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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편지] 조선 문신 ‘이교면’의 돌 기념으로 심은… 최고의 상수리나무 노거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8. 31. 10:36

[나무편지] 조선 문신 ‘이교면’의 돌 기념으로 심은… 최고의 상수리나무 노거수

  여름의 끝, 팔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입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의 치욕적 사건이 벌어진 날이기도 합니다. 처서處暑 지나자 바람 결에 스민 가을 빛이 또렷이 느껴집니다. 무더위로 잠시 주춤했던 발길 재우쳐, 단풍 들고 잎 지기 전에 더 많은 나무들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 중에는 비를 맞으며 서울 동대문구 일대의 큰 나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우산을 들고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길이어서 번거로웠지만, 도심 특히 우리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서울에서의 나무 답사는 힘든 만큼 특별한 결과가 적지 않습니다. 몇 그루의 의미 있는 나무를 살펴보았습니다만, 서울의 나무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가을을 맞이하며 떠오르는 큰 나무를 소개합니다.

 

  〈충주 덕련리 상수리나무〉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상수리나무입니다. 나무나이 300년의 〈충주 덕련리 상수리나무〉는 나무높이가 23미터나 되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2.7미터나 됩니다. 나무나이 300년이라면 여느 소나무나 느티나무 은행나무에 비하면 무척 어린 나무에 속하겠지만, 이 나무가 상수리나무라는 걸 감안해야 하겠지요. 《나무편지》에서 거듭 말씀 올렸습니다만, 상수리나무를 비롯한 참나무과 참나무속의 나무들은 조선시대부터 소나무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땔감으로 베어내 쓰도록 국가적으로 권장한 나무여서 오래 되고 큰 나무를 찾을 수 없습니다. 상수리나무로서 천연기념물에 지정한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런 점을 바탕으로 하면, 300년 된 상수리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중한 노거수임에 틀림없습니다.

  1982년에 ‘충주 4호’의 보호수로 지정한 〈충주 덕련리 상수리나무〉를 찾아가는 일은 약간 애매했습니다. 산림청 보호수 목록의 주소지가 바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산림청 목록에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 329’로 돼 있지만, 실제 나무 위치의 지번은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 323’에 인접한 도로 지번으로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 428-6’가 맞습니다. 산림청 목록의 지번에서 그리 많이 떨어진 곳은 아니지만, 그 위치에서는 나무가 보이지 않아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지번이 잘못 적힌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하릴없이 치러야 하는 헛걸음이 이제는 새롭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러려니 할 뿐입니다.

 

  〈충주 덕련리 상수리나무〉는 여러 그루의 다른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멀리서는 금세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일 나무를 찾아가신다면 ‘덕련리 360-1’ 소재의 ‘삼연정三蓮亭’이라는 이름의 작은 정자를 찾아가서 그 앞의 공터에 자동차를 세우고 천천히 마을 안쪽으로 이어진 작은 길을 걸어들어가면 금세 찾을 수 있습니다. 번잡하지 않은 시골 마을이어서 우선 주변 환경이 참 좋습니다. 그 맑은 자연 환경의 시골길을 걷는 일도 충분히 좋은 일입니다. 아스콘으로 포장한 길이 아니었다면 걷는 느낌은 더 좋겠지만, 마을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하면 도로 포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300년이라는 〈충주 덕련리 상수리나무〉의 나무나이는 이 땅의 다른 노거수들에 비하면 분명히 젊은 축에 속합니다. 그러다보니, 세월이 그의 몸통에 남긴 상처도 별로 없습니다. 나무는 몸통줄기에서 2미터 높이에서 나뉜줄기가 둘로 나뉘었는데, 그 두 줄기 모두 이미 오래전에 부러졌고 나무 스스로 치유하며 약간의 옹이 자국을 남긴 정도입니다. 그 위쪽에서 남쪽으로 가지 하나가 뻗었고. 그보다 다시 1미터 정도 위에서 하나의 나뉜줄기가 있었지만 역시 오래 전에 부러졌습니다. 그밖에도 하늘로 오르면서 몇 개의 부러진 가지 흔적이 있지만, 모두가 자연적인 노화에 의해 이뤄진 가벼운 상처입니다. 게다가 나무는 사람들의 인위적인 외과수술 없이도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남았습니다.

 

  지금 외과수술 자국을 한 곳도 찾을 수 없는 〈충주 덕련리 상수리나무〉의 생육 상태는 훌륭합니다. 한눈에도 나무의 건강한 기운이 그대로 바라보는 이의 몸에 스미는 듯합니다. 더불어 나무의 생김새 또한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6미터 높이에서부터 사방으로 넓게 펼친 나뭇가지가 지어낸 수형은 굳이 상수리나무가 아니라 해도 아름답고 멋있는 나무라는 생각입니다. 참 좋은 나무입니다. 나무줄기 껍질에 자르르르 흐르는 윤기에서부터 나뭇가지 한가득 돋아난 잎의 상태까지 흠잡을 곳 없이 건강합니다. 300년 이상 된 상수리나무 노거수를 찾기도 쉽지 않겠지만, 그 가운데에 이만큼 건강한 나무를 찾는 건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충주 덕련리 상수리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원래 급경사지였는데, 이 자리에 나무가 서 있기에는 불리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경사지의 한쪽 면을 절개하고 나무 보호를 위해 석축을 쌓은 뒤에 나무 뿌리 부분을 정비하면서 오로지 나무만을 위한 공간을 조성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얼마나 극진히 보호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겠지요. 그 자리에는 ‘이교면(李敎勉) 공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교면(李敎勉)은 조선 철종 때에 문신으로 활동한 마을 선조이며, 〈충주 덕련리 상수리나무〉는 이교면이 첫돌을 맞이한 1737년 2월 5일에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장래를 기원하며 심었다고 전합니다. 나무 보호공간과 나무와 관련한 인물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 풍광 등은 기존의 여느 문화재가 지어내는 경관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수려합니다.

  마을이 자랑하는 옛 선비의 넋이 담긴 나무로 긴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에 의해 소중히 지켜온 나무로 마을의 상징이 된 한 그루의 상수리나무. 올 가을에도 상수리 열매를 나무 한가득 맺는 풍요로운 날들 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2022년 8월 29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