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편지] 태풍 피해 이겨내고 천 년을 살아남은 크고 아름다운 은행나무
폭풍전야의 고요한 아침입니다. 위험지역에서 살짝 벗어난 중부지방이라고는 해도, 비와 바람은 결코 편안하지 않으리라는 예보입니다. ‘한 번도 예상 못한 피해’가 올 수도 있다는 태풍의 위세는 전혀 꺾이지 않은 채 조금씩 다가옵니다. 오늘 내일 이틀 동안은 모두, 특히 태풍이 직접 올라온다는 남부지방에 계신 분들은 조심하셔야 하겠습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재산 피해는 어쩔 수 없어도, 인명 피해만큼은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태풍 잘 견뎌 넘기시고, 수요일쯤에는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명절 채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풍은 벼락과 함께 들녘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큰 나무에게 가장 큰 위협입니다. 몰려오는 바람을 막을 수도, 피해 달아날 수도 없는 나무는 언제나 스스로 버텨야 합니다. 사람에게도 피해가 적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무들에게도 큰 피해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네요. 태풍 몰려 올 때마다 큰 나무의 피해는 하릴없는 일입니다. 태풍 지나면 어김없이 바람에 쓰러지거나 뿌리째 뽑힌 큰 나무 소식이 전해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떠올린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도 그랬습니다. 이 나무는 유난히 여러 차례 태풍에 맞서야 했습니다. 그 처음은 백 여 년 전입니다. 공식적으로 기상 관측 기록이 없던 오래 전이지요.
그때 나무의 남쪽으로 뻗었던 큰 가지가 부러졌는데, 부러진 가지의 길이가 무려 30미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귀하게 여겨온 마을 당산나무의 부러진 가지여서, 이를 소중히 여겨 밥상을 만들어 쓰기로 했답니다. 그로부터 3년 동안은 마을 모든 집의 밥상을 만들어 쓰는 데에 충분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다시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에 큰 바람이 닥쳤습니다. 이번에는 동북쪽의 가지가 부러졌는데, 이전보다 더 크게 부러져서, 길이가 무려 40미터나 됐다고 합니다. 이때에도 역시 부러진 가지를 소중히 여긴 마을 사람들은 나뭇가지로 관을 37개나 만들어서 이용했다고 전합니다.
그만큼 큰 덩치가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건, 동물로서는 회복 불능의 치명적 사건이 되겠지요.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그럼에도 살아남았습니다. 식물만이 가지는 생명의 신비입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나무는 다시 큰 나무로 일어나 언제 그런 아픔이 있었느냐 싶게 우리 앞에 우뚝 서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큰 나무로서만 바라보게 될 뿐입니다. 이제 이번 태풍을 다시 잘 견뎌내기만 한다면, 다가오는 가을에 노란 단풍을 잎잎이 물들이는 더 아름다운 큰 나무로 서 있을 겁니다. 천년을 살아온 생명이 일으켜내는 신비입니다.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의 줄기 부분은 그가 힘겹게 살아온 세월의 깊이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마치 잘 빚은 항아리처럼 둥글둥글하게 몸뚱이를 키운 이 은행나무의 줄기 곳곳에는 깊은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나무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의 외과수술로 치유한 흔적이 나무 본래의 줄기 크기보다 더 크긴 하지만, 그래도 흐트러지지 않은 큰 나무의 위용이 남아있습니다. 정작 나무의 큰 상처는 나무 전체의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쪽으로 뻗어나온 커다란 나뭇가지와 북쪽으로 뻗은 가지가 서로 다르게 보입니다. 한쪽 가지는 둥글게 자랐는데, 다른 쪽 가지는 삐죽삐죽 솟아났지요. 마치 두 그루의 나무가 붙어서 자란 것처럼요. 그게 바로 태풍에 부러진 큰 가지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오랫동안 ‘행정杏亭 은행나무’라고도 불렸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릅니다. 글자 그대로 ‘은행나무 정자’라는 이야기지요.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생김새부터 사람을 압도하는 나무입니다. 키는 24미터이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12미터가 넘습니다. 너른 벌판에 홀로 서 있어서 실제보다 훨씬 더 커보입니다. 태풍이 이 나무를 찾아온 백 여 년 전에는 이보다 훨씬 더 컸다고 합니다. 태풍에 맞서던 나무가 어쩌는 수 없이 큰 가지를 부러뜨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나마 뿌리째 뽑히지 않고, 큰 가지만 내려놓고 살아남은 게 다행이랄 수도 있겠지요.
워낙 큰 나무여서 그에 알맞춤하게 지어진 전설도 있어요. 옛날에 이 나무 그늘 아래서 한 농부가 낮잠을 잤답니다. 그런데 때마침 뒷산에 살던 호랑이가 먹을 거리를 찾아 마을로 어슬렁어슬렁 내려왔답니다. 논밭에서 일하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때여서, 호랑이는 먹이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때 어디에선가 사람 냄새가 솔솔 풍겨왔어요. 바로 은행나무 아래서 잠든 농부의 냄새였던 거죠. 호랑이는 농부를 잡아먹으려고 성큼성큼 사람 냄새가 풍겨오는 쪽으로 다가서려고 했는데, 사람 냄새가 나는 쪽에는 자기로서는 도저히 대적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무엇’이 있었고 맛있는 저녁거리인 농부는 그 커다란 ‘무엇’ 아래에 있었거든요. 호랑이는 자칫 잘못 덤벼들었다가는 그 ‘무엇’이 도리어 자기를 잡아먹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무서워 덜덜 떨다가 마침내는 이 은행나무를 피해 꽁무니를 뺐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에 율곡 이이의 기록에도 나오는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는 5백 년 전쯤에 이 마을의 오씨 성을 가진 한 어른이 나무 옆에 정자를 지으면서, ‘행정(杏亭)’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였다고 합니다. 지금 이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 자정에 나무 앞에 모여서 제사를 올립니다.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지요. 옛날에 호랑이 먹이가 될 뻔했던 농부를 지켜주었듯이 오래도록 마을 사람들을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달라는 소원을 담은 제사입니다.
아!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밤중에 이 나무 그늘 아래에 어린 아이들을 한 시간 정도 머무르게 하면 아둔했던 아이가 금세 똑똑해진다고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가오는 태풍이 큰 탈 없이 지나기만을 바라며, 태풍 피해를 너끈히 이겨내고 천년을 살아남은 한 그루의 큰 나무 이야기로 이 아침의 《나무편지》 띄웁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2022년 9월 5일 아침에 …… 솔숲에서 고
'고규홍의 나무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길섶에 피어난 팜파스글래스 꽃차례 (1) | 2022.09.19 |
---|---|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사랑했던 별서의 들고난 사람살이를 지킨 소나무 (0) | 2022.09.13 |
[나무편지] 조선 문신 ‘이교면’의 돌 기념으로 심은… 최고의 상수리나무 노거수 (0) | 2022.08.31 |
〈하동 평사리 위민정 팽나무〉는 〈푸조나무〉의 잘못입니다. (0) | 2022.08.23 |
백성의 고된 삶을 위로하기 위한 ‘위민정’을 지켜온 팽나무 (0) | 2022.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