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나무에게 물었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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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에 걸쳐 원주의 나무 이야기 이어갑니다. 원주 나무 이야기는 오늘 편지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원주의 대표적인 나무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여드립니다. 그 동안 ‘원주 대안리 느티나무’를 시작으로, ‘원주 법천사 느티나무’와 ‘원주 거돈사지 느티나무’를 크게 소개했고, 짤막하게 ‘용소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원주 학곡리 소나무’, 마을 어귀에 우뚝 선 천년 된 ‘원주 행구동 느티나무’까지 보여드렸습니다. 보여드려야 할 원주의 나무가 몇 그루 더 있지만, 이제는 서둘러 봄마중에 나서야 할 때이니, 일단은 뒤로 미루겠습니다. 먼저 보여드리는 꽃은 봄마중에 나선 영춘화 꽃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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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지난 《나무편지》에서 알려드린 부천시립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참가 접수 인원이 네 배로 늘어나 ”강연장이 텅 비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과 달리 지난 금요일에 120명 정원은 물론이고, 추가 대기 신청까지 마감됐습니다. 성원해주시는 만큼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잘 준비해서 찾아뵙겠습니다. 덕분에 예감이 참 좋습니다. 이미 말씀 올렸듯이 앞으로 다달이 둘째 주 수요일에 부천시립상동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이 강좌를 언제까지라도 알차게 이어가렵니다. 계속 성원해주십시오. 《나무편지》에서는 다달이 달라지는 《나무강좌》의 주제와 간략한 내용을 미리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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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이야기입니다. 제게는 우리나라의 은행나무 가운데에서 가장 인상적인 나무가 바로 이 나무입니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나무에 대한 인상은 다르겠지요. 그래서 ‘최소한 제게는 가장 잘 생긴 은행나무’라고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나무를 글로 표현할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게 바로 이런 겁니다. 대관절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거죠. ‘최소한 내게는’ 이라는 전제를 달지 않고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기준이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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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 칼럼을 쓸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때 맨 앞에 썼던 글을 돌아보겠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미美와 추醜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은 있기라도 한 것인가.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고찰한 역작 《미의 역사》에서 “아름다움이란 절대 완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람들은 아름다움[美]을 착함[善]과 밀접하게 관련짓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착한 것을 곧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라는 말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상대적이라 해도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변치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다.〉
- 서울신문 2012년 3월 8일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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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고 할 때에는 그 대상을 “닮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름답다는 건 착하다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으며, 사람들은 착한 것을 닮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만 간단히 적어놓고 보니, 추상적이어서 당최 떠오르는 게 없지 싶기도 합니다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좋다’ ‘아름답다’ 등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닮고 싶어하는 이상형에 가까운 게 사실 아닐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은연 중에 자신을 착하게 꾸미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졌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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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봐야 할 사실, 혹은 철학적 논점이 한두 가지 아니겠습니다만, 움베르토 에코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긴 논쟁은 일단 젖혀놓고, 일단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오늘 소개하는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는 필경 ‘매우 아름다운 나무’라고 부른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여럿 있습니다. 즉 이 나무가 착하고, 또 닮고 싶어하는 희망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우선 이 나무는 ‘착함’ 혹은 ‘좋음’의 상징으로 이 자리에 뿌리 내리고 팔백 년을 살아온 나무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무에 얽혀 전해오는 전설에 담긴 이 나무의 내력이 그걸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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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한 스님이 이 마을을 지나다 꽂아둔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전설입니다. 한 스님이 절집 자리를 찾아 떠돌던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게 됐습니다. 지친 몸으로 스님은 우물가를 찾았지요. 스님은 우물가에서 물 긷는 마을 처녀에게 물 한 잔을 청했고, 처녀는 두레박에 물을 떠서 버드나무 잎 한 장 띄워 스님께 건넸습니다. 스님은 우물가에 앉아 천천히 물을 마시며 다리쉼을 했습니다. 그때 스님 눈앞에 펼쳐진 마을 풍경이 더없이 평화로웠다는 겁니다. 그러자 스님은 나중에 이 마을을 다시 찾을 요량으로 표시해 두고 싶었지요. 그래서 스님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우물가에 꽂으며, 이 마을의 착한 평화가 오래 지켜지기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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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팔백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전설입니다. 이와 다른 또 하나의 전설이 있긴 합니다. 오래 전에 이 마을에 살던 성주이씨 선조가 심고 키우다가 마을을 떠났다는 이야기인데, 지금은 그의 후손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나무 근처의 마을에 사시는 분들도 잘 떠올리지 않는 옛 이야기입니다. 역시 기록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먼저 말씀 올린 스님의 전설이 이 나무와 함께 널리 회자합니다. 이름 모를 스님이 ‘참 착한 마을’임을 표시하기 위해 꽂아둔 지팡이가 자라난 나무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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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는 착한 마을의 표징이었던 겁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야기한 착한 것의 상징, 즉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될 만한 나무인 게 틀림없습니다. 나무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32미터나 되는 큰 키로 자랐습니다. 아파트와 같은 주거용 건물과 비교하면 무려 11층에 맞먹는 높이입니다. 여럿으로 나눠지는 부분의 줄기 둘레는 무려 16미터를 넘습니다. 나무 아래에 빙 둘러서서 손을 맞잡으려면 적어도 어른 열 명은 있어야 할 겁니다.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나간 나뭇가지의 펼침 또한 놀랍습니다. 나뭇가지는 동서 방향으로 35미터, 남북으로 34미터나 펼쳤으니까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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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만 특별한 건 아닙니다. 팔백 년 동안 불어온 바람에 맞서느라 한쪽 방향으로 약간 비스듬하게 기울면서 균형을 살짝 벗어났는데, 그게 오히려 나무의 멋을 한층 더해줍니다. 워낙 큰 나무인 때문인지 나무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표정이 수시로 달라집니다. 장관입니다. 나뭇가지 곳곳에는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것처럼 공기 중에서 발달하는 뿌리인 기근氣根, 즉 유주乳柱가 여럿 나타난 것도 볼 만합니다. 또 땅 표면 가까이에서 발달한 뿌리는 흙을 뚫고 솟아올라와 무성하게 뻗어 장관을 이룹니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의 다양한 생김새를 살펴보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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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원주 문막읍 쪽에 걸음하실 일 있다면 놓치지 말고 꼭 한번 찾아가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나무가 이토록 크고 아름답게 오랫동안 우리 곁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큰 감동으로 마음 깊이 담아두기에 충분한 나무입니다.
끝으로 봄 바람 불어오자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산수유 꽃봉오리를 보여드립니다. 이 작은 꽃봉오리는 우리 곁으로 찾아드는 봄 바람의 온기에 따라 조금씩 노란 꽃송이를 보여줄 겁니다. 다음 편지에서 이 꽃봉오리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보여드리도록 지금 다시 산수유 꽃 찾아 길 떠나겠습니다. 다녀와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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