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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훈 시집『꼭 지켜야 할 일』:임서기 林棲期를 지나가는 생명의 응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5. 15. 19:22

跋文

임서기 林棲期를 지나가는 생명의 응시

나호열 시인· 문학평론가

 

 

1.

 

나이가 들어갈수록 입말에 ‘어느덧’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소년은 쉽게 늙고 공부는 어려워 시간은 빨리 지나가니 가볍게 여기지 말자(소년이로 학난성 일촌광음 불가경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라거나 주마간산走馬看山과 같이 세월의 빠름을 인식하게 될 때 누구나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그 시간들을 반추反芻하게 된다. 어느 사람은 그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슬픔의 각인으로 되새김하고 또 어느 사람은 뿌듯한 성취의 기쁨에 취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남을 수밖에 없는 아쉬움의 여운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삶이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 한 번의 여행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임승훈 시인의 첫 시집『꼭 지켜야 할 일』은 임서기에 들어선 시인의 마음을 드러낸 시편으로 가득 차 있다. 임서기는 아주 오래 전 인도의 힌두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노년의 시기를 말한다. 우주의 근본실재인 브라만Brahman의 관점에서 태어나서 25세까지를 범행기梵行期라 하여 경전을 배우는 기간, 그 다음 50세까지를 가주기家住期라 하여 가정을 꾸리고 양육을 하는 기간, 임서기林棲期는 75세에 이르기까지 집에서 나와 은둔 생활을 하며 가족에게서 독립하고 수행을 하는 기간이며 그 이후에는 세상을 떠돌며 자연사를 하게 되는 유행기遊行期로서 이때에는 영적인 자유와 해탈을 향해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들판에서 죽으면 새나 뭍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며 인적이 있는 곳에서 죽으면 누구라도 시신을 거두어 줄 것이라고 여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생애주기와 달리 힌두교의 생애주기는 정신의 고양과 생로병사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 수행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농경사회에서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변화와 고령화에 당면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임서기에 다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무심히 지나쳐왔던 삶의 여러 국면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그 방도의 하나로서 시詩는 자기를 향한 독백이나 고백, 더 나아가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의 생산물로 자리 잡게 된다.

 

시집『꼭 지켜야 할 일』은 소멸을 향해가는 존재의 의미를 묻고, 모든 존재가 함유하고 있는 에너지인 생명生命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관찰의 기록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제도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세세한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시간을 살아 왔던 까닭에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임승훈 시인도 이제야 자연에 대해, 가족에 대해, 그리고 사랑과 이별에 대해 곡진한 노래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추억이 늘어나고 경험이 깊어진다고 해서 삶의 혜안이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시집『꼭 지켜야 할 일』은 오히려 축적된 추억 속에서 휘발되지 않은 생명의 의미를 다시 소환하여 슬픔을 환기함으로서 앞으로의 남은 삶의 꿈을 만들고자하는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2.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은 고은 시인의 시「그 꽃」전문이다. 발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이 시가 여전히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는 까닭은 인생의 정점을 향해 바삐 달려 나갈 때 놓쳐버린 어떤 진실이 “내려 갈 때”로 표현된 인생의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하찮고 보잘 것 없던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에 있다. 아무리 작은 미물도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관은 모두 가지고 있다. 손톱만한 멸치도 한 줌도 안 되는 씀바귀 꽃도 생명을 유지하고 번식하는 데 모자람이 없는 것이다. 꼭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생산 활동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되면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사물이나 풍경에 눈길이 닿고 그 생명의 경이에 새삼 놀라게 된다. 임승훈 시인도 시집『꼭 지켜야 할 일』의 많은 시편에서 그러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시 한편을 읽어 보자.

 

허공에 걸린 밧줄에

여덟 개의 발이 거꾸로 매달려

수없는 곡예를 반복하는

무공해 건축 기법

 

수학 공식은 잊지 않았는지

팔각형 모서리마다 줄을 걸고

자로 잰 듯 가지런하게

집을 짓는 건축사

 

모진 태풍에도 까딱없는

사다리 집 짓고

외줄타기 하는 곡예사

작은 녀석이 맹랑하다

 

이슬 내린 보금자리에

아침 햇살이 내려왔다가

하얀 궁전 위에 핀 이슬 꽃이 되었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

숨어있는 모습이 밉지만

성실하게 사는 징그럽지만 귀여운 아이

 

- 「사다리 집 풍경」전문

 

