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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춤/정종명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7. 29. 10:55

  사자의 춤

정종명

  처남이 죽었다. 아홉수가 나쁘다느니 어쩌느니, 아픈 사람을 두고 가당찮은 입방아를 함부로 찧어쌓더니만 기어이 마흔아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무당을 불러들여 굿을 했다는 소문을 얼핏 들은 것이 불과 보름 전인데, 생각해 보면 폐병에 무당굿이 무슨 효험이 있었겠는가.

  버스가 수원을 지날 무렵부터 풀풀 눈발이 비치기 시작했다. 눈발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드세어져, 평택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하늘은 깜깜했고, 거리는 눈석임물로 질벅거렸다. 눈발에 묻힌 가로등은 뿌연 우윳빛이었다. 처갓집은 읍내에서 삼십 분 가량 걸어가야 하는 시골이었다.

  나는 결혼 이래 네댓 번 처갓집을 다녀갔다. 한번은 장모가, 또 한 번은 처삼촌이 돌아가셨을 때인데, 그 나머지는 무슨 일로 처갓집을 방문했었는지 도통 기억이 없었다. 아내는 이상하게도 친정 기피증이 있었고, 출판사 교정원인 나는 일 년 열두 달 가야 공휴일조차 제대로 찾아먹지 못할 만큼 항상 일에 부대껴온 터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한가한 처갓집 나들이는 엄두도 못 낼 처지였다.

농업협동조합 건물 앞을 지나자 술집 입간판이 줄을 이어 나타났다. 작부의 웃음소리와 술꾼의 고함이 어둡고 칙칙한 거리로 간간이 흘러나왔다. 멀쩡한 정신으로 처갓집 대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저절로 주눅이 들었다.

  나는 거리 끝에 자리잡은 작은 술집으로 들어갔다. 이홉들이 소주 한 병과 처녑 한 접시를 시켰다. 세 번째 술잔을 털어넣고 처녑 한 조각을 집으려는 순간, 먹은 것이 도로 왈칵 넘어왔다. 술을 너무 급히 들이켠 탓인가 보았다. 역시 내가 올 자리가 아닌 게 틀림없어. 자괴지심이 속을 뒤집었다.

  아내와 헤어진 지 일 년 삼 개월. 그 동안 나는 한 번도 그녀를 만나 본 적이 없다. 동서나 처형 들을 통해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이야기로 어렴풋이 그녀의 근황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나와 헤어진 직후, 아내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어느 사내와 살림을 차린 모양인데, 돈푼깨나 있어 보이던 그 사내가 알고 보니 사실은 불알 두 쪽밖에 없는 날건달이더라는 거였다. 아내는 시내 어디에다 다방을 차린 모양이나 그 짓도 잠시뿐,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종적이 묘연해졌다고 큰처형이 뇌까렸다. “주렁주렁 매달린 자식새끼 내버리고 집 나간 년, 그년은 고생을 해도 뼈가 빠지게 고생을 해봐야 혀.” 큰처형의 그런 터무니없는 악담을 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 마음을 떠보려고 공연히 해보는 지청구일 뿐이야.

  셋째아이 돌을 막 지냈을 무렵이다. 아내는 이렇다 할 설명 한마디 없이 무려 사흘이나 집을 비웠다가 나타났다. 서른세 살짜리 유부녀의 가출이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납득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 스스로가 가출 이유를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어설픈 구박이나 훈계 따위는 그만두기로 작정했는데, 사실은 그런 가당찮은 아량이 잘못이었다. 그 이후 그녀의 가출은 심심찮게 잦아졌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느 사내와 함께 여관에서 나오는 아내를 목격하기에 이르렀다. 그 날 밤 나는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 아내를 아예 작정을 하고 훔씬 두들겨 패 버렸다. 머리끄덩이를 잡아 돌리고, 모가지를 짓밟고,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살림살이를 닥치는 대로 부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의 몸뚱이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 정도면 이제 정신을 차리겠거니 여겼는데, 웬걸 아내는 한술 더 떴다. “기집년 치는 놈 쳐놓고 잘난 놈 하나 못 봤다. 사내놈이 오죽 못났으면 제 기집을 두들겨 패? 이 벼락을 맞아 손모가지가 똑 부러질 놈아……” 아내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 몸피가 크면 겁이 많고 뒤가 무른 법인데, 아내는 달랐다. “야 이놈아, 같이 살기 싫으면 곱게 헤어지자고 말로 할 일이지 니가 뭐 그리 잘나 빠졌다고 사람을 개 잡듯이 두들겨 패니? 너도 인간이냐, 엉?”

