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의 삶은 즐거운 지옥… 힘 부치지만 더 씨름하겠다”
[25회 만해대상 시상식] 문예대상 - 소설가 오정희
입력 2021.08.13 03:00
“지사(志士)이자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어두운 시대에 정신의 푯대라고 할까요, 예술적인 감성과 강건한 기개가 조화롭다고 할까요. 만해를 생각하면 우선 자기반성이 됩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말이죠.”
소설가 오정희는“만해 선생이 그러했듯 자유와 평화와 생명을 지향해가며 작가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2021년 만해문예대상 수상자 소설가 오정희(74)는 “이 상을 계기로 지난날을 더듬어보고 앞으로 올 날을 수용하고자 한다”며 “나이가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힘이 부쳐서, 게을러서 놓아버린 소설들을 차근히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이 나이가 들어서도 범죄소설, 연애소설, 설화 등 쓰다가 만 작품들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지난 53년 동안 작가로 살며 여성의 시선으로 포착한 부조리와 고통을 소설에 담았다. 그의 소설 주인공들은 독립을 꿈꾸지만 가족을 벗어날 수 없어 몸부림치기도 하고, 전쟁 이후 척박한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도 온전한 인격체로 살고픈 희망을 놓지 않는다. “전 여성이잖아요. 제가 품었던 의문을 소설로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이나 가치관, 가족·남자·부모 때문에 여성이 스스로 가하는 억압을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40년 넘게 살고 있는 춘천의 자택이 곧 작업실이다. 한 울타리에 집 두 채를 지어, 하나를 서재로 삼았다. 밥 해 먹고 서재로 건너가 온종일 틀어박혀 책을 들여다보거나 글을 쓴다고 했다. “제 생활은 면벽 선사처럼 단조롭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소설가 고(故) 홍성원 선생님의 말씀처럼 문학가의 삶은 ‘즐거운 지옥’입니다.”
오정희는 지난 2003년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새’로 독일의 문학상인 리베라투르상을 받았다. 1년간 불우한 초등학생을 돌보는 자원봉사 체험이 소설 창작의 밑거름이 됐다. 오정희는 “수상 당시 독일에서도 버림받은 아이들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였다”며 “아동이나 반려동물 학대 등 생명을 경시하는 뉴스가 끊이질 않는 지금 세태에 만해의 생명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만해는 폭력에 무너지고 파괴되는 연약한 생명의 편에 섰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문학의 역할이자 소임일 수 있습니다. 만해 선사의 뜻을 기리며 이 상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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