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편지]
목련이 시작한 봄의 교향악 … 마지막 악장의 총주 채비를 마치고
봄이 오래 머무르는 곳, 천리포 바닷가 숲에는 목련이 한창이었습니다. 《나무편지》를 띄운 지난 주 초에 서둘러 찾아간 천리포 숲, 이미 백옥처럼 하얀 빛깔의 꽃을 피웠던 흰 꽃의 목련 종류는 거의 꽃을 떨구었습니다. 그러나 흰 꽃의 목련 뒤를 이어 붉은 꽃을 피우는 목련 종류는 가장 매혹적인 자태로 봄 바닷가 햇살을 맞이하는 중이었습니다. 붉은 빛으로 피어날 목련 종류 가운데에는 아직 꽃봉오리 상태인 종류가 더 많았습니다. 게다가 도도한 자태로 피어나는 노란 꽃의 목련 종류는 대부분 꽃봉오리를 열지 않았습니다. 딱 한 주일 전이었으니, 아마도 지금쯤은 붉고 노란 빛깔의 목련 꽃들 모두가 꽃잎을 활짝 펼쳤겠지요.
목련 꽃만 생각하고 숲을 돌아보았는데, 봄 나그네의 눈길에 더 선명하게 들어온 건 숲길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나면서 이 봄을 찬란하게 밝힌 진달래였습니다. 진달래 분홍 꽃 앞에 오래 머무르느라 목련 꽃으로 다가서는 발걸음을 늦춰야 했지만, 봄 햇살을 머금은 진달래 꽃잎을 바라보는 시간은 황홀했습니다. 몇 그루씩 무리 지어 자라면서, 해마다 이맘 때면 천리포 숲의 길섶을 붉은 빛으로 수놓는 꽃입니다. 멀리서도 분홍 빛 꽃이 눈에 띄어 진달래 꽃처럼 함박 웃으며 다가설 수밖에요. 가만히 꽃 앞에 머무르면서 꽃송이 하나하나 들여다봅니다. 어쩌면 이렇게 순박하게 생겼을까 싶은 꽃입니다. 목련 꽃이나 동백 꽃에서 보이는 세련미는 찾아지지 않는 소박한 꽃입니다. 그래도 우리 마음에는 여느 봄꽃 못지않게 즐거운 꽃입니다. 천지간의 모든 근심 다 잊고 저절로 웃게 합니다.
목련 종류가 워낙 많아서 꽃 피는 시기도 제가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붉은 꽃의 목련 종류 가운데에도 성마른 나무들은 이미 절정이거나 그를 살짝 넘어선 나무도 있었습니다. 특히 평생을 바쳐 이 아름다운 숲을 일구었던 푸른 눈의 한국인 ‘민병갈’ 설립자가 그토록 아꼈던 ‘불칸’이라는 이름의 목련은 지난 주 초가 절정이었습니다. 여느 봄 못지않게 더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흔히 보는 자목련 종류의 꽃잎이 바깥 쪽이 붉은 빛을 가지고 안쪽은 흰 색인 것과 달리 안팎이 모두 붉어서 더 붉고 화려한 목련 꽃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꽃입니다. 언제나 천리포수목원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목련, 불칸이 이 봄에도 어김없이 이 봄의 노래를 외장쳐 부릅니다.
노란 색으로 피어나는 목련 꽃 종류의 대부분은 지난 주 초를 기준으로 하면 아직 이르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대개는 꽃봉오리 상태였습니다. 아마도 한 주일이 지난 오늘쯤에는 대개의 노란 색 목련 꽃들이 보일 수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란 목련 종류 가운데에는 노란 색이 조금 옅어서 ‘아이보리색’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꽃을 피우는 엘리자베스 목련이 비교적 먼저 피어나 절정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지난 해에 건강이 별로 안 좋아 걱정이 많았는데, 우리 가드너들의 살가운 보살핌 덕에 올에는 예쁘게 피었습니다. 아직 채 열지 않은 꽃봉오리가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갈색 꽃봉오리 껍질을 벗고 노란 꽃잎이 겉으로 드러내면서 독특한 멋을 충분히 보여주었지요.
아직 노란 색 목련 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좀 남았다고 할 수 있지만, 흰 색이든 붉은 색이든 대개의 목련 종류들이 보여주는 싱그러운 꽃을 만나려면 다시 또 네 개의 계절을 보내야 하겠지요. 목련의 봄 노래에 이어 숲에서는 다른 꽃들이 연달아 피어납니다. 온통 꽃대궐입니다. 숲 길 환하게 밝히는 꽃으로 기억에 남는 건 무엇보다 조팝나무 꽃입니다. 천천히 걷는 길 이곳저곳에 하얀 꽃을 무더기로 피운 조팝나무 꽃은 역시 깊어가는 봄의 상징이 될 만합니다. 조팝나무의 여러 종류 가운데 일부는 환하게 피었지만, 동글동글 모여 피어나는 ‘공조팝’ 종류들은 아직 좀더 기다려야 할 듯하네요. 또 분홍색이 선명한 조팝나무 꽃도 아직은 몸을 풀 바람을 엿보기만 하는 중입니다.
길섶의 낮은 자리에서는 자디잔 꽃들도 반짝 피었습니다. 요즘은 도시의 길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된 ‘빈카’ 종류가 푸른 빛깔의 꽃을 무성하게 피웠습니다. 그리고 양치식물들을 모아서 키우는 작은 정원 한켠에는 ‘브루네라 퀸 오브 하츠’라는 풀꽃이 눈길을 끕니다. 고작해야 꽃 한 송이의 지름이 4밀리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꽃이어서, 그와 눈길을 맞추려면 어쩌는 수 없이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쪼그려 앉아 오래 바라보면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꽃입니다. 작아서 더 귀하고, 더 아름다운 꽃입니다. 목련으로 시작한 봄의 교향악이 이제 빠르게 마지막 악장의 대주제 ‘생명의 도약’을 향해 총주 태세를 갖춘 사월의 끝자락입니다.
이 봄, 지금 어디에 계시든 아마 그 곁에도 이 봄을 노래하는 크고 작은 생명의 꼼지락거림이 있을 겁니다. 그 아련한 생명들과 함께 더 생기있는 날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4월 25일 아침에 …… 솔숲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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