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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사람의 보금자리를 헐어내면서까지 살려낸 한 그루의 큰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2. 13. 23:00

[나무편지] 사람의 보금자리를 헐어내면서까지 살려낸 한 그루의 큰 나무

  지난 번에 띄운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린 서울의 큰 나무, 〈서울 화양동 느티나무〉에 이어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도 서울의 큰 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서울 화양동 느티나무〉 못지않게 널리 잘 알려진 오늘의 나무는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입니다. 1968년에 지정번호 ‘서 10-1’의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 보호해 오다가 2013년 3월에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승격 지정한 나무입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 이야기는 제가 요즘 연재중인 ‘경향신문’ 칼럼 ‘큰 나무 이야기’의 지난 11월1일치 지면에 소개하기도 했고, 이 칼럼은 제 홈페이지 ‘칼럼’ 게시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문의 지면이 너무 작아, 다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오늘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렵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에는 나무의 생김새나 오래된 연륜보다 더 특별한 일이 있습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마을 중심에 서서 오랫동안 마을의 상징으로 살아온 노거수인데요.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차츰 넓어지면서 나무 바로 곁으로 빌라와 아파트를 비롯한 살림집 등의 건물이 들어서고, 자연스레 나무의 생육에 장애가 생겼지요.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서울시 도봉구에서는 긴급하게 썩은 가지를 제거하고, 공동 부위를 충전재로 메우는 외과 수술을 네 차례에 걸쳐 시행하면서 나무의 생육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구청의 의뢰로 전문가들이 보다 정밀하게 진단해 보니, 나무 주변의 빌라 건물이 나무 뿌리의 생육을 막는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요. 이때 서울시 도봉구에서는 이 큰 나무를 잘 살리겠다는 결정을 내리고는 빌라 2동 12가구를 매입해 철거하고 나무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큰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나무가 서 있는 이 지역이 ‘연산군묘’를 비롯한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나무 주변 환경을 보존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겁니다. 빌라를 철거하는 데에 따른 보상비를 시작으로, 나무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는 데에 필요한 예산은 모두 40억 원이 넘는 큰 계획이었습니다. 아무리 큰 예산이 든다 해도 역사의 현장을 오래 보존하고 더불어 도심 한복판의 생태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거죠. 나무가 현대 도시에서 가지는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는 귀중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귀한 결정에 의해 지켜진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마침내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리라 여겨지는 서울 도심에서는 이례적으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바로 곁의 아파트단지 울타리 바깥으로 오로지 나무만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 겁니다. 근사하게 정비된 터전에 우뚝 선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참 크고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흔히 보기 어려운 이 사연은 둘째 치더라도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그의 뜸직한 생김새만으로도 이미 남다른 나무라는 느낌을 전해주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나뭇가지 펼침폭도 넓지만, 우선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의 굵은 줄기가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여느 은행나무 노거수와 달리 굵은 줄기의 아래 쪽이 부드러우면서도 곧게 솟아올랐다는 생김새도 특별하달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펼친 나뭇가지 펼침폭은 매우 넓은 편인데, 야릇한 건 나뭇가지의 대부분이 남동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겁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사방으로 고르게 나뭇가지를 펼친 전형적인 은행나무의 생김새보다 야릇한 불균형이 오히려 더 근사하다고 볼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의 나뭇가지 펼침폭의 불균형은 좀 불안합니다. 멀리 뻗어나간 나뭇가지가 부러질 위험을 먼저 생각하게 될 정도이지요. 그래서 넓게 펼친 나뭇가지 아래쪽의 다섯 곳에 지지대를 세워서 나뭇가지를 보호했습니다. 곧게 오른 줄기와 넓게 펼친 가지의 표면에는 이끼가 많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 싶습니다. 전반적인 생육 상태는 양호하다고 이야기해도 될 겁니다.

  물론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나무는 어쩔 수 없이 상처를 갖게 되어 나무의 한쪽 면에는 뿌리 부분에서부터 3미터 높이까지 폭 1미터가 넘는 공동이 발생해 외과 수술로 메운 충전재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 위쪽으로도 나무 줄기 곳곳에는 썩어 문드러진 구멍이 곳곳에 드러났고, 이 부분은 모두 정성들여 외과 수술로 치료한 상태입니다. 나무 줄기는 2미터 높이쯤에서 굵은 가지가 나눠졌는데, 이 가지가 애초의 중심 줄기에서 뻗어나온 나뉜줄기인지, 아니면 나중에 줄기 곁에서 발달한 맹아지가 발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만 맹아지라 하더라도 아주 오래 전에 발달한 줄기입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에서는 기근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합니다. 나무 줄기가 넷 으로 갈라진 6미터 높이의 안쪽인데요. 여기에서 수직으로 40센티미터 길이로 내려온 기근이 하나 발견됩니다. 오래 전에 상당 부분이 훼손되어 외과 수술 충전재로 옛 형태를 복원해놓은 상태의 기근으로, 윗부분에만 수피가 남아있습니다.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아들이 없는 집에서 이 기근을 잘라 집에 모셔두고 기도를 올리면 자손을 볼 수 있다고 믿어왔다고 하며, 또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산모가 이 기근의 껍데기를 벗겨내 고아낸 물을 마시면 젖이 잘 나온다는 믿음도 있었다고 합니다. 기근이 지금처럼 썩어 문드러진 것도 그때의 수난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 뿐 아니라, 기근이 발달한 곳곳의 은행나무에서도 비슷하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래 살아온 나무의 경우, 언제나 나무나이를 측정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의 경우, 처음 보호수로 지정한 1968년에는 나무나이를 830년 정도로 추정했지만, 2013년에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승격 지정할 때에 550년으로 수정했습니다. 산림과학원의 과학적 측량에 의한 추정이라고 하니, 1968년의 추정이 틀린 것으로 봐야 하겠지요. 그런데 나무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누가 어떤 연유로 심은 나무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오래 전에 민비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여주로 떠나면서 이 나무에 치성을 올린 나무라는 이야기도 전하고, 대원군이 경복궁을 증축할 때, 건축재로 쓰기 위해 베어내려 했으나 마을 사람들의 간청으로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를 ‘대감 나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지난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렸던 〈서울 화양동 느티나무〉와 오늘 보여드리는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아마도 서울 시내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나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더구나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한 그루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까지 사람살이의 일부를 양보하고 지켜온 나무라는 점에서 더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겁니다.

  날씨의 변동 폭이 꽤 큰 날들이 이어집니다. 이른 봄인 듯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삽상하게 느껴졌다가 이내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살을 에듯 차가워지기도 합니다. 지난 주의 마무리 단락에 썼던 것처럼 정말 예측하기 어렵게 오락가락 하는 날씨입니다. 이번 주 일기예보에는 비와 눈이 내리는 날도 들어 있네요. 하루하루 일기예보도 잘 살펴보시면서 건강 대비 잘 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2022년 12월 12일 아침에 …… 솔숲에서 고규홍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