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하게 봐야 보인다, 연꽃 잎사귀 속의 비밀
- [세밀가귀전: 한국 미술의 품격]
연꽃잎 무늬가 새겨진 주전자… 자세히 보면 소년·개구리 앉아있어
금강산 전체 담아낸 정선의 작품, 산봉우리 하나하나 정밀하게 그려
고대~조선시대 섬세한 예술품서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 깨닫게 돼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예요. 풀꽃은 흔해서 잘 안다고 여기기 쉽지만, 정작 꽃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려고 하면 잘 떠오르지 않지요. 언뜻 보고 지나쳐버렸기 때문일 거예요. 한 걸음 떨어져서 멀찍이 바라보아야 멋있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볼수록 감동이 새록새록 쌓여가는 것도 있습니다.
- ▲ 작품1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 (연꽃무늬가 있는 표주박 모양의 청자 주전자)〉, 13세기, 고려, 높이 32.5㎝, 밑지름 11.2㎝, 국보 133호.
예를 들어 작품1의 주전자를 볼까요? 먼저, 우리는 표주박처럼 굴곡이 있는 매끈하고 우아한 생김새부터 볼 거예요. 곧이어 초록빛이 감도는 은은한 색상을 보며 '누르스름한 흙으로 어떻게 이런 푸르스름한 빛깔을 냈을까' 하고 감탄할 겁니다. 다음으로는 표면에 연꽃잎이 포개지듯 새겨져 주전자의 둥근 밑동과 어우러진 것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이 단계에서 관찰을 끝내지 마세요. 주전자를 조금 더 꼼꼼히 보면 지금껏 몰랐던 비밀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이 주전자에는 연꽃만 있지 않다는 게 비밀의 열쇠지요.
표주박의 잘록한 목 부분을 눈여겨봤나요? 신비로운 소년이 앉아 있네요. 소년은 연꽃을 아주 많이 사랑하나 봅니다. 작은 연꽃 봉오리를 양손으로 가슴에 꼭 끌어안고 그 향을 음미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넝쿨처럼 생긴 손잡이 위에는 무엇이 있나요? 그렇군요. 연못에서 노닐다가 연잎에 착지한 개구리처럼, 여기에도 개구리가 한 마리 앉아 있어요. 작고 뾰족한 주전자 뚜껑의 구멍과 이 개구리 눈의 구멍을 끈으로 연결해두면, 뚜껑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겠네요. 이처럼 개구리는 쓰임새까지 고려한 장식이랍니다.
- ▲ 작품2 -〈나전대모 국당초문 화형합 (국화무늬 자개 장식이 있는 꽃 모양의 상자)〉, 12세기, 고려, 높이 4.4㎝, 지름 11.5㎝, 보스턴미술관.
오늘은 이 주전자처럼 꼼꼼하게 봐야 그동안 몰랐던 아름다움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우리 유물을 소개할게요. 찾아갈 곳은 '세밀가귀' 전시가 열리는 삼성미술관 리움이죠. 세밀가귀(細密可貴)란 '섬세하고 정밀하여 참으로 귀하다'라는 뜻이에요. 고려 시대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중국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나전칠기를 보고 나서 그 세밀한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그렇게 기록해 놓았답니다. 작품2가 바로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나전칠기예요. 나전은 무지갯빛 진주색을 머금은 자개(조개껍데기)를 조각내어 붙인 장식을 뜻하고, 칠기는 옻나무의 진액을 발라 만든 그릇을 뜻하지요.
부레풀(물고기의 부레를 건조한 것) 서 말을 먹어야 자개의 장인(전문가)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자개를 붙일 때는 부레풀을 사용하는데, 부레풀은 따뜻해야 더 잘 붙는대요. 그래서 자개에 미리 붓으로 발라놓은 풀을 일일이 혀로 핥아 녹여 붙인답니다. 풀을 막걸리처럼 꿀꺽꿀꺽 마신다면 몰라도, 핥아서 수십 병을 마신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만큼 장인이 되기까지는 길고 긴 시간을 바쳐 지극히 공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지요. 장인이 만든 명작의 공통점은 세부(자세한 부분)가 절대로 소홀하게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감동하는 순간은 전체라기보다는 세부를 봤을 때거든요. 저 구석진 곳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마저도 비겁하게 슬쩍 덧대어지거나 대충 감추어지지 않은 채 완벽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위대한 겁니다.
- ▲ 작품3 - 정선,〈금강전도〉, 1734, 조선, 종이에 수묵담채, 130.6×94㎝, 국보 217호.
문의: 삼성미술관 리움, (02)2014-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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