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고규홍의 나무편지

구상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8. 1. 30. 11:08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우리 땅 구상나무의 안부 … 그리고 바로잡아야 할 오해들

  올 겨울은 그리 춥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기상청은 예보했습니다. 지난 십이 월, 부천 상동도서관의 월례 《나무강좌》가 있던 날, 날씨가 갑자기 추웠죠. 그 날, 강좌를 시작하면서, “기상청이 춥지 않은 겨울이 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춥네요. 기상청 예보대로라면 이렇게 추운 날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상청 예보는 틀려도 한참 틀렸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의 추위는 기록으로 남을 만큼의 강추위였습니다. 돌아오는 일요일 이월 사일이 입춘이라고는 하지만, 이 혹한의 추위가 쉽게 물러가지는 않을 듯합니다. 모두 건강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듯이 오늘 《나무편지》에서도 한라산 구상나무 군락지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 천사백미터 고지 위쪽의 구상나무 고사목 군락 ○

 

  워낙 수형이 좋은 나무이긴 하지만, 단아하면서도 듬직하게 솟아오른 수관 위로 하얀 눈을 소복히 쌓은 채 서 있는 구상나무의 풍경은 더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줄기는커녕 가지도 잎도 채 눈에 띄지 않는 설국의 나무. 나무 안쪽의 안부를 일일이 챙기지 못한 안타까움이 없는 건 아니어도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드러내고 서 있는 구상나무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오르는 길에 조금씩 쌓인 눈 위로 비죽이 내민 뾰족한 잎이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그 정도로 나무의 건강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얀 눈 속의 초록 잎이 그저 좋았을 뿐입니다.

  진달래밭대피소 위쪽으로 백록담을 향해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니, 생명을 내려놓고 고사목 되어 삶의 흔적만 남긴 고사목이 하나 둘 나타났습니다. 세상사의 홍진을 모두 덜어내고 아무런 욕망도 없이 서 있는 구상나무 고사목. 가쁜 숨을 내쉬며 한라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등산객들도 그 고사목 풍경에 넋을 잃고 그저 감탄사만 내놓았습니다. 고사목은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아예 해발 천사백미터 고지 위쪽의 구상나무는 거의 모두가 고사목이지 싶었습니다. 아예 무리를 이뤄 서 있었습니다. 아마도 눈이 아니었다면 이 고사목 군락은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참혹했을 겁니다. 안쪽으로 들어서고 싶기는 했지만, 눈이 어른 허리 높이 이상으로 쌓인 탓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는 없었습니다.

○ 관음사 코스에서 바라다뵈는 백록담 구상나무 군락 ○

 

  구상나무의 생육 상태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에서도 자주 이야기하고 있어서, 잘 아실 겁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토종의 구상나무가 기후의 변화에 따라 우리 땅에서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백록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구상나무들의 상태를 보면, 여러 언론의 보도가 그저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 이같은 구상나무의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구상나무가 이처럼 죽어가는 원인이 기후가 아닌 다른 데에 있는지를 더 세심히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그 동안의 보도대로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백록담까지 오르는 동안, 구상나무 고사목은 더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날은 몹시 추웠지만 맑은 날씨에 환히 열린 백록담 위에서 푸른 하늘 맑은 공기를 한참 쐬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내리는 길은 백록담 근처의 구상나무 군락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원경의 풍광이 좋은 관음사 코스로 내려왔습니다. 이 가파른 길은 오르기는 물론이지만, 내려오는 길 역시 쉽지 않은 길이지요. 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놓칠 수 없어 많은 분들이 하산 코스로 선택하는 길이지요. 역시 백설의 백록담 원경은 아름다웠습니다. 힘들어서이기도 하지만, 멀리 보이는 한라산 풍광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바라보기 위해 걸음은 느려졌고, 자주 멈춰서게 됐습니다.

