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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우리 그림속 나무 이야기

[18] 상서로운 동식물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0. 7. 13:59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8] 상서로운 동식물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7.02 03:00

 

 

(전칭)이영윤 ‘화조도’(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 비단에 채색, 160.6x53.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왕실의 종친이며 선비 화가인 이영윤(1561~1611)이 그렸다고 전칭(傳稱)하는 화조도다. 물이 흐르는 계곡 풍광을 담은 여덟 폭 병풍에서 남아 있는 두 폭 중 여름 그림이다.

화면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불쑥 나온 바위에서는 하얀 꽃이 피어 있는 자그마한 치자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나뭇가지와 진한 초록 잎을 바탕으로 활짝 핀 꽃과 꽃봉오리가 적절히 섞여서 조화를 이룬다. 실제의 치자 꽃은 아기 주먹만큼이나 크고 우윳빛이 들어간 도톰한 꽃잎 6장이 거의 젖혀져 핀다. 그림 속 치자 꽃잎은 모두 5장이다. 그러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5장으로 그려 넣지는 않은 것 같다.

꽃이 활짝 피면 그림 속처럼 꽃 가운데는 노란 꽃술이 보인다. 이때쯤 풍기는 달콤하고 맑은 향기는 치자 꽃의 특별한 매력이다. 가을에는 손가락 마디 크기의 갸름한 열매가 익는다. 노랑 색소를 가지고 있어서 옷감부터 종이와 음식 재료까지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을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는 천연 염료였다. 아울러서 귀한 약재로 쓰이는 약용식물이기도 하다. 화조도에 들어가는 식물은 대체로 복되고 길한 일이 생길 것으로 믿는 서상식물(瑞祥植物)이다. 치자는 담복(薝蔔)이란 이름으로 불교 경전에도 등장할 만큼 옛사람들이 귀하게 여긴 식물이다. 중국 남부가 원산지로서 삼국시대 이전에 들어와 남해안과 도서 지방에 흔히 심었다.

 

치자나무 위쪽의 소나무 등걸 너머에 뿌리를 둔 덩굴식물은 소나무 줄기를 타고 올라가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걸쳐 있다. 잎이 모여 있는 모습이나 진한 잎 색깔로 봐서는 남부 지방 숲에 흔한 송악으로 추정된다. 늘푸른잎 덩굴나무이며 빨판처럼 생긴 공기뿌리를 내어 나무 껍질에 붙어 올라간다. 굵고 튼튼하게 자라 돌풍에 소나무가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송악은 남부 지방을 배경으로 한 옛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치자나무와 송악이 자라는 곳이니 화가가 대상으로 한 이 그림의 배경은 남부 지방이다.

장수와 늘 푸름으로 변함없는 충성을 상징하는 소나무, 행복을 가져다주고 건강을 지켜주는 상서로운 치자나무,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상생을 뜻하는 송악 덩굴, 길조로 널리 알려진 제비와 부부 금실을 상징하는 원앙 등이 그림에 모두 들어있다. 남아있는 병풍의 또 다른 한 폭과 함께 소장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