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5] 서어나무 아래에서 목기 깎기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6.04 03:00
조영석 ‘나무 깎기’ (18세기 전반), 종이에 수묵담채, 28.0×20.7㎝, 개인 소장.
봄부터 농사일로 지친 옛 농민들은 6월 초 모내기를 끝내면 잠시 한숨 돌린다. 그렇다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때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림은 조선 후기 문인화가 조영석(1686~1761)의 풍속화 사제첩(麝臍帖)에 들어있는 ‘목기 깎기’다. 나무 베기는 대체로 늦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때가 나무 속에 수분이 가장 적어 건조가 빠르고 가공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목기를 만들 때 벤 다음 얼마 동안은 그대로 두어 ‘숨 죽이기’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림 속 두 사내는 작년에 베어둔 나무가 있는 산속으로 들어가 회전축을 돌리면서 작동하는 ‘피대’라는 목기 깎는 기구로 작업장을 펼친 모습이다. 피대는 이렇게 손으로 돌리는 조영석의 피대와 윤두서의 선차도(旋車圖)와 같이 발로 돌리는 피대가 있다. 가볍고 간단하여 옮기기 쉬운 손 피대를 산속 현장에 설치하여 우선 개략적 모양만 만든다. 대강 깎은 초벌 목기는 마을로 옮겨 발로 돌리는 피대로 정밀 가공해 완성한다.
그림은 배경이 생략된 채로 잎이 갓 피어난 고목에 웃옷을 걸쳐두고 목기 깎기에 열중인 두 사내와 몇 가지 연장이 전부다. 주변에는 틀톱, 손도끼, 끌, 긴 칼대가 놓여 있어서 나무 깎기 준비는 완벽하다. 연초록 잎사귀가 돋보이는 이 나무는 인가 근처에서는 잘 만날 수 없는 서어나무다. 긴 타원형의 갸름한 초록 잎은 자세히 보면 끝부분이 꼬리처럼 길게 그려져 있다. 옛 그림에서 서어나무 잎사귀를 이렇게 실물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묘사한 경우는 흔치 않다. 이는 알려진 것처럼 화가가 특별히 잘 그렸다는 인물화 이외에 식물의 정밀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 나무줄기는 세로 골이 불규칙하게 깊게 파여 있다. 보통 나무처럼 표면이 반반한 것이 아니라 울룩불룩한 껍질을 그대로 그려냈다.
그는 명문가 출신 선비였지만 서민들의 일상사를 즐겨 그린 화가다. 일반 서민들의 생활 현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서어나무의 특징을 잘 알고 사내들의 근육질 몸매와 대비하여 나타내고자 한 것 같다. 서어나무는 우리나라 산의 활엽수 중 참나무 다음으로 많다. 중남부의 조금 높은 산 서·북 경사면에 흔히 무리 지어 자란다. 그러나 산을 푸르게 해주는 기능 이외에 별다른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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