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인문학에 묻다

세계명상마을 첫 선원장 각산 스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7. 2. 14:57

 

백성호의 현문우답

 

해골 앞에 놓고 삶의 무상함 명상…세계명상마을 첫 선원장 각산 스님

백성호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vangogh@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1.07.01 00:35 수정 2021.07.01 09:30



290억원 들여 불교식 명상센터
지구촌 명상마을 시스템 가져와
한국 산사의 아름다움 녹여낼 터
청년들 마음근육 키우는 캠프도

 

경북 문경의 봉암사는 각별한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하나뿐인 종립 선원이다. 봉암사에는 선방에서 수행하는 수좌들만 산다. 평소에는 일반 신자들의 출입이 금지돼 있다. 1년에 딱 한 차례 부처님오신날에만 일반인에게 산문이 개방된다. 그러니 불자들 사이에서 “문경 봉암사 다녀왔다”는 말은 특별한 체험을 했다는 말로 통한다.

이런 봉암사 바로 앞에 세계명상마을이 생긴다. 6만6115㎡(약 2만 평) 부지에 총 건축비 290억 원, 조계종이 일반인을 위해 작심하고 만드는 명상센터다. 이 봉암사 세계명상마을 초대 선원장에 최근 각산(61) 스님이 임명됐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지구촌 곳곳의 명상센터를 돌면서 참선 명상을 체험했다. 조계종단에서는 무척 드문 이력이다. 그만큼 글로벌 명상센터의 시스템과 감수성도 잘 꿰고 있다.

각산 스님은 서울 강남에 참불선원을 개설해 현대인이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참선 명상을 지도하며 명상붐을 일으켰다. 임현동 기자


한국 불교는 명상이란 창구로 현대인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을까.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은 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어찌보면 한국 불교의 미래가 걸린 일이기도 하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참불선원에서 각산 스님을 만났다. 그에게 지구촌 명상과 한국 명상을 물었다.

젊었을 적에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명상 수행을 했다고 들었다. 어땠나.

 

“저는 해인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별명이 ‘구불(口佛)’이었다. 입으로만 부처란 뜻이다. 아는 건 많았다. 잡다한 불교 지식도 많았다. 그런데 내 삶에서 드러나는 행동은 그렇지 않더라. 혼자 있을 때는 편안했다. 마치 부처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일상에서 막상 문제가 생기면 그렇질 않더라.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그래서 강원 졸업 후에 미얀마로 떠났다. 거기서 참선 명상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미얀마 불교의 명상은 어땠나.

 

“처음에는 미얀마 양곤에 있는 마하시 계열의 명상센터로 갔다. 좋은 점은 지도하는 스승과의 인터뷰 시간이었다. 하루 한 차례, 1대1로 마음공부에 대해 궁금한 걸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었다. 그 시스템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1주일 지나보니 알겠더라. 나는 여전히 머리로만 하고, 행동은 달라지지 않더라. 뭔가 부족한 걸 느꼈다. 그때 미얀마 밀림 속의 명상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각산 스님이 미얀마의 파욱 명상센터에 머물며 수행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사진 참불선원]

 

그게 어디인가.

 

“파욱 명상센터였다. 나는 곧장 양곤에서 밤 버스를 타고 12시간 비포장 도로를 달려 몰라메인으로 갔다. 파욱 명상센터는 그곳의 밀림에 있었다. 가서 방을 배정받았다. 말레이시아 스님 두 분이 말라리아에 걸려서 그 방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그게 오히려 신선했다. 부처님 당시처럼 밀림에서 원시적으로 수행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숲속 곳곳에 ‘꾸띠’라고, 판잣집처럼 생긴 개인 수행처도 있었다.”

 

파욱 명상센터는 어떤 점이 좋았나.

 

“미얀마나 인도는 비가 오는 우기에 안거(석 달 동안 외부 출입을 금한 채 수행에 정진하는 일)를 한다. 안거철 내내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는 황홀할 정도다. 해골을 앞에 놓고 삶의 무상함을 명상하는 백골관 수행도 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산다는 그 자체로 행복했다. 파욱 센터에서는 고요(사마타)와 지혜(위파사나)를 함께 기르는 수행을 했다. 특히 아나빠나사띠라고 하는 호흡 명상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는 그런 수행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미얀마와 한국을 오가며 10년간 수행을 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파욱사야도(스승)에게서 선정 삼매에 대한 인가를 받았다.”

 

미얀마 밀림 속으 파욱 명상센터에서 각산 스님이 해골을 바라보며 육신의 무상함을 명상하는 백골관 명상 수행을 하고 있다. [사진 참불선원]

 

그래서 마음이 편해졌나.

 

“아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더라. 그래서 고민했다. 의사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아니면 환자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정 삼매에 대한 인가를 받은 도반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에고를 내려놓지는 못한 것으로 보였다. 저는 파욱사야도를 존경한다. 그곳의 수행 과정도 너무 행복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목말랐다.”


