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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오밥나무는 당신의 장미보다 아름답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6. 30. 16:56

[당신의 리스트19]

나의 바오밥나무는 당신의 장미보다 아름답다

시인·소설가 이응준의 인간을 위로하는 식물3

이응준소설가 시인

입력 2021.06.30 11:54

 

사람인 내게 신이 주신 귀한 선물은 ‘개’와 ‘나무’다. 이 두 존재가 없었다면, 나는 사람들 속에서 이미 오래 전에 미쳐버렸거나 죽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보다 개가 좋고, 꽃보다는 나무가 좋다. 인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고 싶으면 나를 바라보는 내 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어수선한지 알고 싶으면 숲과 산, 그 나무들 속에 있어보면 알게 된다. 내 직업은 언어를 다루는 시인이지만, 개는 사람의 말을 하지 않고 나무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좋다. 그리고 진실은 착각보다 가혹하여,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식물보다 열등하다. 식물은 동물이 사라져도 잘 지낸다. 그러나 동물은 식물 없이는 죽음뿐이다. 이 세상의 원래 주인은 동물이 아니라 식물인 것이다.

나는 한 마리 동물로서 내 삶을 잘 견뎌내고 싶어 나무를 직접 기르거나 그저 어디에 있는 그들을 다만 멀리서 바라보곤 한다. 정성을 다 했음에도 때로는 내 나무가 죽기도 한다. 낙담한 내게 원예스승은 말씀하신다. 그 나무가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 대신 죽어준 거라고. 그렇게 믿으라고. 이제 나는 내게 동화(童話) 같기도 하고 경전(經典) 같기도 한 식물 세 가지에 대해 말하려 한다. 키가 크고,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나의 어두운 마음을 높고 환히 일깨우는 그들에 관해.

①나의 바오밥나무 - ‘어린왕자'의 바오밥 나무 ...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뿐

선비가 아니라 탕아인 나는 사군자(四君子) 대신 바오밥나무 그림을 즐겨 그린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바오밥나무들이 거대한 뿌리로 소행성 B612를 바수어버릴까 두려워한다. 바오밥나무 싹은 장미 싹과 잘 구분이 가지 않기에 더 무서워한다. 20년 자라야 꽃이 피고 60년 지나야 열매가 맺히며 아파트 8층 높이가 되어 6천년을 산다는 바오밥나무의 무겁고 독한 이미지는 이뿐이 아니다. 야자보다 크고 싶고, 벽오동꽃보다 예쁘고 싶고, 무화과열매보다 잘 나고 싶어서 질투하는 바오밥나무가 꼴 보기 싫어 신은 바오밥나무를 땅에 거꾸로 처박아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바오밥나무의 머리가 마치 미친 뿌리처럼 생긴 것은 그 때문이란다. 게다가 바오밥나무의 수분(受粉)은 주로 박쥐가 수나무와 암나무 사이를 오가며 이뤄준다. 음산하다.

하지만 정작 바오밥나무는 정반대의 실존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에 1종, 마다가스카르에 6종, 호주 북부에 1종, 모두 9종이 열대부터 아열대의 쨍쨍한 반사막지역에 산다. 열매는 영양가 높은 식품, 몸통에 난 큰 구멍은 교회와 우체국으로 사용된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는 아프리카의 ‘아단소니아 디기타타(Adansonia digitata)’다. 그곳 원주민들은 바오밥나무 안에 시신을 넣어 무덤으로 삼기도 한다. 만약 어린 왕자가 소행성 B612가 아니라 부시맨이었다면 바오밥나무를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았으리라. 장미가 천사인지 바오밥나무가 악마인지 직접 사랑해보기 전에 그 누가 장담할 것인가. 석양이 지는 평원에 우뚝 솟은 바오밥나무는 장미보다 아름답고 신비롭다.

요즘엔 누구나 바오밥나무를 기를 수 있다. 온갖 나무들을 실내 원예 하는 나이지만, 유독 바오밥나무만큼은 그럴 생각이 없다. 마다가스카르와 호주 북부와 아프리카로 가서 대면하고 싶은 생각은 더 더욱 없다. 나는 오직 사진 속의 바오밥나무들을 내 식으로 그림 그릴 뿐이다. 내 바오밥나무는 지구의 것이 아니라 우주의 바오밥나무이며,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내 마음의 바오밥나무다. 절망에 빠져 있던 어느 시기에, 무작정 살 길을 찾아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처음이 바오밥나무였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정성을 들인 장미만이 의미가 있는 장미라고 『어린왕자』 에는 쓰여 있다. “네가 그 별을 떠날 때 더는 너를 볼 수 없어 슬퍼한 장미도 수천 개의 장미들이 아닌 너의 장미 한 송이뿐이야.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나의 바오밥나무도 그러하다.