이 시는 거미를 모티브로 한 시로서 중첩된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그 하나는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집을 사고 팔며, 거주 이상의 목적을 벗어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인식하는 사태를 비판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생명 유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허공에 그물을 치는 거미의 일상에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부질없는 욕망을 부끄럽게 고백하는 것이다.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 숨어 있는 거미와 경쟁을 통해 상생相生하지 못하는 인간을 대비하면서 부질없음을 깨닫지 못하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성실하게 사는 징그럽지만 귀여운 아이”로 묘사된 거미가 오히려 우리의 어두운 자화상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듯 젊어서 무심한 듯 바라보았던 사물들이 인생의 내리막길에서는 자신의 모습으로 투영되기도 하고, 자신을 갱신하여야 하는 교과서로 마음에 새겨지기도 한다. “봄의 햇살이 귓속말을 타고 천리만리를 간다” (「삼사월의 눈빛」)고 뻗쳐나가는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봄 햇살을 노래하거나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나무들이 묵묵히 전해주는 말씀을 적는 일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나무는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이다. ‘솟아오름’, ‘부동不動’, ‘곧음’의 상징으로 추앙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임승훈 시인의 시편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지금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소멸의 길에 들어서 있는 나무들이다.

 

은신처까지 다 넘겨주고

뼈마디까지 다 내주고

뿌리까지 다 벗어주는 나무

자연에 다 남겨주고 빈 몸으로 간다

 

대자연에 혜택만 받은 내 육신

부끄러운 내 몸뚱이

한 줌의 골분이 나의 전부

 

- 「다 주고 가는 이들」 마지막 부분

자연에 양식을 주고

생명에 깨끗한 숨소리를 나눠주고

모든 걸 다 넘겨주고 가는

욕심 없는 나무

자연에 성공한 나무

 

- 「나무 일기」 끝 연

 

 

촉촉하게 젖어 있는 무늬

해독하면 무슨 글이 되어 나올까

거짓 없는 자연의 글

양심이 남아 있는 깨끗한 글에

자꾸만 애착이 간다

 

- 「세월의 무늬」끝 연

 

「다 주고 가는 이들」에 드러나는 나무는 수명을 다하여 쓰러진 고사목이며 「나무 일기」와 「세월의 무늬」의 나무는 베어진 나무이다. 고사목은 죽어서도 “버섯마을이 이주해 와 있고 / 애벌레와 곤충이 집성촌을 이루”게 하는 보시를 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아무 쓸모없는 골분만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시인은 두려워한다. 그와 달리「나무 일기」와「세월의 무늬」의 나무들은 인위적으로 베어져 생명의 자유를 뺏긴 나무들이다. 시인은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서 욕심이 없고 묵묵히 오간 세월을 마음에 파묻은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오히려 그 베어짐이 “자연에 성공”한 것이며, “양심이 남아 있는 깨끗한 글”이라고 아로새기고 있다. 이러한 통찰은 비유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시인의 맑은 눈빛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시인의 순정한 눈빛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 여름 도시의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매미의 울음을 “작은 돌멩이 같은 몸에서 / 나오는 영혼의 소리”(「울음의 미학」부분)로 받아들이고 “안타까워 듣기 싫어도 / 보시하는 마음으로 꾹 참고 듣고 있다”고 본능에 충실하며 우화羽化와 동시에 소멸해가는 매미의 유한한 삶을, 안타깝께 노래한다. 생명에 대한 이러한 정조情調는 아마도 험난한 길인 촉도蜀道와 빗댄 시「촉로」에서도 세밀히 묘사되고 있다. 열목어나 연어 등과 같이 모천회귀母川回歸 어류의 산란의 풍경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눈이 감긴 어미/ 뼈만 남아 바닥을 뒹굴고 있다”고 희생의 숭고함을 노래하는 동시에 인륜을 저버리는 오늘의 참담한 현실을 넌지시 고발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의 이치와 어긋나는 욕망에 휘둘려 사는 어리석은 우리의 삶을 비탄의 지경에만 놓아두지 않는 시인의 시선을 놓쳐서는 안된다. 적지 않은 여행을 통해서 시인은 영속하는 시간의 숨결을 자신의 삶에 위치시킴으로서 삶의 유한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염원을 거두지 않는다. 변산 격포 바닷가 채석강의 풍경을 이야기 하면서 “파도가 새겨놓은 주름진 억겁의 어록들이 / 나를 잡아끈다”(「채석강 노래」부분)라거나, 양주 회암사지의 빈 터를 거닐며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 바람 소리만 구슬프게 울어 댄다”(「천년 사지에는 마지막 부분)고 읊조리게 되는 것은 삶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무한의 실재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염원은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의 용현리 삼존불을 마주했을 때 이윽고 완성되는 것이다. 파도에 침식되면서 세월을 제 몸에 새기듯, 천 년 사찰은 사라져도 그 빈 터에 부는 바람은 한결 같고 그리하여 그러한 소멸하지 않는 자연을 통해 생명의 영원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시인의 서정을 단순한 비감悲感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눈으로 말하는 천년

