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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문학의 플랫폼, ‘김수영 마을’ 조성하려고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1. 12. 14:32

“김수영 문학의 플랫폼, ‘김수영 마을’ 조성하려고요”

등록 :2021-11-12 11:59수정 :2021-11-12 12:10

최재봉 기자
 

 

12일 창립 김수영기념사업회 대표 정희성 시인
“김수영기념사업회의 발기인 중에는 저보다 어른도 많은데 제가 나서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연로한 분들께 부담을 드리지 않고자, 그리고 김수영문학상 제1회 수상자로서 빚진 마음도 갚을 겸 대표 자리를 수락했습니다.”12일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에서 창립총회를 연 김수영기념사업회의 초대 대표 정희성(사진·76) 시인은 “김수영문학관이 제가 사는 집 가까이에 있는데도 자주 가 보지 못해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걸로 나도 선생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영(1921~1968) 시인의 탄생 100주년(11월27일)을 앞두고 출범한 김수영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에는 고은, 신경림, 유종호, 백낙청, 염무웅, 황석영, 강은교 등 원로 문인에서부터 최근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서효인, 권박, 이소호, 이기리 시인 등 젊은 세대까지가 두루 망라되었다. 김수영의 부인 김현경 여사와 누이동생 김수명 여사 등 가족과 김수영문학관이 있는 도봉구의 이동진 구청장, 홍기원 김수영문학관 운영위원장 등 김수영문학관 관계자들도 참여했다.기념사업회는 이날 발표한 창립취지문에서 “김수영 시인의 문학과 삶을 담은 공간 설치를 추진하고 운영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일반 대중이 김수영 문학을 보다 가까이 접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밝혔다. 또 “김수영 시인의 문학과 삶을 새 세대에게 이어주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학술 세미나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겠다”고 덧붙였다.정희성 시인은 이날 창립총회 뒤 <한겨레>와 만나 “김수영 시인이 살았던 구 방학동의 ‘본가’와 그에 딸린 대지를 ‘김수영 마을’로 조성하는 일이 기념사업회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의 김수영문학관은 공간적으로도 그렇고 예산이나 사업 집행 차원에서도 적잖은 한계가 있다”며 “올해 100주년을 계기로 기념사업회를 출범시키고 그를 기반으로 김수영 문학을 위한 일종의 플랫폼 삼아 ‘김수영 마을’을 조성하는 데에 정부와 서울시, 도봉구 등의 지원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계와 문단 인사 등 김수영에 관심을 가지고 애쓰는 분들이 서로 교류하고 힘을 합쳐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젊은 세대에게 김수영의 삶과 문학을 올바르게 이해시키는 데에도 주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정희성 시인은 “1970년에 등단한 뒤 어떤 문학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화 과정에서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고생하는 노동자들의 삶의 정서를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그 하나였고, 억압적인 정치현실 속에서 자유를 부르짖다가 희생당한 젊은 영혼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하는 게 두 번째 고민이었다”며 “그런 문제와 관련해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시인이 바로 김수영 시인과 신동엽 시인이었고, 그분들의 시를 보고 배우면서 나의 70년대 문학이 전개되었다”고 소개했다.“1981년 제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할 때에는, 당시 김지하와 조태일 같은 선배 시인들이 옥고를 치르는 등 고생하는 상황에서 그분들이 받아야 할 상을 제가 받는 것 같아 여간 부담스럽고 미안한 게 아니었죠. 정말 생각지도 않게, 느닷없이 받은 상이라서 얼떨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청 기쁘기도 했습니다. 지금처럼 문학상이 많은 시절도 아니었는데, 당시 상금 100만원은 지금으로 치면 1천만원 정도 되지 않을까요? 기쁜 마음에 이시영 시인 등 여러 문우들과 만나 통음하는 바람에 시상식 이튿날 방송국 인터뷰까지 펑크 냈던 기억이 새삼 나네요.”그는 “생전에 김수영 시인을 가까이에서 뵙고 말씀을 듣지는 못했지만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시 낭송을 하던 장면과 갓 인쇄돼 나온 석간 신문을 양손으로 펼쳐 들고 광화문 거리를 걸어가며 읽던 모습은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정희성 시인은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김수영의 시로 ‘눈’과 ‘사령(死靈)’을 들었다. 그는 “선생의 시는 글자로 읽기 전에 육성으로 먼저 다가온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의 표현을 빌리자면, ‘절규’하는 시가 바로 김수영의 시”라며 “현재 우리 시를 보면 육성이 사라진 것 같다.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한 시대에 선생의 시는 젊은 시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곧은 소리’로 나에게 다가온다”고 설명했다.정희성 시인은 “지난 여름 식도암 초기 진단을 받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모두 마쳤는데, 아무래도 체력이 예전만 못해 부지런히 걷는 연습을 하며 체력 회복에 힘쓰고 있다”고 근황을 밝혔다. 강은교, 윤후명 등 1970년대에 등단한 또래 시인들과 함께 ‘고래 동인’을 꾸려 활동하기도 하는 그는 “지난 2월15일에 숨진 동인 김형영 시인의 1주기에 즈음해 그의 유작을 수습하고 그에 관한 평론과 기사문 등도 모은 뒤 다른 동인들의 원고도 합쳐서 다시 동인지를 낼 계획”이라고 소개했다.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