  이튿날이다. 아내는 전치 이 주짜리 진단서(診斷書)까지 첨부한 이혼장을 꾸며 와 나의 코앞에다 바싹 디밀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두들겨 맞은 것이 너무 분해서 한번 해보는 단순한 위협이겠거니 여겼다. “이거 이혼장이지? 헤어지자 그 말인 모양인데, 도대체 이유가 뭐요?”“간단하게 말하겠어요. 당신하곤 단 하루도 같이 살고 싶지 않아요. 아시겠어요? 싫어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사이엔 애들이 벌써 셋이오. 우리가 갈라서는 건 별문제 아니라 하더라도 저 애들은 어떡헐 작정이지?” “당신이 맡지 않겠다면 내가 데리고 나가겠어요.” “애들을 당신한테 맡기라구? 그건 안 돼. 애들은 차라리 내가 맡으리다.” 그리고 나는 이혼장에다 기세 좋게 도장을 찍어 주었다. 여자가 만들어 내미는 이혼장에다 도장 못 찍을 비겁장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오기에서만은 아니었다. 애들이 내 곁에 있는 한 이혼장에다 도장 골백번을 찍은들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느냐는 나의 오만을 그녀는 비웃듯이 짓밟아 버렸다. 아내는 자신의 명의로 등기가 되어 있는 집까지 나 몰래 팔아넘긴 뒤 감쪽같이 종적을 감춰 버렸던 것이다.


  어디선가 개가 공공 짖었다. ‘새마을회관’이란 현판이 붙은 건물의 담을 끼고 모퉁이를 돌아가면 처갓집이었다. 마굿간 벽에다 비스듬히 비끄러맨 작대기 끝에 백열등이 하나 댕강 매달렸고, 그 밑에 차려 놓은 세 무더기의 사자밥과 세 켤레의 고무신이 더할 수 없는 을씨년스러움을 몰아왔다.

  나는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대청 처마에도 임시로 가설한 백열등이 밝혀져 있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집 안은 어두컴컴했다. 섬돌 위로 올라선 나는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순간 온몸이 굳어졌다. “양서방이 앙심을 먹고 해꼬지라도 하려고 들면 어떡허지?” 둘째처형의 목소리였다. “별걱정을 다 하시네. 그 사람은 이제 남이여. 그 사람이 뭔데 남 초상집에 와서 해꼬지를 해! 어림도 없는 소리!” 큰동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못을 박고 나섰다. “사람이 너무 착해 빠져서 그럴 위인도 못 돼.” “그건 그래.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그건 몰라. 가만히 보면 그 사람도 얼마나 이물스런 위인인지 모른다구.”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이런 말도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그 주책맞은 년이 사내까지 끼구 들이닥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이야. 차라리 둘 다 안 왔으믄 좋겠구만……” “허허허, 풍경 좋은데요 뭐. 딸은 넷인데 사위는 다섯이니, 장인어른 사위 복 터졌지 뭐유.” 그러면서 낄낄 소리내어 웃는 사람은 네째동서였다. “내 참, 남세스러워서 얼굴 들고 동네 사람 쳐다볼 면목이 없다니까.” “아따, 그러지 말아요. 사람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이혼한 사람이 어디 처제 하나뿐인가.”둘째동서의 말이었다. “그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그년은 좀 너무 심했어. 생각해 보라구요. 집까지 팔아먹고 도망치는 바람에 애새끼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해놨으니, 백 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년이지……” “그래도 말이다. 양서방 말하는 뽄새를 가만히 듣고 보면 그년이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모른 척 받아들일 눈치더라니까. 내 참, 병신도 그런 병신이 따로 없다니까.” 그때 부엌문이 열리면서 처남댁이 바깥으로 나서다가 제풀에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이게 누구여. 양서방 아니유!” 그 소리에 방문이 덜컹 열리면서 안에 있던 사람들의 놀란 얼굴들이 비죽비죽 내밀어졌다. 나는 머리와 어깨의 눈을 급히 털어내며 나도 모르게 히죽이 웃고 말았다.

  사랑방 윗목으로 병풍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장인어른과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두 상제(喪制)가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맞았다. 내가 병풍을 향해 절을 하려고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리자, 장인어른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직 날송장이야. 절 그만둬” 나는 도로 허리를 펴고 말았다. 방안은 소독 냄새가 진동했다.

