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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백성의 고된 삶을 위로하기 위한 ‘위민정’을 지켜온 팽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8. 23. 11:46

[나무편지]

백성의 고된 삶을 위로하기 위한 ‘위민정’을 지켜온 팽나무

  ‘백성의 시름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로 점지하여, ‘위민정慰民亭’이라는 이름을 붙인 자리가 있습니다. 때로는 간단히 ‘백성을 위한 자리’라는 뜻에서 ‘위민정爲民亭’이라고 쓰기도 한다는 오붓한 자리입니다. 한자 뜻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한글 발음이 똑같을 뿐 아니라, 그 속뜻에서도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경상남도 하동 평사리 팽나무 그늘이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난데없이 요즘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팽나무입니다. 팽나무는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한 천삼백 그루가 넘을 만큼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는 느티나무 못지않게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하동 평사리 팽나무를 처음 찾아와 ‘위민정’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조선시대 영조 연간에 이 지역의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낸 전천상(田天詳, 1705 ~ 1751)이라는 분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평안한 휴식을 주는 나무’라는 뜻의 나무 이름을 붙인 전천상은 하동 지역의 대표적인 천연기념물 숲인 ‘하동 송림(松林)’을 조성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 비랑훈련첨정備郞訓鍊僉正을 비롯한 여러 벼슬을 지낸 무신인 전천상은 성품이 인자하여 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팽나무는 그 시절에 이미 마을 사람들의 정자 노릇을 할 만큼 큰 나무였으니, 아무리 나무의 나이를 낮추 잡아도 오백 년은 넘었다고 봐야 합니다.

  한동안 이 나무 그늘에는 ‘위민정慰民亭’이라는 표지석을 있었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위민정’이라는 이름을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그 뜻은 사람마다 서로 다릅니다. 세월 흐르며 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차츰 희미해져가는 겁니다. 지금은 위민정 표지석이 놓였던 자리를 보호수 안내표지판이 대신했습니다. 산림청의 보호수 안내판에는 나무의 높이 25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 4.5미터, 나무 나이 500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팽나무라고 이야기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하동 평사리 위민정 팽나무〉 곁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습니다. 바로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이 그곳입니다. 최참판댁은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그 최참판댁입니다. 실제 공간이 아닌 소설 속 배경인데, 이 소설을 텔레비전 드라마로 옮기면서 영화 촬영지로 이용하면서 널리 알려진 관광지입니다. 한때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던 드라마의 배경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습니다만, 대개의 드라마 영화 촬영지가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차츰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최참판댁 입구에는 꽤 넓은 주차장이 마련돼 있고, 주자창에서 최참판댁으로 오르는 길은 깔끔하게 포장돼 있습니다. 하지만 〈하동 평사리 위민정 팽나무〉에 대한 안내는 따로 없습니다. 당연히 위민정 팽나무 앞은 언제나 한가롭습니다. 다행이지 싶습니다. 최참판댁을 찾아온 관광객들 모두가 나무를 찾았다면 나무에게 남다른 위기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니까요. 최근의 드라마 때문에 알려진 창원의 팽나무가 며칠만에 몸살을 겪는 사정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동 평사리 위민정 팽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비좁은 편이어서 더 그렇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뿌리 근처를 벗어난 자리에는 넉넉한 넓이의 평상을 놓아 마을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맞은 편에는 큼지막한 돌무지탑이 두 개씩이나 놓여 있습니다. 위민정이라는 이름에 따라 사람들이 평안하게 찾아드는 쉼터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당산나무이기도 했다는 증거일 겁니다. 돌무지 앞의 평상에 앉아서 가만히 앞 들을 내다보면 소설 《토지》의 배경인 악양 들판의 풍요로움이 훤히 내다보입니다. 풍광은 더없이 삽상합니다.

  《나무편지》에서 〈하동 평사리 위민정 팽나무〉를 처음 소개한 건 2008년 9월, 그러니까 14년 전이었습니다. 그때의 《나무편지》를 살펴보니, “나무 그늘 아래 한참 앉아있었습니다. 소설 속의 무대를 재현한 최참판댁을 찾아오는 길손의 꼬리는 평일인데도 끊이지 않네요. 그러나 주차장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위민정 나무’를 찾아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이어서 “드라마 세트장이라는 ‘가짜’의 화려함에, 소박하게 옛 사람의 얼을 기억하고 있는 ‘진짜’ 나무가 밀려나는 듯해 씁쓸하기만 합니다”라고 덧붙이고, “위민정 팽나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나는 끝내 최참판댁 대문 안으로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시대에 촬영 세트장을 거부하는 하잘것없는 오기였습니다”라고 썼습니다.

  드라마를 통해서든 영화를 통해서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나무를 한번 더 바라보게 되는 일은 더 없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그것도 한 곳에 집중되는 조금은 ‘비정상적인’ 관심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도록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평안하게 살아오던 나무가 갑작스러운 변화로 급기야 몸살을 겪는다는 소식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땅의 풍광을 아름답게 하는 나무는 드라마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는 그곳이 어디라 해도 우리를 살게 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곁에 있는 나무를 한번 더 바라보는 것이 지금 우리가 나무와 더불어 더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길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