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인문학에 묻다

‘꼰대’로 늙지 않는 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8. 2. 13:16

 

[장혜수 曰] ‘꼰대’로 늙지 않는 법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31 00:28 수정 2021.07.31 10:18장혜수 중앙일보 콘텐트 제작 에디터

 

2000년대 초반, 앨범 두 장으로 세계 음악 시장을 놀라게 했던 한 가수가 있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1983~2011)다. 아델, 더피 등으로 이어진 2000년대 영국 여성가수 계보의 출발점이 바로 그다. 지난주(7월 23일)가 그의 10주기였다. 그는 2011년 세상을 떠났다. 당시 27세였다. 2015년 영국의 영화감독 아시프 카파디아가 그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에이미’를 내놓았다. 영화에는 생전 그가 개인적으로 찍었던 영상, 그리고 친지, 친구, 동료 등 다양한 사람들 인터뷰가 담겼다. 6년 전 봤던 영화인데도 생생히 기억하는 인터뷰가 하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쌓여가는 경험들
누군가를 가르치려 말하기보다
그저 내 얘기처럼 할 때 힘 있어

 

인터뷰 주인공은 미국의 배우 겸 가수 토니 베넷이다. 1926년생인 그는 올해 95세다. 와인하우스가 죽기 넉 달 전인 2011년 3월, 두 사람은 한 녹음실에서 만나 듀엣곡을 불렀다. 당시 베넷이 85세였다. 두 사람이 함께 부른 곡은 유명 스탠더드 재즈곡 ‘바디 앤드 소울(body and soul)’이다. 와인하우스가 세상을 떠난 뒤 베넷은 이 듀엣곡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영화에 두 사람이 나눈 대화와 녹음 장면, 그리고 베넷의 별도 인터뷰가 나온다. 인터뷰에서 베넷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거요. 서두르지 마. 너는 정말 중요한 사람이야. 오래 살다 보면 말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삶이 가르쳐주거든.”

베넷과 와인하우스의 나이 차는 58세다. 베넷은 와인하우스에 뭔가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알게 되고 느낀 걸 읊조리듯 담담하게 말한다. 구체적이지도 명시적이지도 않다. 그런 모호한 그의 말에 힘이 있다. 또 듣는 이에게 깨달음을 준다. 모든 어른이 꼭 베넷처럼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대개는 오래 살아 나이가 들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아가는 것 같다. 어쩌면 베넷처럼 말하는 게 ‘삶이 가르쳐 준’ 것일 수 있다. 그는 며칠 전에도 소셜미디어에 ‘다음 달 레이디 가가와 공연한다’고 썼다. 95살에 공연이라니. 그는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을 그렇게 보내고 있다.

영화를 떠올린 건 와인하우스의 10주기이기도 한 데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한 탁구선수 인터뷰에서 베넷을 보았기 때문이다. 니 시아리안, 1963년생이니까 올해 58세다. 중국 출신이지만 현재는 룩셈부르크 국적이다. 25일 탁구 여자 단식 64강전에서 한국 신유빈과 풀세트 접전을 펼쳤다. 2004년생 신유빈이 17세이니까 네트를 가운데에 두고 41년의 시차를 둔 두 사람이 마주 섰다. 그는 영리하게 경기를 운영했지만, 결국 졌다. 경기 후 신유빈을 평가해달라는 요청에 “(2017년에 이어) 다시 만났는데 정신적으로 더 강해졌다. 그녀는 새로운 스타”라고 칭찬했다. 그리고는 조언을 건넸다.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다. 계속 도전하라. 즐기면서 하는 것도 잊지 말고.” 그도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베넷처럼 그냥 자신에 관해 얘기했다. 그런데 그 말에 힘이 있다. 깨달음을 준다.

나이가 든다는 건 경험의 나이테가 굵어지는 일이다. 베넷이 말한 ‘삶이 가르쳐 준 것’, 바로 경험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저절로 두 사람처럼 될 수 있을까. 니 시아리안이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와 했던 인터뷰 속 한 구절이 그 답이 될 것 같다. “경험은 유용한 요소다. 하지만 자동으로 나와주지는 않는다. 컴퓨터와 비슷하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깔아야 한다.” 혹시나 이해하지 못했을까 봐 그는 부연했다. “올바르게 판단해야 하고, 실제로 돌아가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그의 말에 이렇게 주석을 달아 본다. 그게 ‘꼰대’로 늙지 않는 법이라고.


장혜수 중앙일보 콘텐트 제작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