처남댁이 차려다 주는 밥상을 받기는 했으나, 입 안이 깔깔하고 자꾸만 구역질이 나서 겨우 윗머리만 뜨적거리다가 숟갈을 놓아 버렸다. “이제 염 해야지요.” 큰동서의 말에 장인어른이 머리를 끄덕였다. “자네들은 건넛집에 가 있게.” 건넛집이란 처삼촌댁을 이르는 말이었다. “괜찮아요.” 대답은 그렇게 했으나 큰동서는 속으로 은근히 캥기는 모양인지 둘째동서와 사촌처남의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실 이런 일은 동네 사람이 나서야 하는 법이야.” 둘째동서 역시 꽁무니를 빼고 싶은 표정이 너무 역력했다. “하지만 이런 궂은일에 동네 사람 누가 선뜻 나서겠어요?” 사촌처남이 쥐어박는 투로 큰동서와 둘째동서를 힐끔 돌아다보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죽으면 말짱 도루묵인 게야. 엊그제까지만 해도 형님, 동생 하면서 죽고 못 살 것 같은 놈들도 코빼기 하나 안 내밀잖아. 사람 인심이 이렇게 야박해서야 어디……” 큰동서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자 장인어른이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시끄러. 가만들 있어. 가만들……” 그러고 나서 장인어른은 사촌처남에게 동네 사람 누군가를 불러 오라고 일렀다. “내 낮에 만나서 부탁을 해놨으니께 나가서 찾아봐. 아마 주막집에 있을 게야.” 사촌처남은 말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사촌처남은 잠시 후에 두 사내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한 사람은 방한모를 깊숙이 눌러쓴 삼십대의 장정이었고, 또 한 사람은 오십대로 보이는 곱추였다. 그들이 거들기로 하고 장인어른이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를 하는 가운데 염이 시작되었다. 염을 하는 동안 집 안팎은 마른 쑥을 태우는 연기로 가득 찼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염하는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장인어른이 시신(屍身)의 입에다 물에 불린 쌀을 세 번에 나눠 조금씩 흘려 넣으면서 “백 석이요!” “천 석이요!” “만 석이요!”하고 소리쳤다. 이어 십원짜리 동전 세 닢을 그 입에다 비집어 넣을 때도 “백 냥이오!” “천 냥이오!” “만 냥이오!” 소리쳤다. 모두들 굳게 입을 다물고만 있었는데, 그때 느닷없이 곱추가 항의하듯 중얼거렸다. “거짓말 말아요. 귀신이 십원짜리 동전인 줄 모를 줄 아세요?” 그 소리에 멍청히 앉아 있던 처남댁이 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급히 치마 속을 뒤집어 더듬더니 무엇인가를 손아귀에 감추어 쥐고 손짓으로 곱추를 대청마루로 불러내었다. 처남댁이 곱추한테 건네준 것은 돈이었다. 얼핏 보기에 천원짜리로 대여섯 장은 실히 될 것 같았다. 곱추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하는 수 없다는 태도로 그것을 받아 방으로 돌아와서는 장인어른 몰래 시신의 옷섶에다 슬금슬금 찔러넣었다. “뭐니뭐니해도 역시 마누라가 제일이야.” 방한모와 마주 앉아 교포(絞布)를 묶고 있던 장인어른이 한숨을 내쉬며 그 말을 이렇게 받아 넘겼다. “그래 봐야 다 쓸데 없는 짓이야.” “쓸데없긴요. 요즘은 돈 없인 천당도 못 간대요.” 그러면서 곱추는 장인어른을 향해 힐끔 눈을 흘겨 보였다. 알보 보니 방한모는 벙어리였다. 그 방한모는 곱추가 그런 우스갯말을 할 때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커다란 눈을 연신 뒤룩거렸다. 그의 그런 못난 표정이 또 사람들을 은근히 웃겼다. 그러나 아무도 소리내어 웃지는 못했다. 누가 감히 소리내어 웃을 수 있겠는가? 웃기는커녕 숨이 막혀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몸을 함부로 움직이는 것조차 예의가 아닌 듯해서 손끝 하나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내내 붙박혀 있었다.

  그렇게 얼어붙은 분위기가 딱해 보인 모양인지 곱추가 대청마루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호상(好喪)은 아닙니다만 너무 그렇게 긴장들 말아요. 사람 죽는 거 처음 봐요? 내 참!” 그렇게 불쑥불쑥 내뱉는 곱추의 신소리가 처음에는 주책맞고 무례한 것 같아 불쾌감이 앞섰으나, 돌이켜보니 그의 진지한 표정이나 태도가 결코 함부로 구는 경거망동이 아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상체를 조금 비틀어서 굳어진 관절을 풀기도 하고 더러는 잔기침도 했다. 멋모르고 꿇어앉았던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발이 저리기 시작하여 아주 혼이 났다. 몰래 콧등에다 침을 바르기도 하고, 또 몰래 엉덩을 들었다 놓았다 했는데, 그때마다 시신이 눈을 까뒤집고 “그까짓 걸 못 참아 사지를 비비꼬고 있어 그래? 못된 사람 같으니라구.” 버럭 소리를 내지를 것 같은 환상에 빠져서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다 배어났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이 사람한테 화투는 한 목 넣어 줘야 하는데……” 곱추의 그 말에 장인어른도 어쩔 수 없이 한마디 내뱉고 말았다. “이 자식, 노름하고 싶어서도 어찌 죽었을까 그래.”

  아들이 노름판에 끼는 낌새만 알아차리면 긴 작대기를 질질 끌며 마을과 온 읍내를 뒤졌다는 장인어른이다. 말끝마다 그놈은 하루 빨리 죽어야 할 놈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지만, 막상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손수 뒷갈망해야 하는 장인어른의 가슴이 얼마나 저리고 아플까를 생각하니 죽은 처남보다도 살아 있는 장인어른이 오히려 안스럽게 여겨져 나는 문득 가슴이 저렸다. “이게 마지막 보는 얼굴이다.” 그러면서 장인어른은 시신의 얼굴에다 면목을 씌워 버렸다. 그러고 보니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베와 종이로 묶여지고 매듭이 지워진 시신은 그야말로 길가에 버려진 나무토막이나 다를 게 없었다. 저승에 갔던 혼백이 되돌아와 육신을 찾아 소생하고 싶어도 이젠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이다 싶었다. 아내가 이 마지막 순간까지 나타나지 못한 것이 혹시 내가 이 자리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 아내에게도 처남에게도 내가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한동안 나의 가슴을 스적스적 물어뜯었다. 마당에는 어느 새 화톳불이 피워졌고, 간단한 저녁 제사가 끝났을 때쯤 비로소 문상객이 하나 둘 들이닥쳤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눈발이 겨우 멎었다. 밤새움을 해야 할 사람은 역시 우리들 동서네 푸네기가 전부였다. 큰동서, 둘째동서, 막내동서, 사촌처남, 큰처형, 둘째처형, 처제, 처남댁 들이 모두 안방에 모여 있었다. 남자들은 화투판을 벌였고, 여자들은 앉거나 모로 드러누워 있었지만 누구도 잠을 자지는 않았다.

