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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창을 겸한 남천동 성당 유리화… 장엄하게 쏟아지는 ‘빛의 예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5. 12. 14:31

지붕·창을 겸한 남천동 성당 유리화… 장엄하게 쏟아지는 ‘빛의 예술’

문화일보입력 2022-04-26 10:48
장재선

 부산 남천동 성당 안에서 벽면과 천장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유리화의 빛으로 한 수녀가 성경을 읽고 있다. 장재선 선임기자

 


■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 ① 조광호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지하철 당산철교 250m벽화에
범어동 성당·문화역 284 까지
건축 아트글라스 현대화 앞장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운영중
물·기름 서로 미는 성질 이용
다층 색기법 개발 특허 등록도

“열일곱에 출가해 일흔이 넘어
그간 예술과 함께 잘 놀았지요
가출상태서 이제 돌아갈 준비”


“열일곱에 출가하여/ 일흔 되어 돌아보니/ 가출이었네.” 단순한 선으로 신부인 듯 스님인 듯 사람 형상을 그려놓고 이렇게 글을 붙여놨다. 조광호 신부의 공방에 있는 드로잉 작품이다. 올해 만 75세인 조 신부는 “고교 때 신부가 되겠다며 집을 나온 이후로 성장하지 않은 채 그대로이니 가출 상태인 셈”이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사제이자 예술가다. 시와 산문을 쓰며 동시에 회화와 조각 작업을 해 왔다. 서울 지하철 당산철교 구간의 250m짜리 벽화가 그의 작품이다. 서울 서소문 성지의 순교자 현양탑을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빛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 아트, 즉 유리화 영역에서 빼어난 성취를 이뤘다.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 학장을 지낸 그는 인천 연수구에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Space & Glass Art)를 꾸리고 있다. “건축 아트글라스(Architectural Art Glass) 분야의 국제적인 표준에 따라 최초로 국내에 설립된 공방이다.” 연구소 홈페이지의 문구에서 자부가 엿보인다. 직접 찾아가 보니, 지하 1층~지상 3층 건물 곳곳에 여러 장치가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다. 가마와 실크스크린 투광기, 프린터기 등이 모두 대형이었다.

“과거 유리화는 납(鉛)으로 이어 붙이는 모자이크 형식이었지요. 요즘엔 특수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마에 굽습니다. 이렇게 대형 장비가 있어야 대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유약 종류도 수백 가지입니다. 유약은 자기 몸이 변해서 유리화의 일부가 되니 참 귀한 존재지요.”

조 신부는 고 이남규 등 한국 유리화 선구자들의 뒤를 이어 건축 아트글라스의 현대화에 앞장서 왔다. 대학의 이공계 학자들과 교류하며 작품에 적합한 기술을 찾기 위해 애썼다. 물과 기름이 서로 밀어내는 성질을 이용한 다층(多層) 색기법을 개발해 특허 등록을 한 것은 그 노력의 결실이다.

조 신부는 서울 가톨릭대를 졸업한 후 독일 뉘른베르크 조형예술대에서 유학했다. “한국 교회에서 취미 생활을 하라고 유학을 보내준 게 아니니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귀국 후엔 교회의 요청에 따라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저를 듣기 좋게 ‘르네상스형 작가’로 부르지만, 구멍가게처럼 응하다 보니 잡탕이 된 것이지요, 하하.”

그는 평자들이 자신의 작품들을 ‘성(聖) 미술’의 범주에 넣는 것을 사양한다고 했다. “신부 작품이니 그렇게 넣는 모양인데, 그런 논리라면 성당에 있는 TV는 ‘성 TV’가 돼야 하겠지요. 사실 ‘성 미술’은 없어요. 인간이 만드는 예술에 ‘성’자를 넣는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런 이름에 집착하기보다는 복음 메시지를 작품에 어떻게 제대로 담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가 성 미술은 없다고 했으나 그 경지를 높게 잡고 거기에 닿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붓고 있음을 헤아릴 수 있다. 대구 범어동 성당, 문화역서울284, 숙명여대 박물관, 서강대 본관 등에 있는 그의 유리화가 뚜렷한 증거다.

연구소에 있는 작품 중 성서 속 이야기를 동양화풍으로 담은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반가사유상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운보 김기창의 그림에서 비슷한 시도를 본 적 있으나, 유리화로 만나니 신선했다.

그는 순례자에게 부산 남천동 성당 유리화를 보러 가기를 권했다. 길이 53m, 높이 42m 크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여서 볼만하다는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디자인을 짠 후 1년 반 동안 조수 30여 명과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성당을 찾았다. 봄비가 흩뿌린 날이었는데,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가 “와!”하는 감탄을 흘렸다. 환한 빛이 안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밖이 어둑신했으나, 안은 완연히 다른 세계였다. 45도로 기운 면이 지붕과 창을 겸하고 있는 건축 구조인데, 유리화가 그 거대한 면을 다 채우고 있었다. 3개의 큰 원이 구원과 융합의 상징으로 십자가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빛의 창조와 성신 강림 등 성서 속 이야기가 색색으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거기 담긴 상징과 은유를 다 알지 못해도 장엄하게 쏟아져 나오는 빛에 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유리화를 왜 빛의 예술이라고 부르는지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남천동 유리화를 보고 나니 문화역서울284도 보고 싶어졌다. 옛 서울역을 전시장으로 쓰고 있는 곳인데 가끔 들르면서도 천장에 유리화가 있다는 것은 의식한 적이 없다. 로비에 들어서 고개를 젖혀보니 과연 유리화가 눈에 들어왔다.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12개 색상의 하트 모양이었다. 우리 민족이 특유의 생명 문화로 다민족과 더불어 살기를 소망하는 내용이다.

