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9] 자귀나무로 백년해로의 축원을 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7.09 03:00
김후신 ‘압안도(鴨雁圖·기러기와 오리, 18세기)’, 33.0x47.0㎝, 종이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가 김후신은 생몰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으며 행적도 분명치 않다. 활동했던 시기는 대체로 영조 및 정조 연간의 18세기쯤으로 짐작된다. 이 그림은 기러기와 오리가 자연에서 노는 모습을 그렸으므로 ‘압안도(鴨雁圖)’ 혹은 ‘기러기와 오리’라고 한다.
바위가 코끼리 코처럼 길게 드리워 바닥의 바위로 연결되어 석문(石門)을 만들었다. 석문은 건너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은 신비로움 때문에 옛 그림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오른쪽에는 고목 맛이 나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석문 뒤편으로 자라 올라갔다. 그림의 소재로는 흔치 않은 자귀나무다. 잎사귀와 꽃을 단 가지도 석문 안팎으로 뻗어 있다. 화가는 작은 바위구멍은 물론 석문 안으로도 그려 넣을 만큼 이 나무에 정성을 쏟았다. 확대하여 자세히 보면 긴 잎자루 하나에 여러 개의 잎이 붙어있는 겹잎이다. 가느다란 붉은 선으로 그린 부분이 꽃이다. 꽃잎은 모두 퇴화해버리고 가운데 암술을 품은 긴 수술만 남아 마치 화장 솔 같은 독특한 꽃이 된 것이다. 여름날 아름다운 꽃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작은 잎 여럿이 서로 마주보기로 달렸는데, 자귀나무만의 특징적인 잎을 그대로 잘 나타냈다. 밤이 되면 수분 증발을 줄이기 위하여 상대 잎과 겹쳐진다. 마치 부부가 사이좋게 안고 잠자는 형상이므로 합환수(合歡樹) 혹은 야합수(夜合樹)라고도 한다. 화가는 자귀나무로 그림 소장자에게 부부간의 백년해로를 축원하는 마음을 담고자 한 것이다.
가운데는 좌우로 고개를 아래로 꼬고 있는 기러기 한 마리와 5마리의 청둥오리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 석문 안쪽으로는 달뿌리풀과 원추리가 섞여 자란다. 원추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며 근심 걱정을 잊게 하고 아들을 낳게 해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쪽 물가의 바닥에 깔린 풀들은 수생식물인 실말이다. 맨 아래의 흰 나팔꽃도 독특하다. 덩굴식물인 나팔꽃은 줄기가 길게 이어지므로 장수와 번영을 뜻한다. 그림에서 꽃이 핀 식물은 자귀나무와 나팔꽃이다. 모두 6~7월의 여름 꽃이다. 청둥오리는 철새지만 가끔 텃새가 되기도 한다. 기러기와 오리는 원래 겨울 철새다. 따라서 그림 속의 식물과 새는 생태적으로 서로 계절이 맞지 않는다. 자귀나무 꽃을 비롯하여 길조 식물인 원추리나 나팔꽃 등의 여름 풍광에다 겨울에 본 청둥오리 및 기러기와 오리를 그려 넣어 축원의 뜻을 더욱 강조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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