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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나무편지]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 도로 변에 서 있는 아름다운 향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5. 10. 16:30

[나무편지]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 도로 변에 서 있는 아름다운 향나무

  징검다리 연휴여서 다른 때보다는 교통량이 적은 곳이 서울이지 싶은 생각으로 가볍게 나섰습니다. 하지만 서울은 서울입니다. 교통량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혼잡과 정체는 언제나처럼 마찬가지입니다. 사방으로 도로가 잘 뚫려 있어서 숨어있는 나무를 찾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고요. 교통 사정도 문제이지만, 주차가 매우 불편하다는 이유도 자동차를 타고 서울에 나서기 꺼려지는 이유입니다. 조금은 여유 있게 주차할 만한 아파트 단지조차 입구에서부터 차단기로 막혀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고 보면 이래저래 서울 나무 답사는 쉽지 않습니다. 요령이 없는 탓이겠지만, 조사할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겨우 자동차를 세우고, 꽤 먼 길을 걸어서 되돌아 와야 하는 사정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서울에는 우리 사는 사람살이의 이야기를 담은 나무들이 여느 곳보다 훨씬 많습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살이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니까요. 물론 사람이 나무보다 더 많이 사는 곳인 때문에 나무가 나무로 살아가기 힘든 상황인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서울에서 조사하게 될 나무들의 대부분에서 수려한 풍광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요. 달리 이야기하면 나무의 보존 가치를 이야기할 때에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인 ‘경관적 가치’는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는 주변 환경과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 나무의 수형까지도 피해를 받아 나무 모습 자체가 좋을 수 없다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요.

  도심에서의 큰 나무의 존재감이 두드러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거수의 희소성 때문에 서울시와 각 구청 등 지자체의 나무 보호에 대한 노력은 어쩌면 여느 지자체에 비해 탁월하기는 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에 비해 불리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극진한 보호 속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현재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그래서 더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어쨌든 당분간은 복잡하고 번거롭다 할지라도 서울에 살아있는 노거수들을 찾아볼 계획입니다. 당연히 우리 《나무편지》에서도 서울 지역의 노거수 이야기를 잇달아 전해드리게 될 겁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나무는 〈서울 방화동 향나무〉입니다. 한강변의 방화체육공원 서남환경공원 단지와 인접한 방화 이단지 아파트 정문 앞 도로 변에 서 있는 큰 나무입니다. 바로 곁에 서울식물원이 있는 마곡지구입니다. 그러나 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마곡지구’에 포함되지는 않네요. 나무나이가 오백이십 년이나 된 큰 나무여서 기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도심 아파트 단지 곁에 어울려 있다는 점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부근에 자동차를 세워야 해서, 몇 차례 아파트 단지를 돌았습니다. 웬일인지 아파트 입구의 차단기가 열리고 다시 닫히지 않는 틈을 타서 단지 안으로 들어가 자동차를 세우고 돌아나와 나무를 찾아갔습니다. 나무는 아파트 단지 정문 바로 앞으로 난 도로 맞은 편에 있었습니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맞은편에 서서 마주하게 된 나무는 참 잘 생겼습니다. 나무 높이는 이십이 미터에 이르는데, 그에 비하면 나무줄기 둘레가 왜소한 편입니다. 이점오 미터 밖에 안 되니까 높이에 비해 왜소하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나무의 생김새가 좋았습니다. 줄기가 곧게 솟아오른 나무는 일단 늠름해 보였습니다. 나무를 중심으로 조성한 근린공원은 이십 년 전에 문을 연 서울정곡초등학교 운동장의 낮은 담벼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나무 바로 앞으로는 미끄럼틀을 비롯한 몇 가지 어린이들의 놀이기구가 놓여서 마을 공원으로의 분위기가 차분해 보였습니다. 분위기에 맞춤하게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러 나온 모습도 이어졌고요. 나무를 둘러싼 분위기는 여느 깊은 산골마을의 큰 나무와 크게 다를 게 없었습니다.

  나무 줄기가 비교적 왜소한 편이어서, 오백 년 넘은 나무라는 건 믿어지지 않습니다만, 어쩌면 서울이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밖에요. 그래도 전체적인 생김새는 무척 수려합니다. 어쩌면 서울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향나무 가운데에 규모는 둘째 치고 수형은 가장 아름답다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게다가 앞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나무를 둘러싼 환경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나무 주변에는 가로 세로 팔 미터 정도 넓이의 정방형 보호 구역을 짓고, 그 주변에는 경계석을 쌓았으며, 쇠 울타리를 쳐서 철저하게 우리의 향나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나무 뿌리 부분의 답압 현상은 진행되지 않은 건강한 상태입니다..

  물론 보호 구역을 정하고 자리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복토는 있어 보입니다. 도로와 인도 사이의 높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대략 오십 센티미터 정도의 복토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현재의 나무의 생장에 큰 영향은 없어 보입니다. 비좁은 도심 공간에서 이 정도의 보호 구역을 확보하고 보호 받는다는 사실은 나무에게 큰 복인 셈이지요. 나무 줄기의 동쪽 면에는 오래 전에 굵은 줄기가 찢겨나간 듯합니다. 큰 줄기가 찢겨나간 뒤에 수피가 벗겨지고 공동이 생긴 부분을 외과수술에 의해 메운 충전재 흔적이 크게 남아있습니다. 대략 일 미터 폭으로 삼 미터 높이까지 이어지는 큰 수술자국입니다. 그밖에는 오백 년을 살아온 나무로서는 별다른 상처 없이 건강하게 살아남았습니다.

  물론 톺아보자면 몇 곳의 외과수술 흔적이 더 있긴 하지만, 그게 현재의 생육 상태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닙니다. 충분히 스스로 이겨낼 만한 정도이지요. 게다가 향나무의 잎 상태도 무척 좋아 보입니다. 아마도 지자체의 철저한 보호와 영양 공급에 의한 결과일 겁니다. 도심에서 이만큼 건강하게 잘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땅에서 삼미터가 채 안 되는 자리에서 줄기가 둘로 갈라지고 갈라진 줄기가 솟구쳐 오르면서 육 미터 쯤에 이르러서는 가지를 사방으로 펼쳤습니다. 대개의 가지들은 하늘로 솟아오르기보다 대부분 아래로 늘어지며 바닥에서 일미터 높이까지 내려와서, 마치 처진소나무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갖췄습니다.

  뜻밖에 서울 도심에서 만난 아름다운 향나무 노거수 앞에 놓인 벤치에 나무를 향해 자리잡고 앉아서 가만가만 오래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일일이 짚어내기 어려울 만큼 숱하게 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 도심의 길가에서 오백 년을 살아온 향나무. 그가 지닌 크고 작은 이야기를 짚어내는 건 쉽지 않겠지요. 더구나 사람들의 들고남이 잦은 서울 도시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깊고 깊은 이야기를 함께 기억할 어른들도 찾기 어려우니까요.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라는 생각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곁에는 어떤 나무가 있나요? 그 나무들이 홀로 기억하는 사람살이의 들고남에 가만히 귀기울여 보는 좋은 시간, 많이 이뤄보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