각산 스님은 “그때 비로소 한국의 간화선 수행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특히 경허 선사의 참선곡(參禪曲)이 그의 목마름을 깨웠다.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옷 입고 밥 먹고, 사람 만나 대화 나누고,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영(昭昭靈靈) 지각하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각산 스님은 이 구절에 담긴 생동감을 이야기했다. “초기불교 경전인 니까야와 그걸 한문으로 푼 아함경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그런데 니까야와 아함경에는 ‘소소영영(昭昭靈靈ㆍ깨어 있되 고요하고 고요하되 깨어있음) ’이란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건 체험한 자의 언어다. 한국의 간화선에는 이게 있더라.”

다시 돌아온 셈인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고 했다. 그때 알았다. 한국에 있는 보물을 몰라보고, 나는 밖으로만 나갔구나. 그런데 그것도 때가 되고, 인연이 돼야 눈에 들어오더라. 한국에 돌아와 제방선원을 다녔다. 송광사ㆍ범어사ㆍ통도사 선방에서 안거하며 수행했다. 그러다 선방에서 도반의 뒤통수를 보고 확 열렸다.”

 

각산 스님은 "한국의 간화선 수행에는 고요하되 깨어있는 생동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임현동 기자

 

어떤 도반이었나.

 

“평소에 내가 달갑지 않게 여기던 스님이었다. 나는 출가자가 도(道)만 이야기 하고, 법(法)만 이야기해야지 생각했다. 그 스님은 웃기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어디 가면 음식이 맛있다는 말도 자주 했다. 나는 그게 못마땅했다. 그래서 핀잔도 자주 줬다. 그런데 그 스님 주위에는 늘 사람이 많고, 제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선방에서 행선(行禪ㆍ일어나 걸으면서 하는 참선)하다가 그 스님의 뒤통수를 보면서 안목이 열렸다. 이 모두가 나의 잣대 때문이구나. 내 기준에 내가 걸려 넘어졌구나. 상대는 문제가 없는데, 내가 문제구나. 그렇게 아상(我相)이 무너졌다. 그때 숨통이 트이더라. 그 일 이후에는 내 삶이 말할 수 없이 자유로워졌다.”


각산 스님은 이후에도 한국불교와 해외불교, 세계 곳곳의 명상센터를 두루 체험했다. 이제는 내 것이냐, 네 것이냐를 떠나 각자의 장점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태국의 아잔 차ㆍ아잔 간하 계열, 호주의 아잔 브람 명상공동체를 비롯해 프랑스의 수도공동체인 떼제공동체, 틱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 달라이 라마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 중국 혜능 대사가 주석했던 남화선사, 티베트 불교 까르마파의 수행처, 영국 아마라와띠승가수행처 등을 몸소 체험했다.

지구촌 명상공동체에는 어떤 장점이 있던가.

 

“떼제공동체는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낭만과 철학을 주고, 플럼 빌리지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선사했다. 인도 다람살라에는 묘한 이국적 분위기가 있었다. 이 모든 장점을 내년 2월에 문을 여는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에서 한국식으로 되살리고자 한다. 한국의 산사가 가지고 있는 고즈넉함, 역동적인 간화선의 힘, 간화선의 깊은 맛을 아직 모르는 이라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호흡명상법 등을 결합한 통섭 수행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지구촌 명상센터에서 체험한 노하우를 모두 녹이려고 한다.”

 

각산 스님은 지구촌 곳곳의 명상센터를 찾아가 직접 수행하며 장단점을 몸소 체험했다. 임현동 기자


프랑스 시골 떼제에 있는 그리스도교 초교파 수도공동체인 떼제공동체에는 매년 여름방학에 세계 70~80개국에서 5000명의 젊은이가 찾아온다. 자발적 방문객이다. 저마다 배낭을 메고 와 떼제공동체에서 텐트를 치고 지낸다.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미사도 함께 보고, 기도도 함께한다. 그렇게 떼제공동체 특유의 열린 영성과 각별한 낭만에 젊은이들은 몸을 맡긴다.

봉암사 세계명상마을도 일반인과 청년들에게 그런 공간이 되고자 한다. 각산 스님은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에서 1년에 두 차례 ‘대한민국 청년 희망 캠프’를 개최할 예정이다. 1000명의 청년이 21일간 텐트에서 생활하며 명상을 체험하는 무료 캠프”라며 “떼제공동체처럼 낭만과 철학이 있고, 불교식 명상을 통해 통찰의 근육을 키우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자신의 삶과 내면을 지혜롭게 꾸려갈 힘을 얻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세계명상마을 설계는 미국 프렛 대학 건축과 교수인 토마스 한라한이 맡았다. 한라한 교수는 원불교가 뉴욕주에 지었던 아름다운 명상 건축인 원다르마 센터를 설계한 바 있다. 미국 건축가협회 뉴욕지부에서 20회 이상 디자인상을 수상한 실력자다.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은 오는 12월에 준공, 내년 2월에 개방할 예정이다.


봉암사 세계명상마을 조감도. 원불교에서 뉴욕주에 지었던 원다르마 센터를 설계한 토마스 한라한 교수가 디자인했다. 한라한은 미국 프렛 대학 건축과 교수이며, 미국 건축가협회 뉴욕지부에서 디자인상을 20회 이상 수상한 실력자다. [사진 봉암사 세계명상마을]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해골 앞에 놓고 삶의 무상함 명상…세계명상마을 첫 선원장 각산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