벙어리로 말하는 천년

천둥 번개 비바람 눈보라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

정과 망치로 돌을 두드린 이 누구였을까

 

「 어떤 미소」 4연

 

서산의 마애불은 바다를 건너가려는 사람들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시시각각 햇빛의 방향에 따라 은은하게 떠오르는 미소를 바라보는 간절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시인은 돌에 새겨진 그 미소를 꺼지지 않는 등불로 만들기 위하여 절벽에 매달렸던 석공石工을 기억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석공은 오늘도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아니겠는가!

 

3.

 

어찌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만큼 외로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나’와 너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우리’가 되어서야 사람다워진다.

 

너와 나는

여명과 낙조

해와 달 같은 사이

평생을

달그락거리며 내는 소리는

산사의 풍경 소리

고통과 애증을 다듬어주는

신의 숨소리

 

유발은 아버지의 발

유봉은 어머니의 손

히포크라테스의 손과 발

 

원을 그리며

돌고 도는 약사여래불

모든 이의 앰뷸런스

 

- 「유발과 유봉」전문

 

이 시는 짝을 짓고 가정을 이루고 사는 범상한 우리의 관계를 재미있게 묘사한 시이다. 유발과 유봉은 아마도 약을 지을 때 쓰이는 도구인 것 같다. 유발은 약재를 넣는 작은 그릇이고 유발은 약재를 찧는데 필요하다. 이 두 개의 도구는 아픈 사람들에게 필요한 약을 만들어주는 것으로서 의사 히포크라테스나 약사여래가 충실히 아픈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절대적으로 큰 역할을 담당한다.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것은 단순한 짝짓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원융圓融을 실천하는 일이다. 삼대 째,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지 않고 점점 쓸모가 적어지는 대장간을 묘사한 시「외길을 향해서」의 마지막 연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도 ‘우리’에 대한, ‘우리’의 결속성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강한 열망을 결코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멍멍한 귀 울림소리 대장간 벽에 걸려있고

할아버지 소리 굴뚝에 매달려 있고

아버지 소리 천장에 매달려 있다

삼 형제의 신음

연산 대장간 바닥에 가득 쌓여 있다

 

- 「외길을 향해서」마지막 연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쓸모없는 것들을 단숨에 내쳐버리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건설과 파괴의 악순환이 어찌 보면 이 세상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 놓인 슬픔을 마주해야 하는 숙제를 내던져 버릴 수는 없다.

 

내 안에 답답한 내가 너무 많아

냇가에 나와

돌멩이 속에 나를 넣어 던진다

 

보일 듯 말 듯 원을 그리며

물 위를 뛰어가는 징검다리 신사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물 낮에 떠돌던 물고기들이 줄행랑을 치고

동그라미 속으로 떠나간 얼굴이

물비늘 위를 떠돈다

 

변함없이 흘러가는 냇물에

얼비치는 세월의 그림자

누구나 한번은 타고 가야하는 물수제비 길

 

장례식장을 나와 냇가에서

물고기에 화풀이하고 있다

내 속의 나를 대신해 달려가고 있는

어릴 적 단짝 친구

물수제비 꽃 신사 잘 가시게

 

- 「물수제비 꿈 전문

 

이 시는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 강가로 나간 화자話者가 등장한다. 그는 돌멩이를 들고 하염없이 물수제비를 뜬다. “내 안에 답답한 나”는 누구일까? 아마도 친구의 죽음이 나에게도 다가올 죽음이라는 것, 언젠가 당도할 죽음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는 옹졸함(?)을 가진 존재일반이다. 물수제비를 뜨는 일을 “ 물고기에 화풀이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슬픈 일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감히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들, 죽음을 안고 떠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영원을 이야기하고 수수만년 변하지 않을 존재 – 신神이나 자연 –을 따르고자 하는 이유도 우리는 지금 여기서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집『꼭 지켜야 할 일』의 내면에는 이와 같은 소멸에 대한 시인의 사유가 깊이 깔려 있다. 물론 자본주의 논리의 광풍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마을을 노년에 빗댄 시「노을 아래서」나 일제의 잔혹한 인권유린을 고발하는「소녀상」과 같이 현재의 사회상을 그린 시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임승훈 시인의 자아 속에는 소멸을 소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슬픔이 깃들여져 있다.