건물의 2층에 있는 ‘옛 서울역 복원전시실’에 가니 유리화의 연원이 기록돼 있었다. 1925년 경성역 준공 때 모델로 삼았던 스위스 루체른 역처럼 천장에 유리화를 새겼다고 한다. 6·25전쟁으로 파괴되는 바람에 전후 복구과정에서 채색화가 자리를 차지했다가 조 신부의 작품으로 대체된 것이다.

조 신부는 지난 20일 강화도 동검도 채플을 열며 부속 갤러리 개관전도 개막했다. 역시 유리화 작품을 보여준다.

“동검도 채플은 명상센터 역할을 합니다. 가톨릭 신도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종교가 자기 울타리를 넘어서 공동체의 연대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신부는 만날 때마다 종교가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약한 편인 천주교의 사제로서 당연한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말이다. 어느 조직이나 내부 결속을 추구하고 거기에 충성하는 구성원에게 달콤한 보상을 해 준다. 종교 공동체는 더욱 그렇다. 조 신부가 평생 그 달콤함을 탐하지 않은 것은 자신만의 예술로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자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원 삼척 태생인 그는 6·25전쟁 때 큰형이 실종되는 일을 겪었다. 그의 어머니는 집의 대문을 늘 열어뒀다고 한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문이 잠겨 있으면 안 된다고. 그런 어머니를 보며 성장한 그는 고교 때 마을 성당의 외국인 신부에게 감화돼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그때 거기에 절이 있었으면 스님이 되지 않았겠어요, 하하. 그동안 예술과 더불어 잘 놀았지요. 이제 칠십이 넘어서 힘이 부치는 걸 느낍니다. 강화도로 들어가 명상센터에만 집중하기 위해 여러 일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가출 상태의 신부가 교회에 모든 것을 주고 떠나기 위해 서서히 준비하는 것이지요.”

 조광호 신부가 자신의 회화, 조각, 부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위). 옛 서울역사 로비의 유리화(아래 왼쪽)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자는 뜻을 담고 예수를 반가사유상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 오른쪽).


■ 조신부의 ‘불통 깨는법’

“기성세대, 자기과시 욕구 참고 말 절제해야
젊은세대는 예의 차리되 너무 숙여선 안돼”


조광호 신부를 만난 이후로 전화, SNS 등으로 수차례 대화를 나눴다. 그때마다 우리 사회의 불통이 화두였다. “사람들이 자기주장만 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끼리끼리만 뭉쳐요. 자기와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 대해 분노에 차 있어요. 그러니까 사는 게 행복하지 않지요.”

일상에서 세대 간 불통을 넘는 지혜를 얻고 싶어서 그에게 물었다. “말이 많고 고집이 센 어른에게 잘 응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그는 웃었다. “나이가 들면 말을 참지 못하지요. 제가 아는 선배 신부, 예술가, 석학 중에도 장시간 당신 말만 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럴 땐 그분들의 말을 듣는 척만 하거나, 전화 통화 땐 스피커폰으로 해 놓고 다른 일을 하지요, 하하. 그런데 지금 제가 말이 많군요. 물어봐서 답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는 후배가 선배에게 예의를 차리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어주되 너무 고개를 숙여선 안 된다고 했다. 일방통행식 관계를 막기 위해선 적절히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고집이 센 어른도 속으로는 자기 이야기가 다 옳다고는 여기지 않거든요. 침묵하는 것보다 정중히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이 진짜 예의지요.”

기성세대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적절히’ 해 주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그 전제 조건은 자기 과시 욕구를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참 힘든데요, 제가 아는 분 중엔 고 박완서 작가가 그러셨지요. 후배들을 위한 말씀을 해 주시되, 언제나 절제 있고 균형적이었습니다.”


■ Tip - 스테인드글라스의 변천

스테인드글라스 아트는 7세기 중동지역에서 발생해 중세 유럽 건축에서 성행했다. 어두운 성당 내부에 색색의 빛을 비출 목적으로 활용했다. 유리를 잘라서 모자이크 형태로 만들면 납으로 잇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유리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 주류를 이룬다. 유약 재료가 다양해지고 디지털 기술로 붙임과 녹임 작업 등이 자유로워진 덕분이다. 유럽에서는 교회를 넘어서 미술관, 관공서, 학교, 개인 저택에 널리 쓰이고 있다. 이른바 건축 아트글라스(Architectural Art Glass)가 확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재질인 유리가 재생 가능하고 제작 과정이 친환경적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어서다. 건축 안에 자연스럽게 스미기 때문에 작품 관리가 쉽다는 장점도 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