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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우리 그림속 나무 이야기

[21] 젊은 선비에게 잡힌 팔목, 그래도 싫지 않은 듯…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0. 25. 11:10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1] 젊은 선비에게 잡힌 팔목, 그래도 싫지 않은 듯…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7.30 03:00

 

신윤복 ‘소년전홍(少年剪紅·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 간송미술관 소장

혜원 신윤복(1758~?)의 ‘소년전홍(少年剪紅·소년이 붉은 꽃을 꺾다)’은 남녀 간의 사랑을 화폭에 담은 대표적인 풍속화다. 엉덩이를 살짝 뒤로 빼고 수줍어하는 여인은 앳된 모습이다. 긴 담뱃대를 문 젊은 선비가 팔을 약간 비틀어 잡아채고 있으나 그렇게 싫지 않다는 표정이다. 분위기와 어울리게 그림에는 ‘촘촘한 잎은 더욱 푸르고/ 무성한 가지에서 붉은 꽃이 떨어지네’라고 씌어 있다.

화면 왼쪽의 두 그루와 오른쪽 아래의 꼭대기 가지들만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는 지금 막 분홍 꽃이 피기 시작하고 있다. 가지 뻗음이나 꽃대 달림 및 꽃의 색깔 등이 독특한 배롱나무의 모습 그대로다. 화려한 여름 꽃인 배롱나무가 제철을 만난 듯 피고 있으니 때는 장마가 끝난 대체로 7월 중하순의 지금쯤이다. 가을까지 거의 백 일에 걸쳐 붉은 꽃이 핀다고 다른 이름은 백일홍나무다. 물론 꽃 하나가 백 일을 가는 것은 아니다. 가지 아래서 이어달리기로 꽃이 피어 올라가기 때문에 오랜 기간 꽃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과 괴석의 높이로 나무의 키를 짐작해 보면 2~3m 남짓이다. 배롱나무는 5~7m까지 자랄 수 있으니 아직은 한창 크고 있는 셈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껍질이 매끄러워지며 줄기는 굽고 심하게 비틀리는데, 그림에서는 건강하고 곧게 잘 자라고 있다. 배롱나무 키가 괴석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작아진다. 경사진 땅이다. 선비가 잡아당기면 금방 여인이 안겨버릴 수 있는 위치다. 자라는 풀의 종류는 양지바른 곳이면 조금 건조한 땅에도 흔히 만나는 청사초로 짐작된다. 장마가 막 끝난 계절에서 앳된 모습의 주인공 남녀와 어린 배롱나무, 오른쪽 담 위와 바닥의 풀까지 화면 전체에는 싱싱한 젊음이 서려 있다. 심지어 괴석에 붙어 자라는 식물도 싱그럽다. 젊은 남녀의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의도인 것 같다.

 

배롱나무와 괴석과 집 안에서 주로 쓰는 젊은 선비의 사방관 등으로 봐서는 권세 있는 양반가의 후원쯤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원산지로서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배롱나무는 한때 장안의 벼슬아치 저택에 심기도 했으나 근래에 기후가 매서워서 대부분 얼어 죽어 버렸다”고 했다. 일제강점기의 언론인 문일평의 ‘화하만필(花下漫筆)’에도 비슷한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이 그림의 배경은 서울이 아닌 남부 지방의 어느 양반가 후원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