  나는 화투판에서 빠져나와 밤새움하는 사람들을 위해 진작부터 차려놓은 윗목 한쪽 구석의 술상 앞으로 슬그머니 다가앉았다. “지연이 아빤 웬 술을 그렇게 마시지? 그만 주무세요.” 큰처형이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으나 나는 못 들은 척 외면해 버렸다. “본전 생각 없어?” 둘째동서가 다시 화투판에 낄 것을 권유했으나 나는 모든 것이 싫고 짜증스럽기만 했다. “이리 오라니까. 혼자 뱅뱅 겉돌지 말고.” 사람을 은근히 깔아뭉개는 어투였다. “내가 뭐 만만한 털집인 줄 아슈?” 나는 나도 모르게 톡 쏴붙이는 말투를 내뱉고 말았다. 방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일시에 얼어붙어 버렸다.


  마을 장정들로 꾸며진 상여꾼들이 집 안팎에서 분주히 들락거렸다. 영구(靈柩)가 바깥 마당에 차려진 상여 앞으로 옮겨졌다. 발인제(發靷祭)가 진행되는 동안 마을의 노인들과 아녀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 집 주위의 여기저기서 무리를 지어 지켜보았다. 어린 상제들이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꾸벅꾸벅 절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마을 골목 쪽으로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길을 틔워 주면서 한 여인이 나타나 다짜고짜 상여 앞에 고꾸라지면서 비명과도 흡사한 울음을 터뜨렸다. 여인의 뒤를 따라 나타난 낯선 사내는 오버를 벗어 왼팔에 걸친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사내는 얼른 보기에도 유도 선수가 아닌가 싶게 몸집이 좋았다. 그의 번지르르한 외모는 확실히 아내가 좋아할 만한 타입임에 분명했다. “셋째야.” “새서방 얻었다더니 같이 온 모양이지?” “그라문 서방이 둘이네.” 마을 아낙네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나는 등뒤로 들었다.

  그녀는 부음을 받고 허둥지둥 달려온 사람의 의장(衣裝)이라기엔 너무 화려하고 사치스런 차림이었다. 번쩍거리는 반지며 귀걸이며 밍크 오버는 덮어 둔다 하더라도 그 찍고 문지른 짙은 얼굴 화장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역겨울 따름이었다. 과연 그 여자다운 면모라는 생각이 들자, 이상한 혐오감이 내 가슴속을 자꾸 갉작거렸다.

“됐다. 대충 해둬. 울고 붙잡는다고 떠난 사람이 돌아와서 주저앉을 것도 아니잖녀.” 장인어른이 나서서 고함을 질러대는 바람에 잠시 주저하고 있던 상여꾼들이 우르르 상여에 달라붙었다. 오종종하게 생겨먹은 오십대의 앞소리꾼이 요령을 딸랑딸랑 힘차게 흔들며 상여 앞으로 나섰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 진다 설워 마라.’ ‘허어야 어허, 어허 넘자 어허야!’ ‘명년 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건마는.’ ‘어허야 어허, 어허 넘자 어허야!’ ‘우리 인생 한번 가면 돌아오기 어려워라.’ ‘어허야 어허, 어허 넘자 어허야!’ ‘황천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황천일세.’ 앞소리꾼의 늘어지면서도 끊어지는 듯한 처량한 선소리는 얼어붙은 대기를 뚫고 서서히 드높아 갔다.

  처제가 달려가 울고 있는 아내의 귀에다 입을 대고 무슨 말인가를 일러주었다. 아마 내가 여기 와 있다는 말을 귀띔해 주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순간 울음을 뚝 그치고 할끔 돌아다보았다. 아내의 눈길과 내 눈길이 허공에서 잠시 맞붙었다가 재빨리 풀어졌다. 아내는 등뒤의 낯선 사내를 잡아끌다시피 하여 집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어허야 어허, 어허 넘자 어허야!’ ‘대궐 같은 집을 두고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어허야 어허, 어허 넘자 어허야!’ 상여는 드디어 비좁은 골목길을 꾸물꾸물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큰동서가 내게로 다가와 장지(葬地)까지 같이 갈 것을 권유했다. “물론이죠.” 하고 대답했으나, 나는 얼른 발을 떼놓지는 않았다. “관둬! 인사는 무슨 놈의 인사야……” 장인어른이 누군가에게 화를 발끈 내면서 대문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인사는 받아 놓고 봐야죠, 어쩌고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뒤따랐으나 장인어른은 두꺼운 오버를 입고 털목도리를 여미면서 한쪽 손으로는 대문 안을 향해 연방 홰홰 내저었다. 여자가 장인어른을 뒤쫓아 대문 앞으로 나서다가, 나와 큰동서가 마주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마치 불에 덴 듯이 도로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에이, 내 저렇게 뻔뻔스런 건 처음 보네.” 장인어른은 짐짓 나를 피해 눈길을 돌리고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처럼 내쏘면서 부리나케 상여를 뒤쫓아갔다. 상여는 어느새 주막거리를 지나 눈 덮힌 큰길을 미적미적 나아가고 있었다.

