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편지]
느릅나무과의 대표 수종인 느릅나무 가운데에 최고의 느릅나무
[나무편지] 느릅나무과의 대표 수종인 느릅나무 가운데에 최고의 느릅나무
이태 전 경상북도, 지난 해 충청북도 그리고 올해의 서울 지역까지, 골골샅샅 헤집어 찾아 다니며 만난 큰 나무 가운데에 인상적인 나무는 많이 있습니다.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겠다고 마음 먹고 갈무리해 둔 폴더에 쌓인 파일들은 넘칩니다. 시간 지나면서 그냥 쌓인 파일들을 피씨의 ‘휴지통’으로 보내고 만 나무 이야기도 꽤 많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몇 해 동안만 그랬던 건 아닐 겁니다. 나무를 찾아 정처없이 떠돈 지난 이십삼 년의 세월에서 만난 크고 작은, 그리고 참 아름다운 나무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사람 이야기 못지 않게 나무 이야기도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럴 수밖에요. 곰비임비 쌓이는 나무 이야기들이 그냥 먼지 되어 사라지지 않고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만, 몸과 마음이 채 따르지 못합니다.
혹시 지난 주 중에 제 홈페이지 《솔숲닷컴 http://solsup.com》을 찾아보신 분들은 아마 적잖이 당황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가 그 동안 《나무편지》에서 짬짬이 홈페이지 이전과 개편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그걸 모두 기억하기는 쉽지 않으셨을텐데, 갑자기 홈페이지가 확 달라진 것을 보시고는 ‘이게 맞나’ 싶으셨을 겁니다. 디지털 시스템이라는 게 참 얄궂습니다. 홈페이지에 나무 이야기를 쌓는 데에는 이십삼 년이 걸렸는데, 그 이십삼 년의 자취를 지우는 데에는 고작 네 줄의 간단한 명령어와 십 분 정도의 시간으로 충분했습니다. 긴가민가 했는데, 순식간에 그 모든 파일들은 다시 복구할 수 없는 상태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물론 제가 계획한 것이긴 하지만, 이처럼 순식간에 바뀐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이제 홈페이지 《솔숲닷컴》에는 올 이월부터 새로 적어 올린 콘텐츠만 남았습니다. 이전의 나무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버려야 하는 상황이 쉽게 내키지 않아 오래 망설였습니다만, 기술적인 문제, 특히 ‘보안인증’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꽤 큰 웹사이트 제작과 운영을 손수 진행하던 시절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게 벌써 이십 여 년 전이고, 그때와 지금의 기술적인 내용과 방법은 그야말로 완전히 달라져서 서투른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로 준비한 만큼 새로운 마음으로 혹은 처음 마음으로 다시 더 젊고 싱그러운 기분으로 나무를 찾아다니고, 더 성실하게 써 올리겠다는 말씀을 드릴 뿐입니다.
홈페이지를 이전 개편하면서, 기존의 회원정보도 모두 삭제됐습니다. 《나무편지》의 발송 명단은 따로 제가 갈무리해두었습니다만, 예전에 어렵게 입력하셨던 회원정보가 새 홈페이지에 접속해 로그인하실 때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로그인 때의 비밀번호는 관리자 페이지에서도 알 수 없게 암호화되어 있던 상황이어서 새 홈페이지로 이전하는 게 불가능하지 싶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 듯합니다. 인터넷 보안이라는 게 점점 강화되어가는 상황이어서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문제는 좀더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나 굳이 로그인을 하지 않으셔도 새 홈페이지의 거의 모든 정보는 그대로 보실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그 동안 받아보시던 《나무편지》도 그대로 받아보시게 됩니다. 다만 새로 찾아오신 분들이 《나무편지》를 받아보시려면 새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절차를 거쳐 메일주소를 남기셔야 할 뿐입니다.
