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나전의 솜씨는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螺鈿之工 細密可貴).”
고려 인종(재위 1122∼46) 때 송나라에서 온 사신 서긍은 나전을 이렇게 칭송했다. 서긍은 고려의 문물과 풍속, 문화를 세세하게 기록,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을 남겼다. 그는 나전뿐 아니라 자수 그림, 술잔, 자기 술그릇 등의 공교함 또한 눈여겨 보았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9월 13일까지 열리는 고미술 특별전 ‘세밀가귀(細密可貴): 한국 미술의 품격’의 키워드는 여기서 나왔다. 우리 미술의 세밀하고 화려함을 한껏 뽐내는 작품을 모았다. 리움의 대표 소장품인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靑瓷辰砂蓮華文瓢形注子·국보 133호), ‘금동 수정감장(金銅水晶嵌裝) 촛대’(국보 174호), ‘청화백자 매죽문호’(靑華白瓷梅竹文壺·국보 219호), ‘오재순 초상’(보물 1493호)을 비롯해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의 ‘칠보산도병(七寶山圖屛)’,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동경계회도(同庚契會圖)’ 등이다. 국보 21점, 보물 26점 등 총 140여 점으로 이 중 40여 점이 해외 소장품이다.
고려시대의 ‘청자양각 연판문 주자(靑磁陽刻蓮辦文注子)’는 해외에 있는 한국 도자기 중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다. 손잡이엔 고치를 찢고 날아오르는 나비를 섬세하게 빚어 붙였다. 연세대를 설립한 호러스 언더우드와 명성황후 어의였던 릴리어스 언더우드 부부가 왕실로부터 하사받은 걸로 추정되는데, 후에 언더우드 집안서 미국 브루클린박물관에 기증했다.
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대형 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의 대표 유물이다. 능산리는 지난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8곳 중 하나다. 용이 머리를 들어 향로를 물고 있는 모습을 한 받침, 연꽃잎 모양 몸체, 산세를 닮은 뚜껑, 꼭대기엔 구슬 위에 두 발 딛고 정면을 바라보는 봉황이 놓였다. 봉황과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게 돼 있는 높이 62.5㎝의 ‘백제 금동 대향로’(국보 287호)다.
“‘여백의 미’만이 한국 미술의 전부가 아니다.” 이번 전시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이거다. 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책임연구원은 “한 나라의 미술을 과연 하나의 시각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까. 때로는 ‘여백’으로 대표되는 소박한 미감이, 때로는 극한의 정교함을 보여주는 미술품이 한국 미술의 반만년 역사 속에 공존해 왔다. 특히 시대를 막론하고 최고의 예술품을 꼽을 때 화려함과 정교함은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설명했다.
왕실에서는 직속 공방의 장인들을 대우해 최고의 공예품을 만들도록 했다. 깎고 새기고, 파고 채우며 장인들은 공예품에 정교한 문양을 아로새겼다. ‘세밀가귀’의 나라 고려에서는 경판뿐 아니라 이를 보관할 상자 제작만을 위한 전함조성도감도 만들었다. ‘나전 국당초문 경전함(螺鈿菊唐草文經典函)’은 영국박물관을 비롯해 전 세계에 9점만 남아 있는데, 그중 6점이 이번 전시에 나왔다.
절창(絶唱)을 모았더니 공통점이 나타났다. 최고의 섬세함과 완성도를 추구한 것, 즉 명작은 디테일로 말한다. ‘조선화원대전’(2011), ‘금은보화’(2013)에 이어 리움이 2년 만에 마련한 고미술 전시다. 일반 8000원, 초·중·고생 5000원. 02-2014-6901.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고려 인종(재위 1122∼46) 때 송나라에서 온 사신 서긍은 나전을 이렇게 칭송했다. 서긍은 고려의 문물과 풍속, 문화를 세세하게 기록,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을 남겼다. 그는 나전뿐 아니라 자수 그림, 술잔, 자기 술그릇 등의 공교함 또한 눈여겨 보았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9월 13일까지 열리는 고미술 특별전 ‘세밀가귀(細密可貴): 한국 미술의 품격’의 키워드는 여기서 나왔다. 우리 미술의 세밀하고 화려함을 한껏 뽐내는 작품을 모았다. 리움의 대표 소장품인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靑瓷辰砂蓮華文瓢形注子·국보 133호), ‘금동 수정감장(金銅水晶嵌裝) 촛대’(국보 174호), ‘청화백자 매죽문호’(靑華白瓷梅竹文壺·국보 219호), ‘오재순 초상’(보물 1493호)을 비롯해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의 ‘칠보산도병(七寶山圖屛)’,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동경계회도(同庚契會圖)’ 등이다. 국보 21점, 보물 26점 등 총 140여 점으로 이 중 40여 점이 해외 소장품이다.
고려시대의 ‘청자양각 연판문 주자(靑磁陽刻蓮辦文注子)’는 해외에 있는 한국 도자기 중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다. 손잡이엔 고치를 찢고 날아오르는 나비를 섬세하게 빚어 붙였다. 연세대를 설립한 호러스 언더우드와 명성황후 어의였던 릴리어스 언더우드 부부가 왕실로부터 하사받은 걸로 추정되는데, 후에 언더우드 집안서 미국 브루클린박물관에 기증했다.
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대형 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의 대표 유물이다. 능산리는 지난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8곳 중 하나다. 용이 머리를 들어 향로를 물고 있는 모습을 한 받침, 연꽃잎 모양 몸체, 산세를 닮은 뚜껑, 꼭대기엔 구슬 위에 두 발 딛고 정면을 바라보는 봉황이 놓였다. 봉황과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게 돼 있는 높이 62.5㎝의 ‘백제 금동 대향로’(국보 287호)다.
“‘여백의 미’만이 한국 미술의 전부가 아니다.” 이번 전시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이거다. 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책임연구원은 “한 나라의 미술을 과연 하나의 시각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까. 때로는 ‘여백’으로 대표되는 소박한 미감이, 때로는 극한의 정교함을 보여주는 미술품이 한국 미술의 반만년 역사 속에 공존해 왔다. 특히 시대를 막론하고 최고의 예술품을 꼽을 때 화려함과 정교함은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설명했다.
왕실에서는 직속 공방의 장인들을 대우해 최고의 공예품을 만들도록 했다. 깎고 새기고, 파고 채우며 장인들은 공예품에 정교한 문양을 아로새겼다. ‘세밀가귀’의 나라 고려에서는 경판뿐 아니라 이를 보관할 상자 제작만을 위한 전함조성도감도 만들었다. ‘나전 국당초문 경전함(螺鈿菊唐草文經典函)’은 영국박물관을 비롯해 전 세계에 9점만 남아 있는데, 그중 6점이 이번 전시에 나왔다.
절창(絶唱)을 모았더니 공통점이 나타났다. 최고의 섬세함과 완성도를 추구한 것, 즉 명작은 디테일로 말한다. ‘조선화원대전’(2011), ‘금은보화’(2013)에 이어 리움이 2년 만에 마련한 고미술 전시다. 일반 8000원, 초·중·고생 5000원. 02-2014-6901.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