  큰처형, 둘째동서, 둘째처형, 막내동서가 무리를 지어 과수원 쪽으로 난 논두렁을 타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큰처형이 뒤를 돌아다보면서 나를 향해 빨리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가세.” 큰동서가 나의 한쪽 팔을 잡아끌었다. “내가 여기 나타나선 안되는데…… 그렇죠?” “글쎄, 그 뭐……” 큰동서는 어물어물 대꾸하고는 별안간 앞서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어이, 같이 가자구!”

  나는 가끔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우리 뒤를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상여는 사뭇 큰길을 따라가다가 산모퉁이를 돌아섰다. 거기서부터는 펀펀한 밭과 목장이 이어졌다.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상여가 넓은 목장 한복판쯤 진입했을 때였다. 눈은 여름날 오후의 소낙비처럼 갑자기 펑펑 쏟아져 내렸다. 이어서 하늘이 새까매지는가 싶더니 사나운 바람까지 곁들여져 눈보라가 일으켰다. 너무나 갑작스런 눈보라여서 모두들 갈팡질팡했다. 내 양복 앞섶은 들이치는 눈송이가 덧묻어 순식간에 덕적덕적 얼어붙어 버렸다. 사람들은 숫제 돌아서서 바람을 등지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상여는 바람을 맞아 비틀걸음을 치면서 산비탈을 겨우겨우 기어올라갔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날씨의 변덕에 혀를 차면서 수군거렸다. “요망스런 날씨 꼴을 보니, 그 사람도 어지간히 한(恨)이 많은 모양이야.” “젊디젊은 나이에 육순이 넘은 아버지를 두고 가는데 왜 안 그렇겠어.” 그런 소리를 듣고 큰처형이 말했다. “굿하겠다는 말도 일리는 있어.” “그러게요. 남 보기에 꼴사납기는 해도, 살아 있는 사람이 좋다면야 도리없는 일이지요 뭐.” 그렇게 받으면서 둘째처형은 숨을 헐떡거렸다. 어젯밤, 처남댁이 무당을 불러 집가심(진오귀굿)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았을 때는 어느 누구도 달가운 표정들이 아니었던 걸 나는 기억했다. 둘째처형의 경우 특히 그랬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까짓 미신을 믿고 무당한테 생돈을 들여. 돈이 썩어 나자빠진대도 난 그런 꼴 못 봐.” 말한 사람이 무안해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쌀쌀맞게 쏴붙이지 않았던가.

  묏자리에서 약간 아래쪽으로 치우친 골짜기에 솥을 걸어놓고 아낙네들이 떡국을 끓인다 막걸리를 데운다 야단법석이었다. 상여꾼들은 너나없이 뜨거운 국물과 술을 들이켜기에 정신이 없었다. “어이, 거 매제(妹弟)들도 이리 와서 한잔들 혀.”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여. 추운데 별수 있간.” “기럼기럼. 임자가 따로 있나, 먹는 놈이 임자지.” “이리 와서 내 술도 한 잔 받소.” “어잇 춥다. 해토머리에 이런 험악한 날씬 난생 첨 보겠구만.” 이 사람 저 사람들로부터 얻어 마시는 바람에 나는 막걸리 대여섯 대접을 순식간에 비워냈다. 그 덕분에 얼어붙었던 몸이 어느 정도 풀리기는 했으나 대신 정신이 몽롱해 갔다.

  눈발은 쉽게 멎을 기세가 아니었다. 격식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어린 상제들도 하관(下棺)하기가 무섭게 곡소리 몇 마디 형식으로 남겨 놓고는, 이것저것 깐깐하게 일손을 지휘하려 드는 장인어른과 함께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가세요. 가. 여기 일은 우리가 알아서 다 해놓을 테니까, 걱정 말고.” 사람들은 말끝마다 오는 한식(寒食) 때 뒷손을 보기로 하고 오늘은 그저 형식이나 갖추고 말자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래서 시체는 마치 산골짜기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럭저럭 봉분이 만들어질 즈음 가서는 희한하게도 그토록 사납게 내리퍼붓던 눈발이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이윽고는 거짓말처럼 햇빛이 쏟아졌다. 그 사이를 이용해 모두들 하산(下山)을 서둘렀다. 처음에 나는 동서들과 일행이었다. 비탈길을 미그러지듯 엉금엉금 기어서 큰길까지 내려가 보니 뜻밖에도 나는 혼자였다. 동서들은 아직도 산비탈 잔솔밭에서 굼싯굼싯 기고 있었다. 소나무 가지마다 올라앉은 눈꽃 위로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뒷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마을로 돌아갔다.

  상가집에는 먼저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방마다 들어앉아 있었다. 안방은 아낙네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곁눈질로 슬쩍 훑어보았으나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나타났던 사내 역시 그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처삼촌댁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거기에도 아내와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처갓집과 처삼촌댁을 두 번이나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혐오감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 무슨 대책이 있어? 천치 바보야!

