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읽기]
[2] 디지털로 이어붙인 풍경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꾸는 꿈이 있었다. 길몽도 흉몽도 아니고 그저 끝나지 않는 비슷한 꿈을 한동안 자주 되풀이해서 꾸었다. 만약 꿈의 기능을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심리적 과업에 대한 극복의 시도’라고 한다면, 그 꿈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끌어안고 지내온 시간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문제를 극복하려면 대가가 필요하다. 원성원 작가는 고행에 가까운 연단의 시간을 작품에 기울여 스스로를 끌어안는다. 사진 형태로 완성된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하자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그림이다. 사진 수천 장을 퍼즐 조각처럼 맞춰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야 하니, 그 과정의 고단함을 짐작할 수 있다. 촬영은 그림자가 두드러지지 않을 흐린 날을 골라 특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물건들을 수집하듯 이루어진다. 부지런히 찍어 모은 세상의 조각들을 컴퓨터 앞에서 이어 붙여 나가면, 모니터는 무한히 커질 수 있는 캔버스가 되어 꿈을 실현시킨다.
원성원의 꿈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극복하고 치유한다. ‘일곱 살’ 연작 중 하나인 이 작품 속의 어린아이는 엄마가 없는 집에서 부끄러운 오줌싸개 흔적을 지우려고 필사적으로 빨래를 한다. 작은 몸집의 아이가 밟고 선 이불은 온 동네를 덮을 만큼 큼지막하고 빨래가 널린 줄은 끝을 모르게 이어진다. 마을의 골목길은 에스허르(Maurits Cornelis Escher·1898~1972)의 그림처럼 이율배반적인 평면성을 지녔고, 출구 없는 미로와 같이 연결된 공간은 모호한 꿈의 장면들처럼 나열되었다. 원성원은 집요한 디지털 콜라주 작업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불안과 성취가 공존하는, 미묘하고 불가능한 세계를 구현해 냈다.
인간의 두뇌를 기계에 직접 연결하는 인터페이스(BMI)가 개발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마음에 남은 무거운 추를 한 번에 걷어낼 수 있는 과학기술은 아직 없다. 아무래도 이 분야에선 예술이 좀 더 유능하다. 어린 시절 자신을 힘들게 했던 불안의 기억을 지워 줄 기술, 원성원의 작품에서 디지털은 그런 신묘한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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