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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나무를 찾아서] 새 생명을 낳고 길러야 하는 환희의 계절, 봄입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4. 21. 13:11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새 생명을 낳고 길러야 하는 환희의 계절, 봄입니다

  버드나무에 꽃 피니, 벌들이 바빠졌습니다. 잘게 피어난 꽃 송이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부지런히 꽃가루를 모읍니다. 따뜻해진 한낮의 봄바람 맞으며 태어나는 새 생명을 먹여 살릴 양식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담긴 차가운 기운이 사뭇 지치게 하는 듯도 하지만, 윙윙 거리는 벌들의 날갯짓은 멈추지 않습니다. 봄은 생명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위한 이 땅의 모든 어버이들의 헌신적인 나래짓이 아름다운 계절, 봄입니다.

  분주하게 피어나는 여러 봄꽃들을 별다른 이야기 없이 여러 장 늘어뜨린 지난 번 《나무편지》의 맨 끝 사진에서는 꽃 이름을 빼놓았더군요. 자주광대나물입니다. 볕 잘 드는 곳이거나 그늘이거나, 너른 풀밭이든 바위 틈이든, 자리를 가리지 않고 무성히 돋아나는 자주광대나물이 지천으로 솟아오릅니다. 제 몸피에 비하면 비교적 크다 싶은 초록 잎이 보드랍게 대지를 감쌉니다. 그 초록 잎 겨드랑이마다 빼꼼히 홍자색 혹은 보라색 앙증맞은 꽃이 삐죽 얼굴을 내밉니다.

  삼지닥나무에 대해서 궁금해하신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만, 가지가 나눠질 때마다 세 개씩 나눠진다 해서 ‘삼지’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닥나무’와는 그리 가까운 관계는 아닙니다. 닥나무가 뽕나무과의 나무인 것과 달리 삼지닥나무는 팥꽃나무과의 나무이니, 유연관계는 적습니다. 봄에 잎 나기 전에 피어나는 노란 꽃은 무척 화려한데, 향기 또한 알싸합니다. 그러나 이 향기는 시간이 지나, 시들 즈음이면 고약한 냄새로 바뀝니다.

  항상 그렇지만, 봄에는 유난히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나무가 꼭 한두 종류가 있습니다. 서둘러 봤자 늘 그렇습니다. 올에는 노루귀가 그랬습니다. 숲에 들어설 때마다 잊은 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노루귀도 새끼노루귀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난 해 그 자리를 찾아가 열심히 톺아보기도 했지만, 별무소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숲에서 나온 뒤의 아쉬움이 유독 컸는데, 다행히 노루귀 종류의 하나인 섬노루귀를 만났습니다. 노루귀의 앙증맞은 생김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그래도 노루귀는 노루귀입니다.

  지난 《나무편지》에도 적었듯이 이젠 뭐니뭐니 해도 ‘목련의 계절’입니다. 아마도 지난 주부터 앞으로 한 달 정도 동안은 오로지 목련에 정신이 팔릴 게 뻔합니다. 지금 천리포 숲에 수집된 목련 종류는 무려 칠백 종류가 넘습니다. 현재 품종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모두 구백 종류 정도의 목련 종류 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칠백 종류를 모았다면 아마도 이 숲에서 자랄 수 있는 모든 목련을 다 모은 것이나 다름 없을 겁니다. 그 많은 종류의 목련들이 열흘 쯤 전부터 화려한 꽃송이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흰 빛깔을 띤 꽃을 가진 목련 종류가 먼저 꽃을 피웁니다. 초록의 잎이 나기 전에 큼지막한 순백의 꽃이 피어나 그야말로 우아미가 돋보이는 봄꽃입니다. 그러나 고향이 서로 다른 다양한 종류의 목련이 모여 있는 천리포 숲에서는 꼭 그 순서대로 피어나지 않습니다. 아직 횐 빛깔의 꽃을 피우는 목련의 개화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붉은 빛깔을 가진 목련의 꽃송이들이 서둘러 피어났습니다. 그건 별목련 종류, 그 중에서도 큰별목련 종류의 목련들이었습니다.