 

 

내리막 산길 도랑 건너 들길 논길 나비 길 따라

이승 버스 앞까지 따라온 노랑나비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걸까

자손 배웅하러 따라온 장모의 영혼이었을까

 

- 「나비의 멍에」부분

 

황소의 울음은

할아버지의 울음은

중학생인 나를 더 울렸다

지금도 워낭소리 들으면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 「할아버지의 워낭소리」마지막 연

 

시인의 심층에 자리 잡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확연히 구분 짓지 않으려는 의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해답은 이 시집의 마지막 부에 수록된 시를 읽게 될 때 그 면모를 드러낸다. 한 마디로 시집『꼭 지켜야 할 일』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추모하는 시편이며 순애보殉愛譜 자체이다. 아래 글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나 시인이 장롱을 정리하다가 찾은 글이다. 그 전문을 옮겨 본다,

 

 

1986년 10월 1일 꼭 지켜야 할 일

 

6시 ~ 6시 반 기상하여 준비하고 하루에 책 조금씩 읽고 한문 5자씩 암기

여정이와 놀이 시간 보다 즐겁게 재미있게(시낭독, 노래)

바깥놀이 1 시간 정도 외출(시장)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성경책 조금씩 읽는다

1주일에 한 번씩 남편의 맛사지

변화하는 생활 갖고 남편의 사랑받는 귀여운 아내가 되도록 노력할 것

집안은 항상 청결히

위의 글에 어떤 말을 덧붙일 것인가! 현모양처의 마음을 적었다고 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기에 덧말을 붙이지 못힌다!.

 

어린 자식 둘을 남기고 떠난 아내를 기리며 시인은 꿋꿋이 두 자식을 키워 자랑스럽게 세상의 재목으로 독립시켰다. 이 시집의 4부는 통렬한 思婦曲이며, 동시에 아내에게 바치는 자랑스런 삶의 고백이다. 조심스러운 짐작이지만 시인이 되고자 했던 까닭이 바로 이렇게 아내에게 다시 한 번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십오 년 만에

장롱 서랍장 밑바닥에서 찾아낸

아내의 얼굴 자국

먼지 먹은 원고지와 눈물 먹은 일기장 속에

그녀의 혼불이 살아 있었다

 

깨알 손글씨에

민낯을 드러낸 아내의 얼굴

긴 병마에 멍든 아픔이 일기장에 남아 있고

두 아이의 사연이 눈가에 멍울져 있었다

밀물과 썰물에 밀려갔다 밀려오는

그녀의 숨겨진 그림자 일기

읽어보고 또 읽어 본다

 

나는 갯벌에 나와

물을 찾아 떠도는 물새

상처 난 외눈으로 아내의 눈물을

먹고 있는 눈물 새

 

무정하고 무심한 나비 꽃 당신

그래도 당신이 남기고 간

꼭 지켜야 할 일을 또 다시 보고

상처 난 세월을 다시 꿰매고 있다

 

 

-「꼭 지켜야 할 일 1」전문

 

4.

 

다시 임서기를 떠올려 본다. 만나면 헤어지는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슬픔이며 고통이다. 그러나 그 슬픔과 고통을 회피할 수도 없다면 그 고苦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것보다는 그 고를 허무나 비탄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혜안을 갖고자 하는 것이 임서기의 수행이다. 우리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자 열망한다. 그 기쁨과 행복이 가치 있고 고귀한 까닭은 그것들의 희소성에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 기쁨과 행복을 오래 누리고자 한다면 그것들이 나의 의식에 도래하기까지의 과정까지도 기억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지만 과하게 되면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된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시「항아리 속의 숨소리」를 읽어보는 이유는 술이 익어가는 그 과정 속에 숨어 있는 ‘섞임’과 ‘발효’의 숨소리가 바로 우리가 지금 살아야 하는 진정한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고두밥과 누룩의 사랑이 익어 갈 무렵

보자기에 싸여 실려 온 보금자리

커다란 항아리 속이었다

소리 없이 며칠 동안 잠만 잤다

온몸을 더듬거리는 움직임에 눈을 떴다

숨이 차고 뜨거워진 몸뚱어리

처음으로 성숙해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달아올라 냉찜질로 선풍기로

열을 식히고 있다

불붙은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성난 파도가 되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체위 뒤집기를 골백번

녹초가 되어 냉수마찰로 겨우 살아났다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하다

요란했던 빗소리 멈추자 들려오는 환호성

눈 감고 항아리를 걸어 나오는 우리는 기쁨조

뽕나무밭에서 익어가는 사랑처럼

항아리 속은 여인의 가슴처럼 뜨거웠다

 

- 「항아리 속의 숨소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