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0도 금강산, 雪景 그리려 술로 먹을 갈았다
이건희 전속 화가로 수년간 활동
독대 당시 李 첫마디 “존경한다”
입력 2021.08.18 03:00
한국 화가 박대성이 2019년에 마친 ‘금강설경’을 한 관람객이 바라보고 있다. 가로 8m에 이르는 대작이다. “완성에 4년이 걸렸다”며 “금강산을 그리려면 항상 금강산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눈[雪]을 먹으로 그리는 방법은 그리지 않고 그저 비워두는 것이다.
한국화 거장 박대성(76)씨가 완성한 수묵화 ‘금강설경’은 오로지 흑(黑)으로 완성했으되, 흑과 백이 서로의 공간을 안배하며 공존하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내금강의 바위와 소나무 위에 쌓인 눈, 말하자면 종이의 흰 여백이 오히려 강골(强骨)의 산맥을 도드라지게 하는 까닭이다. “서양화는 흰 물감으로 칠해버리면 간단한데, 수묵화는 그렇지가 않다. 비우는 것이 정말 힘들다.”
이 작업은 겨울의 심상과도 연결된다. “산은 겨울에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다. 다 치우고 맨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니까.” 그가 1998년 무렵, 겨울의 금강산을 찾아간 이유도 이것이었다. “영하 20도는 됐을 것이다. 그림 그리려면 먹물이 있어야 하는데 가져간 물이 죄다 꽝꽝 얼었다.” 이때 그가 꺼낸 것인 바로 고량주였다. “도수가 높아 안 얼었더라. 술로 만든 먹물로 재빨리 스케치했다.” 이 스케치에 바탕해 4년에 걸쳐 772x223㎝ 크기의 대작을 완성했다. 그림이 내뿜는 취기(醉氣)에는 이유가 있다.
화가가 최근 완성한 '불국설경' 앞에 관람객들이 모여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23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서 화가가 선보이는 또 다른 압도적 설경은 ‘불국설경’(448x200㎝)이다. ‘불국설경’만 세 번째 제작한 그는 천주교 신자다. 종교가 아닌 그 너머의 허공을 그는 그리고 있는 것이다. “눈 온 뒤가 아니라 눈이 오고 있는 와중이다. 살살살… 바슬바슬… 눈 내리는 소리까지 그려내고자 했다.” 불국사 경내(境內)의 윤곽이 번뇌 없이 깨끗한 정토(淨土)처럼 느껴진다. 그런 그의 먹빛을 흑(黑) 대신 현(玄)이라 부르기도 한다. 홍익대 이은호 교수는 “세상 만물을 다 표현할 수 있는 색”이라고 평했다. 박씨는 “그저 설경 앞에서 더위라도 잊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다섯 살 때 부모를 잃었고, 빨치산의 낫에 왼팔도 잘려나갔다. 없다는 것의 비극을 그는 미(美)로 승화했다. 직접 사 모은 골동품을 수묵 서화로 그려낸 고미(古美) 연작처럼, 완전하지 않고 어딘가 조금은 비어있는 한국적 아름다움의 제시에 그는 몰두하고 있다. 그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이 바로 이건희(1942~2020)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박씨는 “1980년대 초부터 전속 화가로 지내며 월급 받고 한 달에 몇 점씩 그려 드리곤 했다”고 말했다. 1988년 삼성 회장실에서 처음 독대를 했다. “만나자마자 첫 마디가 ‘존경합니다’였다. 어리둥절해 ‘왜 저를 존경합니까’ 반문했다.” 대답이 걸작이었다. “비록 강도여도 1%에 들어가는 사람은 존경합니다.”
골동품을 서화로 표현한 '고미' 연작. /인사아트센터
소산(小山)은 작은 산을 의미한다. 박씨는 이를 자신의 호(號)로 삼고 있다. “내 나이 열아홉 살 때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처음엔 기분이 안 좋았다. 대산(大山)도 아니고…. 나중에야 이해하게 됐다. 작아도 커도 산은 산이다.” 산이 몸을 낮추자 더 많은 사람이 찾는다. 내년에 첫 미국 순회전이 예정돼있다. “그림이 진실하면 동서양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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