②누군가의 은행나무 - 용문사 은행나무는 6·25전쟁을 보며 울었다

바오밥나무와는 달리, 은행나무 과에는 오직 은행나무 1속, 1종만이 있을 뿐이다. 은행나무는 고생대부터 있었고 쥐라기가 전성기였던 화석식물이다. 빙하기에는 대부분의 식물들이 사라졌지만 비교적 따뜻했던 중국 절강성 부근에 살아남아 이제 한반도 전역에서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은행나무는 바오밥나무만큼이나 크고 힘이 세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 정원에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뿌리가 담벼락을 허물어버릴 수도 있다 하여 걱정하시던 아버지가 기억난다.

 

은행나무는 신목(神木)이다. 가령, 양평 용문사 높이 60미터 1200살 은행나무는 8.15해방 직전 두 달간 울었고 6.25사변 때는 50일간 울었는데 십리 밖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취미가 원예이다 보면 병이 생기는데, 가로수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품평하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몰라서 그렇지 한국의 가로수들 가운데는 굉장히 훌륭한 나무들이 버젓이 서 있어 놀랄 적이 정말 많다. 심지어 공무원들이 전기톱으로 마구 전지해버린 은행나무들은 그로테스크한 조각품 같다. 무식하게 다 잘려나가 거의 기둥만 남아도, 저 은행나무들은 기적처럼 무성하게 되살아난다.

 

상처투성이의 은행나무는 ‘인간의 화두’다. 상처가 쌓이면 옹이가 되어 톱날이 닿아도 부러뜨리고 망치로 내리친들 아무 소용없이 고요하다.

그 누구도 제가 쓰고 싶은 모양의 가구로 만들지 못한다. 쓸모없는 것이 ‘자유’가 된다. “나의 친구가 되려거든 죽은 장작이 아니라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흔들리는 나무인 나에게 말을 걸라. 나의 상처는 나의 자유, 옹이는 나의 심장, 핵심이다.” 환한 대낮과 깊은 밤거리를 걸으면 나는 쥐라기의 은행나무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인생의 밑바닥에 있을 적에 너는 무엇을 붙들고 있었는가? 그것이 바로 너다.” 거리의 은행나무들은 이 질문에 대한 누군가의 대답으로 서 있다.

③우리는 해바라기 - 고흐는 결국 해바라기 곁에서 숨을 거뒀다.

꽃보다는 나무가 좋다고 했지만, 나는 이 한해살이 식물이 무슨 나무 같다. 해바라기 시절이 오면, 일부러 버스를 타고 해바라기밭을 보러가곤 한다. 해바라기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3000년 전부터 기르기 시작했다. 아즈텍족이 숭배했고, 음식, 약품, 염료, 종이, 기름, 섬유 등으로 안 쓰이는 데가 없지만, 코르크보다 해바라기 줄기심의 비중이 작아 이로 구명대와 구명조끼가 만들어졌고, 1912년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침몰한 타이타닉 호에서 그나마 소수의 사람들이 살아남았던 게 바로 해바라기 덕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또 하나, 원래부터 해바라기의 키가 지금처럼 5미터에 달했던 것은 아니다. 작은 해바라기를 이렇게 개량한 장본인은 신학교 학생이었고, 시인이었고, 은행강도였던 소비에트연방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해바라기를 볼 때마다 이런 소설가적 상상력이 발동된다. 만약 레닌이 스위스에서 초현실주의 시인들과 사창가를 드나들며 매독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러시아혁명 이후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지 않았더라면, 과연 스탈린이 트로츠키 등을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만약 레닌이 1924년에 죽지 않고 계속 소비에트를 지휘하고 있었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물론 해바라기 하면 빈센트 반 고흐와 소피아로렌 주연의 1970년 작 영화 <해바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핸리 맨시니의 음악을 배경으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밭. 무엇이든 모여서 웅성거리면 전체주의적인 느낌이 없을 수가 없는데, 해바라기 들판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모두 다 함께 흔들리고 있기는 한데, 결국은 각자 흔들리고 있는 것이 인간세상 같다. 내가 해바라기밭을 보러 가는 이유다.

“난 항상 내가 어딘가를 향하는 나그네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삶이 끝날 즈음엔 내 생각이 틀렸음이 밝혀지겠지. 그때가 되면 난 그림은 물론이고 모든 것들이 단지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거야.”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들을 쓰던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쏜 채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이틀 뒤 많은 해바라기 그림들 옆에서 숨을 거뒀다.

“나는 인간 세계에서는 바닥 중의 가장 바닥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깊고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가 남긴 말이지만, 천재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나약한 인간이다. 나그네처럼 외로운 우리에게는 너무 꿈같은 인생이 아닌가. 우리를 대신해 죽어주는 나무들이 있듯이, 우리를 대신해서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응준씨는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독문학과 국문학을 전공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모더니즘과 파시즘. 근래에는 2인 작가 ‘독서실형제’의 멤버로 드라마 대본, 시나리오, 게임 스토리 등을 생산하고 있다. 통일 이후의 상황을 다룬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이 대표작. 통일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는 이 사회가 놀랍다고 말한다. 사람은 잘 만나지 않고, 개 한 마리와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