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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외암마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8. 23. 21:19

마을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든 가장 완벽한 조화

  • 글=노은주·임형남 가온건축 공동대표
  • 그림=임형남

입력 : 2015.08.20 04:00

[노은주·임형남의 골목 발견] 아산시 외암마을


	[노은주·임형남의 골목 발견] 아산시 외암마을
충남 아산에 가면 외암마을이라는 오래된 동네가 있다. 설화산이라는 듬직한 산이 뒤를 잘 막아주고 있으며 지형은 평평하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아주 살기 좋은 곳이다.

이곳은 예안 이(李)씨의 집성촌인데 안동 하회마을이나 안강 양동마을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들어가면 유서 깊은 집들이 많이 있고, 동네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생생하게 잘 남아있다. 그러면서 무척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500여년 동안 마을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를 잘 갖추고 다듬으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외암마을에는 길이 5㎞가 넘는 길고 긴 돌담이 마을을 휘돌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나 마을에는 직선이 드물다. 도시 계획이라든가 마을의 계획에 흔히 수반되는 필수적인 직선이나 위계가 뚜렷한 구성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렵다.

이를 두고 측량술의 부족을 지적하거나 심지어 미개했기 때문이란 견해가 있었지만 모두 잘못된 지적이다. 오히려 우리만의 자연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드러낸 것이며 자연의 길을 막고 방해하지 않으려 했던 아주 현명한 자세이기도 하다.

외암마을 역시 길이 휘어져 있어 멀리서는 마을이 보이지만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대체 저 길이 얼마나 뻗었는지 구분할 수 없다. 개울을 건너면 마을로 들어선다. 입구의 소나무 숲은 마을을 적당히 가려주고, 그 안으로 고샅길이 흘러간다.

고샅은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이르는 말이다. 골짜기를 의미하는 골에서 변화된 고와 갈라진 곳을 의미하는 샅이 합해진 말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이라는 표현이 아주 적합하게 이어지는 고샅길을 따라 동네에 흔한 돌을 줄눈이나 흙을 채우지 않고 두껍게 아무렇게나 쌓아 만든 담이 이어진다. 돌담의 높이는 사람 허리보다 조금 높아서, 예전에는 어떤 집에 도둑이 들면 마을 사람들이 그 담 위로 올라가서 도둑이 도주하는 방향을 파악하고 서로 신호를 보냈다고 동네 어른이 일러줬다. 사람들은 돌담이 이끄는 대로 마을을 빙빙 돌게 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다 인상적인 동네 마당을 하나 만나게 된다.

휘청휘청 이어지는 길 중간에 네모난 마당 같은 공간이 나오고, 그 길 끝을 작은 대문이 막아서고 있다. 그리고 그 모서리로 다시 길이 이어지는데, 그 막아선 작은 문은 외암(巍巖) 이간(李柬·1677~1727)이라는 학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의 문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대문과 들마루를 길 쪽으로 내밀고 있는 집이 외암마을 종택이다. 대문과 그 앞에 있는 동네의 작은 마당은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길에 면해 금세라도 열릴 것 같은 방문이 얼굴을 내밀고 있고, 길을 향해 마루가 나 있어 마치 집 안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풍경은 무척 이색적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반기는 것 같기도 하고, 집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친숙함과 편안함도 있다.

물론 집성촌이므로 마을 사람 대부분이 아는 사이거나 친척이겠고 우리 전통 공간이 워낙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조금 모호하긴 해도 이는 그리 흔한 모습은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마루를 마치 공원 벤치처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골목은 외부의 공간인데도 그 들마루와 담이 만드는 네모난 공간으로 인해 내부처럼 느껴진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 씨의 병처럼 안과 밖이 하나인 공간으로 느껴진다.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자연스럽게 마을 남쪽으로 돌아나가는데, 마을 위쪽에 물길을 내 마을을 통과하는 인공수로를 만든 점도 특이하다. 집집마다 생활용수가 되기도 하고 정원의 연못으로 흐르기도 하고, 불이 났을 때 소화수로도 활용되는 이 인공수로는 설화산이 화산(火山)이라 그 불의 기운을 누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물은 돌담과 함께 마을을 휘감고 지나가는 중요한 요소이고 그 물은 마을 앞까지 흘러나간다.

마을 동(洞)자는 물 수(水)와 같을 동(同)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을 같이 먹는 단위가 한 마을인 것이다. 마을 입구를 흔히 동구(洞口)라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곳에 작은 연못이 있다. 그 연못은 마을을 꿰며 흐르는 개울물이 모이는 장소다.

그 개울은 집 앞으로 흐르며 집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를 받아내고, 이렇게 오염된 물은 모기가 유충을 낳기 적합한 장소가 된다. 그런데 그 유충들을 연못에 사는 미꾸라지가 먹고, 사람들은 그 미꾸라지를 먹는다. 또한 마을에서 흘러들어온 하수는 연못 주변에 심은 미나리에 의해 정화돼 강으로 흘러나간다.

결국은 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으로 가기까지, 인간이 개입하고 자연의 여러 가지 생명체들이 공존하면서 정화되고 소비되는 가장 완벽한 '친환경 사이클'을 완성한다.

우리가 아는 마을들은 그냥 집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집의 집합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하고 그 안에서 순환이 이루어지고 조화와 균형이 이루고 있는 복합체다. 마을은 이런 단위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요소가 자연스럽게 남아있는 외암마을의 풍경은 참으로 정겹다. 그러나 요즘 모든 역사적인 장소가 앓는 몸살처럼, 이곳도 마을 이름 앞에 '민속'이라는 글자가 들어가고 '관광지화'하면서 동네의 품격이 적잖이 손상된 듯해 아쉽다. 오랫동안 가치를 유지하며 잘 지속한 마을이나 집들을 마치 구경시켜주기 위해 급하게 만들어놓은 조악한 민예품처럼 취급하는 일은 스스로 격을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역사적 물건이라도 곱게 포장하고 품격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외국 사례를 굳이 들어 비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요즘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서 관광객 유치에만 혈안이 되어 그 장소들이 갖고 있던 본래의 특성을 오히려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무분별한 관광지 조성 계획은 조금 자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