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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본이 돌아왔다, 달라져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1. 15. 23:41
 

그녀 핸드백 속으로… '작은 서점'이 들어왔습니다

 

입력 : 2017.01.14 03:02

[문고본이 돌아왔다, 달라져서]

50%까지 저렴… 작고 가벼워… 산뜻한 디자인으로 젊은 층 인기
'마음산문고' 요네하라 시리즈, 사흘 만에 완판돼 추가 제작
출판사마다 판형 달라 혼란도

작가 장정일은 '삼중당문고'라는 시에서 "150원 했던 삼중당문고 (중략)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문고"라고 썼다. 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지만 전면에서 밀려났던 문고본이 다시 재도전을 하고 있다. 출판사 마음산책은 지난 10일 '마음산문고' 첫 시리즈로 요네하라 마리 에세이집 5권을 내놨다. 600세트 한정판은 사흘 만에 동났고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박완서, 정이현 등 국내 유명 작가의 소설도 곧 내놓을 예정이다. 민음사도 작년 7월부터 새 문고본 시리즈 '쏜살문고' 11권을 펴냈다. 민음사는 올해 안에 '쏜살문고' 수십 권을 더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학동네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문고본으로 내놓은 바 있다. 살림지식총서, 책세상문고가 명맥을 잇던 문고본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볍고 작게, 그리고 아름답게

한국 연대별 주요 문고본
문고본은 단행본보다 싸고 작고 가벼웠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표지 디자인은 간결했고 깨알 같은 글씨로 본문이 담겼다. 새로 나오는 문고본 시리즈 역시 기존 단행본보다 저렴하고 크기는 작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은 쏜살문고(5800원)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만1000원)의 반값. 요네하라 마리 '교양노트'는 마음산문고(9500원)가 단행본(1만2000원)보다 20%가량 싸다.

대신 디자인은 화려해졌다. 민음사는 과거 문고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컬러 색상 별색 인쇄를 시도했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삭제했던 책 날개 같은 디자인 요소도 되살렸다. 표지에 파스텔 색조를 활용해 산뜻한 느낌을 주거나(마음산문고), 디자이너에게 새로 표지 디자인을 맡긴다(쏜살문고).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과거 문고본이 박리다매를 추구하며 일본 문고본 제책 방식을 따른 것에 비해 최근 문고본은 젊은 층을 겨냥하기 위해 한국 시장에 맞는 재해석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문고본의 경제학

출판평론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집에서 책 읽는 문화가 카페에서 2시간 책 읽는 문화로 바뀐 지금 문고본은 매력적인 선택"이라며 "카페에 앉아 토트백에서 세련된 디자인의 문고본을 꺼내 읽는 것을 멋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력 독자층인 2030 여성이 핸드백에 넣어 다니기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와 무게, 2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짧은 분량이 장점이라는 것. 과거와 달리 표지 디자인과 종이 질에 신경을 쓰는 것도 이런 이유라는 지적이다.

그녀 핸드백 속으로… '작은 서점'이 들어왔습니다
/오종찬 기자
아이돌 가수들이 기존 앨범에 노래 한두 곡을 추가하고 표지를 바꾼 '리패키징 앨범'을 내는 것과 비슷한 효과도 있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요네하라 마리 문고본 소식을 들은 독자가 '너무하십니다. 너무 예뻐서 또 사야 하잖아요'라고 SNS에 글을 남겼다"며 "'쌍둥이 동생'(문고본)이 새로운 독자 확보는 물론 기존 독자가 책을 재독, 삼독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것은 문고본이 아니다?

2014년까지 '에스프레소 노벨라'라는 장르문학 문고본 시리즈를 냈던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앞뒤 표지에 책 날개를 안 만들면 권당 60원씩 원가가 절감된다"며 "문고본은 싼값에 읽고 버리는 책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디자인을 강조한다면 성격에 맞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판형에 대한 혼란도 계속되고 있다. 보통 105×148㎜ 규격이 표준인 일본과 달리 한국에는 문고본 표준 규격이 없다. 살림지식총서(128×188㎜), 쏜살문고(113×188㎜), 마음산문고(110×178㎜) 의 판형은 조금씩 다르다. 출판사 알마는 지난달 15일 '해시태그 시리즈' 첫 권으로 '#혐오_주의'를 내놓았지만 '문고본'이라고 홍보하지는 않고 있다. 무엇이 문고본인지가 여전히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백원근 출판평론가는 "1976년에는 무려 30여 출판사에서 약 1000종의 문고본이 발행될 정도"였다며 "당시 삼중당문고는 연간 판매부수가 250만부를 돌파할 만큼 청소년들의 필독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문고본 열풍은 왜 사그라들었을까.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2000년대 이후 문고본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정도를 제외하면 비문학 분야에서 대중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필자를 구하기 어려웠다"며 "새로 나온 문고본은 환영할 만한 시도지만 비문학 분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쏜살문고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의 작가 피츠제럴드는 "독자만 읽어준다면 2~3개의 이야기를 변주하고 포장해 10번이고 100번이고 반복한다"고 썼다.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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