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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나무에게 물었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3. 7. 17:04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나무에게 물었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몇 차례에 걸쳐 원주의 나무 이야기 이어갑니다. 원주 나무 이야기는 오늘 편지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원주의 대표적인 나무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여드립니다. 그 동안 ‘원주 대안리 느티나무’를 시작으로, ‘원주 법천사 느티나무’와 ‘원주 거돈사지 느티나무’를 크게 소개했고, 짤막하게 ‘용소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원주 학곡리 소나무’, 마을 어귀에 우뚝 선 천년 된 ‘원주 행구동 느티나무’까지 보여드렸습니다. 보여드려야 할 원주의 나무가 몇 그루 더 있지만, 이제는 서둘러 봄마중에 나서야 할 때이니, 일단은 뒤로 미루겠습니다. 먼저 보여드리는 꽃은 봄마중에 나선 영춘화 꽃송이입니다.

  아. 참! 지난 《나무편지》에서 알려드린 부천시립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참가 접수 인원이 네 배로 늘어나 ”강연장이 텅 비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과 달리 지난 금요일에 120명 정원은 물론이고, 추가 대기 신청까지 마감됐습니다. 성원해주시는 만큼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잘 준비해서 찾아뵙겠습니다. 덕분에 예감이 참 좋습니다. 이미 말씀 올렸듯이 앞으로 다달이 둘째 주 수요일에 부천시립상동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이 강좌를 언제까지라도 알차게 이어가렵니다. 계속 성원해주십시오. 《나무편지》에서는 다달이 달라지는 《나무강좌》의 주제와 간략한 내용을 미리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제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이야기입니다. 제게는 우리나라의 은행나무 가운데에서 가장 인상적인 나무가 바로 이 나무입니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나무에 대한 인상은 다르겠지요. 그래서 ‘최소한 제게는 가장 잘 생긴 은행나무’라고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나무를 글로 표현할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게 바로 이런 겁니다. 대관절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거죠. ‘최소한 내게는’ 이라는 전제를 달지 않고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기준이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얼마 전 신문 칼럼을 쓸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때 맨 앞에 썼던 글을 돌아보겠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미美와 추醜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은 있기라도 한 것인가.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고찰한 역작 《미의 역사》에서 “아름다움이란 절대 완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람들은 아름다움[美]을 착함[善]과 밀접하게 관련짓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착한 것을 곧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라는 말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상대적이라 해도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변치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다.〉
- 서울신문 2012년 3월 8일치에서.

  이 책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고 할 때에는 그 대상을 “닮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름답다는 건 착하다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으며, 사람들은 착한 것을 닮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만 간단히 적어놓고 보니, 추상적이어서 당최 떠오르는 게 없지 싶기도 합니다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좋다’ ‘아름답다’ 등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닮고 싶어하는 이상형에 가까운 게 사실 아닐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은연 중에 자신을 착하게 꾸미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졌다는 겁니다.

  따져봐야 할 사실, 혹은 철학적 논점이 한두 가지 아니겠습니다만, 움베르토 에코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긴 논쟁은 일단 젖혀놓고, 일단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오늘 소개하는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는 필경 ‘매우 아름다운 나무’라고 부른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여럿 있습니다. 즉 이 나무가 착하고, 또 닮고 싶어하는 희망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우선 이 나무는 ‘착함’ 혹은 ‘좋음’의 상징으로 이 자리에 뿌리 내리고 팔백 년을 살아온 나무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무에 얽혀 전해오는 전설에 담긴 이 나무의 내력이 그걸 알려줍니다.

  이름 모를 한 스님이 이 마을을 지나다 꽂아둔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전설입니다. 한 스님이 절집 자리를 찾아 떠돌던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게 됐습니다. 지친 몸으로 스님은 우물가를 찾았지요. 스님은 우물가에서 물 긷는 마을 처녀에게 물 한 잔을 청했고, 처녀는 두레박에 물을 떠서 버드나무 잎 한 장 띄워 스님께 건넸습니다. 스님은 우물가에 앉아 천천히 물을 마시며 다리쉼을 했습니다. 그때 스님 눈앞에 펼쳐진 마을 풍경이 더없이 평화로웠다는 겁니다. 그러자 스님은 나중에 이 마을을 다시 찾을 요량으로 표시해 두고 싶었지요. 그래서 스님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우물가에 꽂으며, 이 마을의 착한 평화가 오래 지켜지기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그게 팔백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전설입니다. 이와 다른 또 하나의 전설이 있긴 합니다. 오래 전에 이 마을에 살던 성주이씨 선조가 심고 키우다가 마을을 떠났다는 이야기인데, 지금은 그의 후손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나무 근처의 마을에 사시는 분들도 잘 떠올리지 않는 옛 이야기입니다. 역시 기록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먼저 말씀 올린 스님의 전설이 이 나무와 함께 널리 회자합니다. 이름 모를 스님이 ‘참 착한 마을’임을 표시하기 위해 꽂아둔 지팡이가 자라난 나무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는 착한 마을의 표징이었던 겁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야기한 착한 것의 상징, 즉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될 만한 나무인 게 틀림없습니다. 나무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32미터나 되는 큰 키로 자랐습니다. 아파트와 같은 주거용 건물과 비교하면 무려 11층에 맞먹는 높이입니다. 여럿으로 나눠지는 부분의 줄기 둘레는 무려 16미터를 넘습니다. 나무 아래에 빙 둘러서서 손을 맞잡으려면 적어도 어른 열 명은 있어야 할 겁니다.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나간 나뭇가지의 펼침 또한 놀랍습니다. 나뭇가지는 동서 방향으로 35미터, 남북으로 34미터나 펼쳤으니까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입니다.

  크기만 특별한 건 아닙니다. 팔백 년 동안 불어온 바람에 맞서느라 한쪽 방향으로 약간 비스듬하게 기울면서 균형을 살짝 벗어났는데, 그게 오히려 나무의 멋을 한층 더해줍니다. 워낙 큰 나무인 때문인지 나무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표정이 수시로 달라집니다. 장관입니다. 나뭇가지 곳곳에는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것처럼 공기 중에서 발달하는 뿌리인 기근氣根, 즉 유주乳柱가 여럿 나타난 것도 볼 만합니다. 또 땅 표면 가까이에서 발달한 뿌리는 흙을 뚫고 솟아올라와 무성하게 뻗어 장관을 이룹니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의 다양한 생김새를 살펴보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원주 문막읍 쪽에 걸음하실 일 있다면 놓치지 말고 꼭 한번 찾아가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나무가 이토록 크고 아름답게 오랫동안 우리 곁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큰 감동으로 마음 깊이 담아두기에 충분한 나무입니다.

  끝으로 봄 바람 불어오자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산수유 꽃봉오리를 보여드립니다. 이 작은 꽃봉오리는 우리 곁으로 찾아드는 봄 바람의 온기에 따라 조금씩 노란 꽃송이를 보여줄 겁니다. 다음 편지에서 이 꽃봉오리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보여드리도록 지금 다시 산수유 꽃 찾아 길 떠나겠습니다. 다녀와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 따뜻한 봄날, 생명의 이치를 일러주는 나무와 함께 3월 6일 아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