ TIP - “안 가면 서운” 통도사 서운암

서운암(瑞雲庵)은 경남 양산시 영축산 자락에 있다. 1326년에 창건된 절로, 통도사의 말사 암자 중 하나이다. 통도사엔 19개 암자가 있는데, 순례길로 조성돼 있다. 모두 차로 갈 수도 있다. 서운암 들머리에서 항아리 5000여 개를 만날 수 있다. 성파 스님이 전통 방식으로 담근 된장, 간장들이 있다. 주변 야산엔 100여 종의 야생화 수만 송이를 심어 자연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암자에 가면, 도자기로 구운 팔만대장경을 장경각에서 볼 수 있다. 나전옻칠 반구대·천전리 암각화가 있는 수조 앞에 나무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영축산을 바라보며 쉬거나 명상을 하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