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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우리 그림속 나무 이야기

[26] 궁궐 불탄 자리에 소나무 곧고 푸르러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1. 12. 14:48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6] 궁궐 불탄 자리에 소나무 곧고 푸르러라

 

입력 2021.09.10 03:00
 
 
 
 
 
정선 ‘경복궁(慶福宮·1754년경)’, 비단에 담채, 16.7x18.1㎝,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경복궁은 조선 말기 다시 지을 때까지 오랫동안 거의 폐허였다. 불타고 150여 년이 지난 영조 30년(1754)경 78세의 겸재 정선은 경회루 일대를 화폭에 담는다. 그림 위쪽 빽빽한 솔숲 앞에 보이는 돌기둥은 무너진 경회루다. 곧은 줄기가 쭉쭉 뻗은 큰 소나물 40여 그루가 숲을 이룬다. 그러나 북악산과 인왕산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원래 휘고 구부러진 모습이다. 가까운 거리라 같은 솔 씨에서 싹이 텄을 것임에도 경복궁은 이렇게 곧은 소나무가 되었다. 경회루 뒤쪽은 땅이 깊고 소나무가 좋아하는 사질 양토에 사람 출입까지 제한되어 있으니 곧게 잘 자랄 수밖에 없다.

왼쪽 끝 연못 바로 아래 V 자로 갈라진 고목은 느티나무로 짐작된다. 조선 후기 숙종 때의 문신이며 서화가인 이하곤의 시에 ‘…늙은 느티나무 아름드리(老槐圍)’란 구절이 있다. 그가 말한 느티나무가 그림 속의 이 나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경복궁에 큰 느티나무 고목이 있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괴(槐)는 회화나무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림 속의 자라는 모습은 느티나무에 가깝다. 바로 옆 가지가 길게 늘어진 나무는 능수버들이다. 지금도 지대가 낮은 경회루 연못 주변에 흔하다. 바로 옆의 허름한 ㄱ 자 고패집은 경복궁 터를 지키는 군사들의 거처라고 한다.

고패집 담장과 잇대어 능수버들과 제법 굵은 또 다른 나무 한 그루가 자리를 잡았다. 평범한 나무 모양이라 수종을 짐작하기가 어려우나 필자는 살구나무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겸재의 친구이기도 한 문신 김시민이 숙종 35년(1709) 봄날 경복궁을 읊은 시에 ‘…연일 비바람에 살구꽃이 드물다’고 했다. 겸재 그림보다 50여 년 전의 경복궁 옛터에는 여기저기 살구나무가 많았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맨 오른쪽 아래에서도 역시 경복궁 터 지킴이가 거처하는 고패집이 보인다. 비스듬히 자라는 소나무 몇 그루와 능수버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옆으로는 불타버린 근정전 일원의 건물 자재가 흩어져 있다.

나무의 자람으로 봐서, 이 그림은 광화문 쪽에서 북악산 쪽을 보고 그린 것 같다. 옛날은 경회루 연못을 따라 안 담장을 쳤고 사방에 문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아래의 폐허가 된 담장 기둥 흔적은 그 남문인 경회문(慶會門)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