  나는 사촌처남 내외가 거처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 아랫목에는 이제 돌이 갓 지난 막내동서의 아이 혼자 누워 나비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천진스런 아이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참으로 따뜻한 표정이어서, 그 얼굴을 들여다보는 내 가슴이 저절로 훈훈해지는 느낌이었다. 방바닥은 알맞게 자글자글 끓고 있었다. 밤새움을 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시지 않은 취기 탓인지도 몰랐다. 얼어붙었던 몸이 난실난실 풀어지면서 급격히 졸음이 밀려들었다.


  나는 잠결에 머리맡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술을 저렇게 정신이 없도록 마셨을까.” 처제였다. “술이라곤 비상처럼 여기던 사람이……” 둘째처형이 말끝에 혀를 찼다. “그게 다 셋째언니 때문이지 뭐.” “올 테면 혼자나 살짝 왔다 갈 일이지 뭐 잘났다고 사내까지 끼고 오는지, 하여간 그년은 낯가죽도 어지간히 두꺼워.” “셋째언닌 정말 못 말려.” “그년 말하는 것 좀 봐라. 사내 데리고 그만 먼저 떠나라니까, 지은 죄도 없는데 뭐가 무서워서 지가 도망치느냐 그러더라. 남의 가슴에 못을 박아놓고도 그렇게 뻔뻔스러울 수 있으니…… 쯧쯧.” “말은 그래도 은근히 겁은 나나 봐. 형부가 대문간에 들어서니까, 아 뜨거워라, 골방으로 도망치던걸 뭐.”

  두 사람은 아마 내가 깊이 잠든 줄로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나직나직 속삭이는 소리를 계속 엿듣고 있기가 여간 거북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잠깐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를 이용해서 잠결인 체하며 몸을 뒤채었다. 그리고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처제는 젖먹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고, 둘째처형은 그 옆에 모로 누워 있다가 “이제 정신이 드우?”하며 일어나 앉았다. “아무리 깨워도 정신없이 주무시던데, 고단하셨던가 보죠?” 처제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비시시 웃고 말았다. 어디선가 징소리가 딩딩 들려 왔다. “굿 시작했나 봐.” 징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처제가 말했다. “우리도 가 봐요.” “그깐 놈의 굿은 봐서 뭘 하니.” 심통 사납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둘째처형 역시 어느새 엉거주춤 일어서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 그녀가 말했다. “양서방은 여기 그냥 기세요. 내 가서 잡술 걸 보내 드릴께.”

  그들이 가고 나서 나는 잠시 혼자 앉아 있었다. 조금 있다가 나는 그들을 뒤쫓듯이 처갓집으로 건너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아내가 안방 문턱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안마당 그득히 들어차 있는 구경꾼들을 비집고 들어가 마루 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잠시 후에 안방 문턱을 훔쳐보니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젯상은 사랑방에 차려져 있고, 그 앞에서 무당이 경(經)을 읊고 있었다. “꽃같이 피난 몸이 옥같이 자란 몸이, 육순 부친 생존이요, 어린 자식 남겨두고…… 터주님이 터 주시고 조왕님이 요 주시고, 산신님이 명 주시고, 미륵님이 돌보셔서……” 무당은 처남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엊그제 죽을 때까지의 이력을 한도 끝도 없이 풀어놓았다. 그러나 무당이 아무리 초혼(招魂)을 해도 내림대(신장대)를 잡고 있는 처남댁에게 도무지 혼백(魂魄)이 내리지 않았다. 참다 못한 무당이 마침내 짜증을 내고 말았다. “누구 다른 사람이 나와서 잡아 봐. 길닦음을 잘해야 자손이 편한 거여.” 누군가가 “작은어머님이 잡으세요.”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돼?” 처숙모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아무나 해 봐.”무당이 다그치는 바람에 엉거주춤 망설이고 있던 처숙모가 처남댁으로부터 내림대를 이어받았다.

  다시 한동안 요란스런 징소리와 함께 초혼경이 읊어졌다. 이윽고 처숙모의 손에 잡힌 내림대가 거짓말처럼 부들부들 춤추듯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당이 말했다. “도대체 뭣이 못마땅해서 오십줄에도 들기 전에 이승을 떠났는지 여기 모인 가족들 앞에 소상히 말씀이나 해봐.” 처숙모는, 아니 망인은 대답했다. “내가 뭘 따로 할 말이 있겠소. 그저 죄송할 따름이지요.” “죄송하다니? 그래, 죄송하다면 뭐가 어떻게 죄송하단 말인가?” “육순이 넘으신 아버님을 뫼시지 못하고, 어린 자식들 두고 혼자 떠나는데 내 어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알기는 아는구먼. 이승에 남은 한이 있으면 여기 가족들 앞에서 풀어. 가슴에 한을 남기지 말고……” “원통합니다.” “원통해? 뭐가?” “원통하지요. 평생 속앓이를 하다가 길바닥에 넘어져 비명 횡사(橫死)했으니 원통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앓는 사람이 몸조리는 안 하고 쏘다니긴 뭣 때문에 밤낮 바깥으로만 쏘다녔어?” 무당은 서슬 푸르게 나무랐다. “나야 뭐 내놓은 팔난봉 아니었소.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술이나 한 잔 주오.” “술, 술, 그저 술이구먼.” “어서 줘요, 목이 타서 못 견디겠네.”

