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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우리 곁을 빠르게 스쳐지나는 찬란한 봄 날이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4. 24. 16:28

[나무를 찾아서] 우리 곁을 빠르게 스쳐지나는 찬란한 봄 날이여

  모과나무 꽃이 한창입니다. 뿌옇게 하늘을 뒤덮은 황사, 미세먼지에 아랑곳하지않고 나무는 꽃은 언제나 화사합니다. 밀린 원고더미에 묻혀 지내다가 뜨거워진 머리를 식힐 겸 나선 산책 길에서 모과나무 꽃을 만났습니다. 연두색 새 잎을 보듬어 안고 한두 송이씩 가만가만 피어나는 모과나무 꽃이 상큼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작은 숲이지만 여러 꽃들이 크고 작은 목소리를 한데 모아 봄의 교향악을 울립니다. 도심의 숲에서 울려오는 봄 노래, 더 없이 찬란합니다만,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목련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참! 목련 소식에 앞서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일본의 천연 원시림 트레킹〉 소식입니다. 사흘 밤 나흘 낮에 결처 이어질 〈아카사와, 미즈기사와, 북알프스의 숲〉 산책 여행입니다. 나가노현의 〈아카사와 자연휴양림〉 답사에서 시작하는 이번 여행에는 특히 《나무편지》를 함께 하는 분들이 많이 신청해주셨다고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여행 채비는 오월 초에 마무리해야 하는데, 지금 네 자리가 남았다고 합니다. 마감일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이제는 좀 서둘러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천연 원시림 트레킹〉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에 지난 《나무편지》를 링크하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참가 신청 페이지도 함께 링크합니다.

  일본 천연 원시림 트레킹 정보 다시보기
  하나투어 홈페이지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 교수와 떠나는 키소지 4일

  약간의 기후 차이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시기도 달라집니다. 꼭 기온만은 아닌 듯합니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 드는 햇살의 크고 작음은 물론이고, 나무가 뿌리를 내린 땅의 영양과 습기 상태, 나뭇가지 곁을 휘감아 도는 공기와 수분의 상태까지. 나무를 둘러싼 모든 조건이 꽃 피고 지는 시기에 영향을 미칩니다. 계절이 바뀔 정도는 아니라 해도 미묘한 차이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햇살 잘 드는 쪽의 나무와 그늘진 쪽의 나무에서 피는 꽃은 시간에서 거리가 나타납니다.

  남녘은 물론이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 지방에서도 이미 목련 종류의 꽃이 다 떨어진 시기에 목련 이야기를 하게 되었기에 먼저 올리는 말씀입니다. 무려 7백 여 목련 종류를 수집해 키우고 있는 천리포수목원의 숲에서는 봄 깊어진 이 즈음에도 여전히 목련 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목련 종류들은 제가끔 생태 특징도 다르고, 또 고향도 서로 달라서, 이 숲에서 피어나는 목련 꽃은 그 시기에서의 차이가 비교적 큰 편입니다. 아직 꽃봉오리를 채 열지 않은 목련 종류가 있을 정도이니까요.

  천리포 숲의 목련은 그래서 대개의 경우 사월 중순 쯤부터 오월 초순께까지 볼 수 있습니다. 한 발 더 나가자면, 이 숲에서는 목련을 여름에도 볼 수 있고, 심지어 싸늘한 가을 바람 불어오는 가을까지도 목련의 꽃을 볼 수 있지요. 여름이나 가을에 피어나는 목련 꽃은 그 동안 《나무편지》에서 종종 보여드렸습니다. 봄 아닌 계절에 꽃을 피우는 목련 종류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아마 올에도 한 여름에 다시 피어날 목련 꽃을 보게 되면 다시 또 《나무편지》에서 소개해 드리게 되겠지요.

