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천년의 선비, 천년의 전설을 간직한 큰 나무들
설 명절 연휴 잘 쉬셨지요. 다시 한번 새해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숲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벌써 고로쇠나무에서 물을 받아낸다고 합니다. 봄마중 채비를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몇 가지 알려드릴 이야기부터 전합니다. 우선 일본 도쿄 트레킹 이야기입니다. 일찌감치 알려드린 탓에 진작에 많은 분들이 신청하셨는데, 몇 분이 참가 신청을 취소하시는 바람에 여섯 자리가 남았다고 합니다. 이번 주 안에 항공권을 확정해야 한다니, 일정이 괜찮은 분들은 아래에 링크한 일정을 살펴보시고, 신청하세요.
아래의 하나투어 홈페이지에서 신청하셔도 되고, 이번 답사를 진행할 JT투어(전화 02-732-1950 김창희)로 신청하셔도 됩니다.
http://bit.ly/2ProVu0 <== 하나투어 일본 도쿄/후지산 힐링 하이킹 신청 페이지
http://bit.ly/2Eo5PDU <== 도쿄 일정을 소개한 《나무편지》 다시보기
다음으로 알려드릴 일은 다달이 진행하는 스물 네 번째 《부천 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 소식입니다. 이번 강좌에서는 우리 민족의 나무, 소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선비의 한을 품은 우리 소나무’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꼭 돌아보아야 할 소나무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먼저 ‘우리에게 소나무는 어떤 의미인가’를 이야기하고, ‘조선시대 임금의 한을 품은 소나무’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특별한 소나무 몇 그루와 그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소나무재선충병의 실태와 대책’을 편안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지난 달에 스물 세 번째 강좌에서처럼 이번 강좌에도 많은 분들이 참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는 지금 가장 보고 싶은 나무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실 대학의 지난 학기 기말 평가를 마친 뒤부터는 별다른 답사를 하지 않고, 비좁은 그러나 좁아서 아늑한 작업방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꼼짝 않고 골방에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만, 새 봄 오기 전까지 마무리하기로 한 원고에 집중하느라 그랬습니다. 1월 한 달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간간이 가까운 곳의 나무를 찾아 나선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멀리 떠나지 못한 까닭에 이 땅의 큰 나무 향한 마음이 자못 설렙니다. 새 책의 원고는 2월 말까지 마무리하기로 했지만,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월의 남은 짧은 시간 동안을 꽤 아껴 써야 할 모양입니다.
○ 새 책의 원고를 쓰면서 가장 보고 싶어진 나무 ○
원고를 쓰면서 가장 보고 싶어진 나무는 조금은 특별한 모습으로 서 있는 합천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입니다. 새 책의 첫 머리로 쓴 원고의 나무이거든요. 한 그루 더 보태자면 지리산 하동 범왕리 세이암 앞의 푸조나무도 유난히 보고 싶은 나무입니다. 두 그루가 서로 별 관계 없어 보이지만, 모두 천 년 전의 위대한 선비의 지팡이가 자란 나무라는 전설을 가진 나무입니다. 토황소격문으로 멀리 당나라에서 문명을 떨친 최치원입니다. 골품제도에 얽매인 신라 사회에서 육두품 출신이라는 한계 때문에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의욕을 온전히 실행에 옮기지 못한 선비의 한이 담긴 나무입니다.
하릴없이 얼마 전에 담아온 사진을 꺼내보는 수밖에요. 위의 사진 석 장은 해인사 학사대의 전나무입니다. 당나라에서 의욕을 가지고 돌아온 최치원은 신라 조정에서 뜻을 펼치려 했으나 성골과 진골 귀족들의 벽에 부닥쳐 미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사에 환멸을 느낍니다. 은둔을 결심한 건 당연한 순서였지요. 그가 운둔하려 마음 먹은 자리가 바로 가야산 해인사입니다. 해인사에서 그는 동이 트면 법당 가장자리의 낮은 언덕에 자주 머물렀다고 합니다. 바로 학사대입니다. 학사대에 나와 앉아 그는 거문고를 뜯으며 분을 이기려 애썼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 표시로,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다고 합니다. 그 지팡이가 자라서 지금의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로 융융하게 자란 것입니다.
○ 지리산 산신령이 됐다는 최치원의 천년 전설을 담아 ○
새 책은 나무 이야기를 사람 중심으로 풀어가려 합니다. 특히 누가 심은 나무인지를 알 수 있는 나무를 찾아, 누가, 왜, 이 나무를 심었는지를 살펴보는 방식입니다. 아직 새 책의 제목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대략 ‘나무를 심은 사람’ 이야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를테면 해인사 학사대에 전나무를 심은 최치원은 어떤 연유로 해인사에 들어오게 됐으며, 학사대에는 왜 자주 나와 앉았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은 뜻은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겁니다. 또 해인사에 은거하던 최치원은 마침내 고요한 산사도 버리고 아예 지리산 깊은 계곡으로 들어갑니다. 그때에 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과 아래로 이어지는 사진의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가 그 나무입니다.
최치원은 해인사를 떠나 하동 쪽으로 지팡이를 짚고 걷다가 눈에 들어오는 지리산 계곡이 보이는 자리에 멈추어 섭니다. 곁에는 널따란 너럭바위가 하나 있었지요. 최치원은 그 너럭바위에서 세상에 떠도는 온갖 더러운 소리를 들어야 했던 귀를 씻어냅니다. 그런 이유로 훗날 사람들은 그 너럭바위를 세이암(洗耳巖)이라고 부릅니다.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는 그 세이암 곁을 흐르는 개울 건너서 백 미터 쯤 떨어진 곳에 우람하게 서 있는 한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크기는 물론이고 생김새에서도 나라 안의 모든 푸조나무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한 나무입니다.
○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 신화의 속 뜻을 따라 ○
두 그루의 나무는 모두 천년 전, 최고의 대학자였던 최치원이 짚고다니던 지팡이가 자라난 나무라는 전설이 담겨있는 나무입니다. 전설대로라면 이 두 그루의 나무는 모두 천 년을 넘게 살아온 나무여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 두 그루 모두 천 년을 넘긴 나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설은 아무 근거 없는 거짓말일까요? 그 전설에는 무슨 의미가 담겼을까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이라 하는 신화를 거짓말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처럼 전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 담긴 뜻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새 책에서는 그런 의미를 꼼꼼히 짚어보려 애면글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무가 더 보고 싶습니다. 합천이나 하동을 돌아오려면 하루만으로는 좀 모자라겠지요. 하루 이틀 미루다보니, 보고싶은 마음은 그만큼 커집니다. 그래도 순서가 있겠지요. 우선 봄 오기 전에 원고부터 마무리하고, 글 안에 담은 나무들을 하나 둘 찾아보겠습니다.
주말 동안 바람이 찼습니다. 그래도 우리 곁에 봄은 남녘의 매화 꽃 개화 소식과 함께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중입니다. 더 풍요로운 봄마중을 위해 건강한 나날 이루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천년의 전설을 담고 긴 세월을 살아온 나무를 그리며 2월 11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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