  처남댁이 부엌에서 큰 놋대접에다 막걸리를 찰찰 넘치게 담아 들고 들어왔다. 술대접을 받은 처숙모는 다짜고짜 그것을 처남댁의 치마에다 홱 뒤엎으면서 벼락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언제 막걸리 마시는 거 본 적 있어? 소주 가져와!” 처남이 생전에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역정 내지 말고 차근차근 말해 봐.” 무당이 타일렀다. 처남댁은 질금질금 눈물을 짜면서 이홉들이 소줏병 하나를 들고 왔다. “술은 역시 소주래야지. 그까짓 막걸리야 싱거워서……” 처숙모는 병주둥이를 입에 대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에그, 에그, 저걸 어째.”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사촌처남댁이 기겁을 하면서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진갑을 지낸 노인양반이 이홉들이 소줏병을 단숨에 다 마신대서야 도저히 뒷일을 감당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처숙모는 평소에 막걸리라면 어쩌다 한두 잔 입에 대는 경우는 있었어도 소주라면 한사코 마다하던 분이었다. “거 정말 거짓말 같은 사실이네.” “진짜 혼백이 내렸나 벼.” 사람들은 귀엣말로 소곤거렸다.

  소주 한 병을 다 마신 처숙모는 뜻밖에도 기분이 매우 흡족한 모양이었다. “크으, 거 술맛 한번 좋다. 기왕에 마시는 거, 한 병 더 주오.” 처남댁은 질겁을 했다. “그만 마셔요, 여보. 당신은 평생 그놈의 술 때문에 신세 망친 분이잖아요. 술, 술, 술, 그놈의 술이 지겹지도 않으세요?” “닥쳐! 치마 두른 여편네가 감히 남정네 술 마시는 것까지 간섭하려 들다니, 이게 어디서 배워먹은 못된 버르장머리야. 냉큼 술 가져오지 못할까?” 처숙모는 노발대발하여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오빠는 살아 기실 때도 그렇게 언니 속을 썩이더니만 죽어서도 그 버릇 못 고치셨수?” 큰처형이 치맛자락으로 눈두덩이를 훔쳐내면서 항의했다. “애미야, 니한테는 내 따로 할말이 있으니까 잠자코 앉아 있거라.” 처숙모는 의외에도 순순히 타이르고 나서 또 다시 술을 가져오라고 부득부득 고집을 부렸다. “달라는 대로 어서 갖다 줘. 그 사람이 고까짓 술로 순순히 물러설 것 같애?” 무당이 처남댁에게 호령했다. 처남댁은 마지못해 또 한 병의 술을 가져왔다. 처숙모는 이번에도 병째 마시려고 덤비었다. “저러다 노인양반 잡겠네 그랴.” 구경꾼들 중에서 누군가가 혀를 차면서 안타까운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사촌처남이 별안간 사랑방으로 우르르 뛰어들더니 다짜고짜 처숙모의 손에서 술병을 낚아채었다. “어머닌 이리 나오시요.” 처숙모를 강제로 끌어내었다. 내가 사랑방으로 뛰어들어 내림대를 움켜잡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까짓 거 뭐 내가 잡겠소.”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에 짚히는 대로 돈을 꺼내어 젯상 위에다 던져놓았다. 무당은 젯상 위의 돈이 얼마나 되는가를 눈어림으로 재빨리 더듬으면서 다시금 경을 읊고 징을 쳐댔다. 여러 사람의 시선이 내 몸 구석구석에 화살처럼 날아와 꽂힌다는 사실을 나는 충분히 알아차렸다. 내 몸뚱이는 마치 불 속에 뛰어든 것처럼 화끈거렸다. 나는 정신없이 내림대를 드립다 흔들었다. 그렇다. 분명히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머릿속이 지끈지끈 아팠고, 그리고 온몸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도 같았다. “할말이 있으면 어디 차근차근 얘기혀.” 무당은 흔들리는 내림대와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말했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대청마루로 나섰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나의 거동 하나하나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마에 진땀이 미적미적 배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나는 아이들(상제)의 이름을 불러가며 그 아이들이 응답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 말씀 잘 들으라는 둥, 공부 열심히 하라는 둥, 의례적인 몇 마디를 되는 대로 주워삼켰다. 그리고 나는 큰처형을 찾았다. “내 아까도 너한테 할말이 있노라고 했다만……” 이 무슨 날벼락인가 하여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지만, 그러나 큰처형은 이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었다. 나는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여자는 출가 외인이라고들 하지. 하지만 친정에 자식이 없으면 딸이 그 자식 노릇을 대신해야 옳은 게야.”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으니께 걱정 말아요.” 큰처형은 홰홰 손사레까지 치면서 피시시 웃었다. “웃지 마라. 오래비 말에 웃기는……” 나는 가볍게 눈을 부릅떠 보였다. 큰처형은 찔끔 목을 움츠렸다. “그저 너만 믿는다.”