홈페이지 개편과 이전에 관한 상황을 알려드리면서, 오늘 《나무편지》에 함께 담은 사진은 지난 해 가을의 충북권 답사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영월에서 단양으로 이어지는 남한강 줄기의 단양 향산리 강변에 서 있는 〈단양 향산리 느릅나무〉입니다. 높이 27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 7.7미터로, 우리나라의 모든 살아있는 느릅나무 가운데에 가장 큰 나무입니다. 이 나무를 산림청에서 ‘단양-23호’의 보호수로 지정하던 1993년에 나무나이를 300년으로 추정한 나무이지요. 규모가 장대한 나무이지만, 무엇보다 이 나무가 인상적인 건 아름다운 생김새입니다. 〈단양 향산리 느릅나무〉는 뿌리에서 올라온 줄기가 남북으로 둘로 갈라졌는데, 북쪽의 줄기는 굵고 곧게 수직으로 올랐고, 남쪽의 가지는 20도 정도로 기울어 비스듬히 오르다가 5미터 쯤 높이에서 다시 수직으로 오르면서 두 줄기가 거의 평행을 이루며 높이 올랐습니다.
삼백 년을 살아온 〈단양 향산리 느릅나무〉는 여전히 수세가 왕성하여 나뭇가지 펼침 폭이 동서로 29.4미터, 남북으로는 20미터에 이릅니다. 동서 방향으로 줄기가 나뉘어 자란 탓에 남북 방향보다 동서 방향의 나뭇가지를 훨씬 넓게 펼쳤습니다. 물론 나무 줄기의 일부에는 외과수술로 메운 부분이 눈에 뜨이기는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매우 건강하고 풍성합니다. 강변의 한적한 도로 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나무여서 장기적으로 나무 보호를 위해서는 주변 정비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지만, 지금까지는 큰 탈이 없습니다. 버스 정류장 곁이라고는 하지만, 정류장을 표시하는 조형믈 외에는 주변에 별다른 조형물 없이 홀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단양 향산리 느릅나무〉가 서 있는 단양 향산리(香山里)는 예전에 향산사(香山寺)라는 절집이 있었기에 향산(香山)이라는 이름이 생긴 마을입니다. 고구려 제25대 평위왕 때의 장수 온달이 위험을 면한 곳이라 해서 ‘면위실’ ‘면위곡’이라고 부르는 자연마을이 바로 이 향산리에 포함됩니다. 절집 향산사는 오래 전에 폐사했고, 지금은 그 자리에 석탑만 남아있습니다. 나무가 서 있는 길 건너편의 골목으로 조금 걸어가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향산사는 신라 눌지왕 19년(435)에 묵호자(墨胡子)라는 승려가 창건한 절집인데, 묵호자가 열반한 뒤에 그의 제자들이 사리를 봉안한 탑을 세웠는데, 그게 바로 보물로 지정한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입니다. 향산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리고 석탑만 남았다가,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도굴꾼이 사리를 훔치기 위하여 탑을 완전히 해체한 것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단향 향산리 느릅나무〉는 언제 누가 심은 나무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나무가 서 있는 자리를 ‘늪실’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늪실’은 한자로 느릅나무를 뜻하는 ‘유(楡)’를 써서 유곡(楡谷)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오래 전에 이 지역에는 느릅나무가 숲을 이룰 정도로 많았다고 합니다. 〈단양 향산리 느릅나무〉는 바로 그 많던 느릅나무 숲에서 살아남은 한 그루로 보아야 할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주로 밭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늪실마을은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여름철에 피서객이 많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주변 강가에 펜션이 즐비한 건 그래서입니다. 또 마을에서 갈목재로 향하는 고개에 자리잡은 대진목이라는 자연마을은 온달 장군이 진을 쳤던 곳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주변에 온달 장군과 관련한 흔적이 여러 곳인 듯합니다.
느릅나무는 느티나무와 함께 느릅나무과의 나무를 대표하는 수종이고, 세계적으로 두루 자라는 나무이지만, 우리나라에는 느티나무에 비해 느릅나무 노거수가 적은 편입니다. 현재 산림청 보호수 목록을 기준으로 하면 느티나무가 7,080건인데, 느릅나무는 94건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와중에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단양 향산리 느릅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 느릅나무라고 해도 될 겁니다.
홈페이지 개편과 관련하여 더 바뀌는 사정이 생기게 된다면 《나무편지》에서 계속 알려드리겠습니다. 껍데기가 바뀌었지만, 앞으로도 그 동안 그러셨던 것처럼 《나무편지》와 홈페이지 《솔숲닷컴》을 더 아껴주시기 부탁드리며 오늘의 《나무편지》 여기서 여밉니다.
비 내리고 몹시 추워진답니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가 을씨년스러운 아침입니다. 여느 때보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2022년 11월 28일 아침에 …… 솔숲에서 고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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