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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큰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어렵사리 만난 매우 훌륭한 소나무 한 그루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4. 11. 23:48

[나무편지] 큰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어렵사리 만난 매우 훌륭한 소나무 한 그루

  나무 답사 과정에서 성가신 존재 중의 하나가 개입니다. 강아지를 워낙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상황에서 난데없이 개를 성가셔 하다니 하고 놀라실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러나 집에서 얌전하게 기르는 반려견하고 나무 답사 중의 시골 마을에서 만나는 개하고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요즘은 그래도 많이 좋아지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시골 마을을 다니다 보면 줄 없이 홀로 마구 돌아다니는 개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개는 마을 골목을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다가 낯선 나그네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사납게 짖어댑니다. 때로는 달려들기도 하지요. 이쯤 되면 성가신 게 아니라 골칫거리이고, 가끔은 두려워지기까지 합니다.

  실크로드 여행 기록인 대작 《나는 걷는다》를 남긴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도보여행자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주는 준재로, 터널과 야생동물을 꼽은 걸, 너끈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동 돈대리 소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그랬습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돈대리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게다가 찾아보아야 할 소나무는 마을 안쪽 깊숙이 있었지요. 그래서 처음 돈대리 마을 입구에 도착해서는 도저히 소나무의 위치를 알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주변에 마을 사람 누구라도 눈에 띄어야 묻기라도 하겠거늘, 대관절 한참을 서성거려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을 헤매다가 마을 안쪽의 조붓한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큰 나무의 존재,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한적한 마을 골목을 걷는 일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헛걸음의 아쉬움 내려놓고 그냥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리고 구부러진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이 조용한 마을 전체가 떠나갈 듯 우레처럼 몰아치는 소리가 골목을 지나는 내 어깨 바로 곁에서 울렸습니다. 개 짖는 소리였습니다. 텅빈 마음에 갑자기 거대한 망치가 쏟아지는 듯한 놀라움이 일었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걸음을 멈춘 정도가 아니라 땅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였습니다. 놀란 가슴 진정할 겨를도 챙겨주지 않고, 벼락같은 개 짖는 소리는 이어졌습니다. ‘대형견’으로 분류하는 골목 안쪽 개는 다행히 닫힌 대문 안쪽에 있어서, 직접 공격 받을 일이 없다는 걸 알아채고 안도의 숨을 내실 때까지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가슴을 진정하고 울타리 안쪽을 바라보니, 낯선 나그네를 바라보며 짖어대는 짐승의 눈동자는 한없이 순해보였습니다. 어쩌면 하루 종일 심심했던 그는 나그네의 발 소리가 너무나 반가워 힘을 다해 소리지른 건지 모르겠습니다. 고요하던 마을이 화들짝 깨어나 시끄러워졌지만, 이 순진한 견공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짖어댔습니다. 마을의 고요를 깨뜨리는 게 송구했지만, 개의 순한 눈동자는 어느 틈에 다정하게 느껴져 사납게 짖어대는 소리를 뚫고 그와 함께 눈맞춤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에는 그를 뒤로 하고,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개 짖는 소리 채 잦아들지 않은 마을 과수원 중간 쯤의 길 모퉁이에 바로 〈영동 돈대리 소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1996년에 지정번호 ‘영동 30호’의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한 〈영동 돈대리 소나무〉는 사람의 발걸음이 많지 않은 상촌면 돈대리 산골마을의 조붓한 마을 골목 안쪽에 서 있는 큰 나무입니다. 그냥 지나갔으면 오래오래 후회할 뻔했던 크고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아마도 그 동안 제가 보았던 소나무 가운데에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훌륭한 나무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나무는 이미 영동 지역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로 널리 알려진 나무였습니다. 대략 사백육십 년 정도 됐고, 나무높이는 십구 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 삼 미터인 큰 나무입니다. 나뭇가지 펼침은 동서로 십육 미터, 남북으로 십팔 미터의 규모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여느 큰 소나무와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습니다. 게다가 나무의 수형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오백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훼손된 부위 없이 생육 상태가 건강하다는 점이 도드라지는 소나무입니다.

  마을에서는 〈영동 돈대리 소나무〉를 당산나무로 삼아 당산제를 지내고 있는데, 이 당산제가 또 남다릅니다. 오래 전부터 이어온 당산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사십 년 전 쯤에 마을에 흉한 일이 잇달아 일어나자 여러 궁리 끝에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큰 나무를 당산으로 삼고, 당산제를 지내기로 했다는 겁니다. 나무와 관련한 기록이나 구전하는 이야기가 없어서 오래 전에 당산제를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만, 한동안 지내지 않았던 게 분명한 당산제를 최근 들어 새로 지냈다는 건 특별한 일입니다. 상당히 많은 마을에서 오래 지내오던 당산제가 차츰 사라지는 와중에 거꾸로 없던 당산제를 새로 지내기 시작했다는 건 남다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날에 나무가 있는 이 자리는 김천장과 영동의 임산장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어서 오가는 사람들의 요긴한 쉼터로 쓰여왔다는 이야기만 전합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그때부터 나무는 훌륭한 나무로 인근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은 속리 정이품송〉에 못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입구에 세워둔 ‘돈대마을 유래비’에도 그 이야기를 똑똑히 새겨두었지요. 마을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자랑거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정이품송과는 사뭇 다릅니다. 특히 정이품송이 나뭇가지 끝부분이 고깔모양으로 발달한 것과 달리 〈영동 돈대리 소나무〉는 둥글게 발달해서, 반송과 비슷한 수형을 갖췄지요. 오래도록 정이품송을 아름다운 소나무의 상징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그에 견준 것입니다.

  〈영동 돈대리 소나무〉는 언제 누가 심었는지에 대한 배경과 유래와 관련해 전하는 내용을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단지 조선 시대에 나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영동에서 김천을 가고 오던 옛 보부상들의 쉼터였다는 이야기만 전합니다. 이 나무가 남다른 건, 오래 된 당산제의 역사를 가지지 않아도 농경문화를 이어가는 산골 마을에서라면 어김없이 사람살이의 안녕과 평화를 나무에 기대어야 했던 우리 농촌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나무편지》는 개 이야기를 앞에서 꺼내는 바람에 공연히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나무를 찾아가다 너무나 놀랐던 경험이어서, 〈영동 돈대리 소나무〉를 떠올릴라치면 순한 눈을 가진 한 마리의 큰 개와 함께 기억하게 되는 바람에 그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4월 11일 아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