  그리고 나서 나는 큰처형 옆에 앉아 있는 둘째처형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내 참……” 둘째처형은 잡힌 손을 빼려고 앉은걸음으로 슬금슬금 물러앉았다. “그러지 말고 이리 좀 나앉거라.” 나는 그녀의 작고 귀엽게 생긴 손등을 토닥토닥 다독거렸다. “너는 남편 하나 기가 막히게 잘 만난 줄 알아라. 그 사람은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호인이야. 너도 그 점은 인정하지?” “나 참 듣다 듣다 별소릴 다 듣겠네.” 그녀는 혀를 차면서도 입은 헤벌어졌다. “여자란 뭐니뭐니해도 남편복이 제일이다.” “누가 그걸 모르우?” “안다니 다행이다. 난 네가 늘 염려스러웠다.” “나 참, 지가 어때서요?”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넌 성미가 불칼 같아서 파르르 떨 때 보면 물불이 없었지. 내 말이 그른 말이냐?” “나 참, 듣다 듣다 별소릴 다 듣겠네.” 그녀는 발끈 성을 내기는 했으나 그러는 자신이 오히려 쑥스럽게 여겨졌는지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제 걱정은 마시고 오빠나 저승에 잘 가셔서 원(怨) 없이 극락 영생 하세요.” 말끝에 그녀는 치마폭으로 눈시울울 훔쳐냈다. “고맙다. 넌 그래도 싹싹하기나 하지, 셋째는 그게 뭐냐. 그년이 어디 사람이니?”

  큰처형도 둘째처형도, 아니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양서방, 그 사람이 워낙 좋은 사람이기에 망정이지, 그렇잖음 그년은 제 명(命)대로 못 살 년이다.” 나는 대담하게 여러 사람을 둘러보았다. 큰동서 옆에 앉아 벽에다 등을 기댄 낯선 사내는 시종 커다란 눈을 꿈벅거리고 있었다. “내 정말 창피해서 얼굴 들고 나다닐 수 없었구나. 그년 지금 어딨느냐? 내 좀 보자 해라.” 나는 한숨을 쉬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쳐보였다. 그러나 아내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귀엣말로 수군거렸다. “저 사람이 셋째사위야.” “원래 무당 아들이었대.” 나는 아드득 이를 갈았다. “셋째 어딨느냐? 냉큼 내 앞에 나오라 일러라.” 나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내림대를 사납게 흔들어댔다.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주적주적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가 별안간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은 아내가 기어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그녀를 찾아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 볼 요량이었다. “알지? 셋째 그년 말이야. 그 잡년은 남편과 주렁주렁 매달린 자식새끼를 길바닥에다 내팽개치고, 살던 집까지 팔아 가지고 지 좋아하는 사내놈과 도망친 년이다. 아니, 세상에 그런 나쁜 년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니.” “저어기 그건 그런 게 아니고……” 둘째처형이 뭔가 변명을 하려고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녀의 말을 차갑게 외면해 버렸다. “어디 그뿐인 줄 아니? 그 년이 새로 얻은 서방놈한테 뭐라고 그랬는지 넌 모르지? 남편은 결혼하던 이듬해에 죽었고, 자식은 숫제 낳아 본 적도 없다고, 입술에 침도 안 묻히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단다. 세상에 그런 못된 년이 어딨니. 그 년 낯짝이나 좀 보자. 내 그 년 안 보고는 저승으로 못 떠난다.” 그러나 아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한다? 내친걸음이었다. “그 미친년, 당장 찾아와. 뭘 꾸물거리는 거야? 머리채라도 휘어잡아서 끌고 오라니까.”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뭐가 어쩌고 어째? 미친년? 어머나, 이런 미친놈……” 비로소 안방에 숨어 있던 아내가 눈에 쌍심지를 달고 문턱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이년이 오라비한테 하는 말버릇 좀 봐라. 뭐 미친놈?” 나는 아내 앞으로 다가섰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떠들기 시작했다. 무당이 치는 징소리도 그 때는 이미 멎어 있었다. “이년아, 너도 사람의 낯가죽을 덮어썼으면 사람 노릇 좀 해 봐라. 너도 인간이냐?” 아내가 낯선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여보, 이 따위 거지같은 놈을 보고도 당신은 그렇게 잠자코 구경만 할 작정이에요?”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렸다. 다음 순간, 사내는 잘 길들여진 사냥개처럼 발딱 일어섰다. 사내의 늠름하고 당당한 체격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나 역시 순순히 물러설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어라. 이 년놈들이 이젠 지 오라비까지……”

  사내의 한쪽 손이 허공을 긋는 순간, 나는 넉장거리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나동그라진 나의 멱살을 사내는 다시 움켜쥐고 힘껏 들어올렸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너 이놈, 넌 도대체 웬 놈이냐? 이거 당장 놓지 못하겠느냐? 아니, 이놈이 그래두……?” 나의 작은 몸뚱이는 사내의 억센 손아귀에 매달린 채 볼썽사납게 버둥거렸다. 사내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꾸부정하게 허리를 굽혀 내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직이 외쳤다. “너 죽고 싶어?” 나는 숨이 막혀 더 이상 입을 벌릴 기력이 없었다. “요런 싸가지없는 새끼는 그냥……!” 사내는 태권도 선수가 기왓장 격파술 시범을 보일 때처럼 오른손으로 나의 왼쪽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 나는 물 먹은 종이처럼 스르르 까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 내림대만은 굳게 움켜쥐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내가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이기나 한 것처럼.◑

http://cafe.daum.net/chung-jongmyung 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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