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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꽃의 신비를 찭아 한 걸음 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7. 25. 13:13

[나무를 찾아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꽃의 신비를 찾아 한 걸음 더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꽃의 신비를 찾아 한 걸음 더

  비 내리던 늦은 오후. 연못 가장자리에 섰습니다. 지난 《나무편지》는 연꽃으로 시작했지만, 백송 이야기로 채웠지요. 그래서 다시 연꽃 이야기로 오늘의 《나무편지》를 엽니다. 한껏 쏟아진 비를 맞으며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거개의 연꽃 송이는 하릴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더러는 아예 꽃잎까지 떨구기도 했어요. 그 사이에 여전히 하얀 꽃잎을 싱그럽게 드러낸 연꽃이 있습니다. 물 아래 진흙 속에 뿌리내리고 솟아오른 연꽃은 어쩌면 비 맞으며 바라보는 게 맞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빗물이 쏟아져 내려도 연꽃 잎사귀는 적시지 못합니다. 오래 전에 썼던 글 한 소절이 떠오릅니다.

  연잎 위의 물방울은 진주알을 닮았다. 스며들지도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제 모습을 잃지 않는다. 물방울은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잔뜩 오므린 연잎을 떠나지 않는다. 연잎은 물방울을 품어 안았지만 그 사이에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거리가 있다. 물방울은 연잎에게, 연잎은 물방울에게 영원한 타자다. 그래서 신비롭다. 물을 끌어들이지 않는 연잎의 특징을 소수성疏水性이라 한다. 잎 표면의 솜털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실은 길쭉히 올라온 잎자루의 보이지 않는 파동 때문이다. 물은 잎을 적시지 않고, 잎은 물을 깨뜨리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눈길이 꼭 이와 같지 싶다. - 《나무가 말하였네 2 ? 나무에게 길을 묻다》 중에서

  식물의 생태가 대개 그러하지만 연꽃 역시 신비로운 특징을 가진 식물입니다. 그 중에 연꽃 씨앗의 생명력은 놀랄 만합니다. 2010년 7월에 발표한 경남 함안 성산산성 발굴팀의 연구 결과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산성 발굴과정에서 연꽃 씨앗이 발견됐습니다. 그 씨앗을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하니, 무려 7백 년 전인 고려시대 때에 맺은 씨앗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씨앗을 수습해서 연꽃의 생육 조건을 맞추어주었는데, 연꽃 씨앗은 칠백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계절의 흐름을 따라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으며, 마침내 그해 7월7일에는 꽃을 피웠습니다. 이른바 ‘아라연꽃’입니다.

  함안산성에서 개화에 성공한 ‘아라연꽃’은 오래 된 씨앗을 개화시킨 우리나라의 첫 사례이지요. 하지만 나라 밖에서는 이보다 더 오래 된 연꽃 씨앗이 개화한 적도 있습니다. 일본의 도쿄에서 1951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도쿄대 운동장 발굴 작업에서 무려 2천 년 전에 맺은 씨앗이 발견됐어요. 이 씨앗을 식물학자인 오가 이치로(大賀一?, 1883~1965)박사가 연꽃의 생육조건에 맞추어주었고, 마침내 이듬해인 1952년 7월 18일에 연보랏빛의 꽃송이를 피워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 연꽃을 오가 박사의 이름을 따서 ‘오가연꽃’이라고 부릅니다. 참 신비로운 생명력입니다.

  연꽃과 함께 이 즈음에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은 역시 물 속에서 자라는 수생식물인 수련입니다. 물 속에 뿌리내린다는 점에서 수련은 연꽃과 같은 수생식물이기는 합니다만, 연꽃과 수련은 좀 다릅니다. 연꽃은 잎사귀나 꽃송이가 물 표면에서 적어도 60센티미터 이상 떨어진 위로 솟아오르지만 수련은 잎도 물 표면에 동동 떠 있고, 꽃송이도 대개의 경우 물 표면에 붙은 채 피어납니다. 연꽃과 수련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입니다. 그러다보니, 수련이라는 이름이 물에서 피어나는 연꽃이어서 붙은 이름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련이라는 이름은 물에 붙어서 피어나는 때문에 붙은 게 아닙니다. 수련의 ‘수’는 물을 뜻하는 수水가 아니라, 잠잔다는 뜻을 가진 수睡입니다. 그러니까 물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잠 자는 꽃이라는 뜻의 이름인 거죠. 아침 햇살 받으며 활짝 피었다가 서산에 해 질 무렵이면 천천히 꽃잎을 오므리고 잠에 드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이면 다시 잠에서 깨어 햇살을 맞이하면서 활짝 피어나곤 하지요. 그렇게 저녁이면 사람처럼 잠자리에 드는 연꽃이라는 이유에서 수련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수련은 매우 오래 된 식물입니다. 현화식물로 나눠 부르는 식물 종류 가운데에서는 가장 오래 된 식물입니다. 약 1억 5천만 년 전에 이 땅에 나타났다고 전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된 현화식물을 이야기할 때에는 수련과 목련을 이야기합니다. 둘 중에 어떤 게 앞서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두 종류의 식물이 가장 오래됐다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오래 된 식물이면서도 매우 화려한 꽃을 가진 식물이어서 수련은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그러다보니, 지금은 참 많은 품종이 선발되어 있습니다. 특히 열대 지역에서 선발한 품종이 많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수련 역시 열대수련 종류로, 〈피그마에아 헬보라 수련 Nymphaea ‘Pygmaea Helvola’〉이라는 이름의 품종입니다. 사진으로는 구별이 잘 안 됩니다만, 우리가 흔히 보는 수련 종류에 비해 꽃송이가 작습니다. 아마 절반도 채 안 될 정도로 앙증맞은 크기의 꽃을 피우는 종류이지요. 게다가 색깔도 흔치않은 노란 색이어서, 유난히 돋보이는 특별한 종류입니다. 꽃잎 사이로 파고드는 빗물 방울들이 서로 부딪치며 은쟁반에 구슬 구르는 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만 있다면 그의 향기도 톺아보고 싶었지만 그건 쉽지 않았습니다.

  물 속에서 피어나야 할 연꽃이 나무 위에서 피어나면 목련木蓮이 됩니다. 이미 지난 봄에 활짝 꽃을 피웠지만, 이 여름에 다시 꽃을 한차례 더 피우는 목련이 있습니다. 이른바 ‘2차개화’입니다. 그 중에 클레오파트라 라는 품종이름을 가진 목련 종류의 가지 위에 빨간 목련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품종이어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나무인데, 안팎이 모두 붉은 아름다운 목련이 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듯, 이 여름에 다시 또 나그네의 발길을 붙듭니다.

  수련 연꽃 피는 계절은 언제나 견디기 힘들 만큼 무덥습니다. 잠깐씩이라도 나무 그늘에 들어 나무가 뿜어내는 상큼한 기운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무더위 속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연꽃 수련 앞에서 7월 24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