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1 / 나호열
자유는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고 배웠다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갈구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깨우쳤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말없이 행하는 사물들을 업신여기고 값어치를 치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의 속박과 결탁하면서
수인에게 던져주는 메마른 빵을 굶주림과 바꿨다
발목이 부러지고 나서
내게 온 새로운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
그런데 친구야
네가 나를 의지한다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 너의 온 힘을 전해 준다는 것이지
언젠가 너에게 버려질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기쁜 날이지
그날까지 날 믿어야 한다는 것이지
아, 절뚝거리는 속박과 함께
비틀거리는 목발
- 『안녕, 베이비 박스』, 시로여는세상, 2019.
감상 –
한자어 자유(自由)는 스스로 자, 말미암을 유로 새긴다. 이 중 말미암을 유는 호롱의 불꽃을 상형했다는 설도 있지만 밭에서 싹이 나오는 그림이라는 설이 더 그럴듯하다. 누구든 자신의 싹을 세상으로 밀어올려야 할 이유가 있다.
시인은 발목을 다치고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되어 자유를 고민한다. 사물도 자유가 있을 거란 생각과 함께, 자유를 꿈꾸면서도 최소한의 생계나 그 이상을 욕망하는 순간 우선적으로 속박되고 마는 것이 또한 자유이기도 함을 생각한다.
목발에 자신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가했던 경험에서 “네가 나를 의지한다는 것은 / 오로지 나에게 너의 온 힘을 전해 준다는 것”이란 사물의 말을 시인은 알아듣는다. 언젠가 발의 힘을 회복하고 목발을 버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목발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일 거라는 인식의 배경엔 개인의 자유도 속박의 시간 뒤에 오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수고에 힘입은 바 크다는 메시지가 있다.
곧 땅에서 푸른 싹을 내는 自由(자유)를 위해 온 세상이 떠들썩하겠지만 스스로 뿌리의 힘을 키우는 것도 소중해 보인다. 마침내 심지의 불꽃으로 세상을 환하게 하면 더욱 좋겠지만 푸른 촉을 내민 자체도 경이 아닌 게 없고, 자유 아닌 게 없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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