  ‘레너드 메셀’이라는 품종명을 가진 목련 종류의 나무에서 피어난 붉은 꽃입니다. 앞에 보여드린 세 장의 꽃이 모두 그 종류입니다. 비교적 볕이 잘 드는 쪽의 ‘레너드 메셀’ 큰별목련은 거의 모든 꽃봉오리들이 입을 열었지만, 조금 낮은 곳이어서 그늘이 드는 곳에 자리잡은 키작은 ‘레너드 메셀’은 지금 한창 꽃잎을 여느라 안간힘을 쓰는 중입니다. 아니, 어쩌면 지난 며칠 새에 꽃잎을 모두 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진들은 지난 주말의 사진이고, 지금 나무들의 봄맞이 속도는 무척 빠르니까요.

  오늘의 《나무편지》를 띄운 뒤에는 곧바로 다시 찾아가 얼마나 예쁘고 황홀하게 피었을지 살펴보고 오렵니다. 흰 빛깔의 꽃을 피우는 목련 종류 가운데에는 ‘도나’라는 품종명의 목련 종류가 꽃을 피웠습니다. 역시 큰별목련 종류입니다. 연못 가장자리에서 여느 목련을 뛰어넘는 지극한 우아미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목련 종류입니다. 흔히 보는 백목련의 꽃이 아홉 장의 꽃잎으로 이뤄지는 것과 달리 ‘도나’ 큰별목련은 그보다 많은 꽃잎을 가지고 도톰하게 피어나기 때문에 훨씬 더 풍성해 보입니다.

  산 그늘이 오래 드리워지는 곳에 자리잡은 목련 종류, ‘라즈베리 아이스’ 목련이 붉은 꽃송이를 완전히 열려면 아직 좀더 기다려야 합니다. ‘라즈베리 아이스’ 목련은 조금 늦게 피어나는 대신에 여느 목련 종류에 비해 오래도록 꽃을 보여주지요. 나무의 크기도 크지만 꽃송이 하나하나도 다른 목련 종류에 비해 큰 편이어서, 화려함으로는 따를 목련 종류가 많지 않습니다. 봄날의 화려함을 오래오래 간직하는 좋은 목련 종류입니다.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꽃들도 바쁩니다. 할미꽃 종류인 ‘슬라비카 할미꽃’은 아직 꽃샘바람이 두려운 모양입니다. 꽃봉오리를 열긴 했지만, 고개를 미처 들어올리지 못했습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에 기대었지만 그래도 봄을 맞이하러 힘겹게 올라왔습니다. 꽃대궁 가득 뽀얗게 돋운 하얀 솜털이 돋보입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꽃샘바람에 대비한 태세입니다. 봄비도 몇 차례 내렸고, 이젠 근심 내려놓고 활짝 피어도 될텐데요.

  우리 땅에서는 진달래꽃 피어야 봄입니다. 투명한 분홍 빛으로 피워올린 진달래 꽃송이는 가까이 다가서서 꼼꼼히 바라보면 수줍음 많은 시골 아이같아 보이지만,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살을 품은 꽃송이들을 멀리서 보자면 더 없이 장관입니다. 이곳에 봄이 뚜렷하게 다가왔습니다. 사람의 마을에도 곧 환희의 봄이 다가오겠지요.

  이러저러한 일정에 끌려다니던 끝에 고뿔이 들었습니다. 고뿔 들어 몸이 축 늘어지자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그리움이 더 또렷이 솟아오릅니다. 조금은 힘 겨워도 다시 피어난 새 목련 꽃을 바라보러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녀와 목련 꽃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십시오. 고맙습니다.

- 하나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바라보기 위해 4월 17일 아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