○ 구상나무에 대해 잘못 알려진 몇 가지 오해들 ○

 

  걸음을 자주 멈추는 건 나뿐이 아니었습니다. 힘에 부칠 만큼 가파른 길이어서이기도 하지만, 관음사 길의 아무데서나 멀리 올려다보는 한라산 백록담 풍경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까닭이지요. 길섶에서 다리쉼을 하던 한 늙수그레한 사내가 이십 대 쯤으로 보이는 젊은 등산객들에게 구상나무의 이야기를 하는 게 귀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토종 나무이고,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는 나무라고. 젊은이들도 그런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봤다고 대거리합니다. 아주 잘못 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구상나무에 대해서는 조금 정리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상나무는 주로 제주의 한라산에서 자생하며, 덕유산과 지리산에서도 볼 수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토종 나무입니다. 최소한 해발 천미터를 넘는 고산지역에서 자라는 바늘잎 늘푸른나무인 구상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분비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와 친척 관계를 가지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식민지 시대 때, 우리의 식물을 정밀하게 관찰한 일본의 나까이 교수는 처음에 우리 구상나무를 분비나무로 잘못 알았을 정도로 구상나무와 분비나무는 비슷합니다. 이 나무에 구상나무라는 학명을 처음으로 붙여 식물학계에 보고한 사람은 영국의 식물수집가인 어니스트 윌슨(Ernest Henry Wilson, 1876-1930)이었습니다. 미국의 하버드대 아널드식물원의 프로젝트로 한국과 일본의 수목을 채집하기 위해 네 차례 방문하던 때에 발견한 거죠.

○ 크리스마스 트리는 구상나무가 아니라 새 품종 ○

 

  1906년에서 1919년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뒤 윌슨은 1920년에 Abies koreana E. H. Wilson 이라는 학명으로 구상나무를 세계 식물학계에 발표했습니다. 당시 파리외방선교회 소속의 프랑스인 가톨릭 사제 가운데 에밀 타케(Emile-Joseph Taquet) 신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구상나무를 유럽과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크리스마스 트리로 이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구상나무를 잘 이용하면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기에 알맞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구상나무를 기본종으로 하여 크리스마스 트리로 활용할 수 있는 새 품종으로 선발해 전세계에 퍼뜨렸지요. 그러니까 지금 크리스마스 트리로 많이 쓰이는 나무는 우리의 구상나무가 아니라, 구상나무를 바탕으로 새로 선발한 구상나무의 새 품종입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이는 구상나무 새 품종을 수입한다면 당연히 로열티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 나무에 대한 로열티가 아니라, 새 품종을 선발한 식물 관련 기술에 대한 로열티입니다. 우리 토종 식물에 로열티를 내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토종 생물에 대해서는 로열티를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그게 상식입니다. 구상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의 원조’라는 이야기도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성탄절에 나무에 갖가지 장식을 거는 풍습은 오래 전부터 서구인들의 전통 문화 가운데 하나이지만 구상나무가 그들에게 알려진 것은 1백 년도 채 안 됐지요. 구상나무 이전에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실제로 서구에서는 전나무와 가문비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오랫동안 써왔습니다.

○ 토종나무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더 좋은 기회 ○

 

  구상나무 새 품종의 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용으로 많이 쓰인다는 건 사실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렇답니다. 정확한 통계가 없어서, 다른 나무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이 팔리는지를 비교하기 어렵지만, 많이 팔려나가는 건 사실인 듯합니다. 애시당초 크리스마스 트리용을 목적으로 선발한 품종이니,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구상나무에 대해 떠도는 몇 가지 잘못된 이야기를 어서 바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 토종 나무에 로열티를 낸 적도 없고, 빼앗긴 적도 없습니다. 안타까워 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인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로 많이 쓰는 나무의 원종이 우리 토종나무라는 데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또 그렇게 많이 쓰이는 나무 가운데에 가장 강한 유전자를 가진 원종이 우리 땅에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하지 싶습니다.


- 한라산 구상나무가 우리 곁에 더 오래 머무르기를 바라며 1월 29일 아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