  조금 늦게 띄우는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는 우선 천리포 숲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목련 종류 서너 가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위에 석 장의 사진으로 연달아 보여드린 목련은 ‘빅 버사’라는 품종 이름을 가진 목련 종류입니다. 이 종류의 목련은 ‘별목련’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종류 중에서도 ‘큰별목련’이라고 부르는 종류입니다. 아직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지 않은 별목련은 꽃 한 송이에 꽃잎이 열두 장에서 많은 경우에 마흔 장까지 피어나는 화려한 종류입니다. 그 가운데에도 ‘빅버사 큰별목련’은 넓게 펼친 가지를 땅에 닿을 만큼 넉넉히 드리우는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빅버사 큰별목련’이 옅은 붉은 빛을 띤 큰별목련 종류인데, 그 곁에는 흰 빛이 훨씬 강한 ‘도나’라는 품종명을 가진 목련 종류가 있습니다. 역시 큰별목련으로 분류하는 종류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도나 큰별목련’의 꽃잎 바깥 면 아래쪽에 붉은 빛이 도는 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흰 색이 더 도드라집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빅버사 큰별목련’의 옅은 분홍 색 무성한 꽃들에 대비되는 하얀 색이 도드라지는 걸 구별할 수 있습니다.

  ‘도나 큰별목련’과 ‘빅버사 큰별목련’이 서 있는 자리는 천리포 숲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는 큰연못 가장자리입니다. 연못 건너 편에서 바라보면 두 그루의 나무가 연못의 수면 위에 은은한 반영을 드리우는 게 여간 싱그러운 게 아닙니다. 같은 큰별목련 종류이지만, 차이는 선명합니다. ‘빅버사 큰별목련’의 꽃잎은 비교적 가늘고 길쭉해서 꽃이 피면서 편안하게 늘어지는 형태를 보여주지만, ‘도나 큰별목련’은 백목련처럼 오똑하게 서서 봉긋한 모양으로 꽃송이를 피워냅니다.

  이 꽃은 ‘아테네 목련’입니다. ‘아테네 목련’은 꽃잎 한 장의 길이가 20센티 쯤 되는 데다 너비도 넉넉해서 매우 풍성해 보이는 목련 종류입니다. 전체적으로는 흰 색이 강하지만, ‘도나 큰별목련’과 마찬가지로 꽃잎 뒷 면에는 분명하게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종류입니다. 꽃은 크게 자란 나무의 가지 전체에 듬성듬성 피어나지만, 워낙 큼지막하게 피어나는 바람에 꽃송이의 크기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지요. 올에는 이 아테네 목련이 유난히 아름다운 꽃을 넉넉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선명하게 붉은, 화산처럼 붉은 빛깔로 피어나는 천리포 숲의 대표적인 목련 종류입니다. ‘벌컨’이라는 품종 이름을 가진 목련 종류입니다. 붉은 빛 꽃을 피우는 목련 종류가 대부분 꽃잎의 바깥쪽은 붉고 안쪽이 하얀 것과 달리 ‘벌컨 목련’은 안팎이 모두 붉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마 목련 꽃이 피어나는 계절에 천리포 숲을 찾으시는 분들이라면 가장 인상적인 목련을 꼽을 때 첫 손에 꼽는 꽃이 ‘벌컨 목련’이지 싶습니다. 변함없이 올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만, 찾는 이들의 지나친 사랑 때문인지 지난 해에 비해 조금 아쉬운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최고의 목련입니다.

  이 숲의 목련은 여러 차례 말씀드리지만 한꺼번에 다 보여드리는 게 불가능합니다. 보여드리는 건 둘째 치고, 며칠을 묵으며 관찰한다 해도 한 봄에 칠백 종류의 목련을 모두 본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합니다. 열여덟 차례의 봄을 이 숲의 목련들과 함께 보내는 중입니다만, 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아직도 처음 만나는 목련이 있습니다. 제 눈이 밝지 못한 탓도 있지만, 워낙 종류가 많으니까요. 눈에 뜨이는 대로 나무편지를 통해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노란 색으로 꽃 피우는 목련 몇 가지를 더 보여드리면 아마도 올 봄은 지나게 될 듯합니다.

  목련 종류와 함께 낮은 곳에서도 여러 종류의 풀꽃들이 바라볼 겨를도 남기지 않은 채 매우 빠른 속도로 우우 피었다가 금세 사라집니다. 그렇게 우리 곁의 봄이 우리 곁에 빠르게 스쳐갑니다. 찬란한 이 봄 날, 하늘 한번 꽃 한번 바라보며 평화로이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나무편지》에서는 앞에 보여드렸던 모과나무 꽃과 함께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봄꽃들, 특히 제가 늘 지나다니는 도시의 길가에서 만난 꽃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한 말씀 더 남깁니다. 위에 말씀드렸던 일본 원시림 트레킹 이야기입니다. 이제 곧 마감될 이 트레킹에 대한 관심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붙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이 봄을 아쉬워 하며 4월 24일 늦은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